❉ 가로 세로 일 미터 되는 창문을 통해 밖의 풍경을 본다면 어떨까요? 그가 본 밖의 풍경은 일 미터 안에 담긴 풍경이 전부가 됩니다. 나무한 그루, 몇 그루의 꽃나무, 몇몇의 사람들. 그러나 사방이 다 트인 평원에서 자연을 본다면 어떨까요? 꽃, 나무, 구름, 산, 바다, 온갖 새들, 사슴, 사자…오늘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창문의 크기는 얼마나 됩니까? 가로세로 일 미터 정도입니까? 아니면 창문을 아예 제거해 버린 들녘에서 보는 것 같은 크기입니까? 인간의 이성을 통해본 세상과 믿음을 통해 대하는 세상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1. 오늘 본문 1-3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안내입니다. 오늘 당신이 속해 있는 세계, 당신이 바라보는 세계 그리고 당신이 꿈꾸는 세계는 어디인가? 에 대한 도전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속한 세계, 여러분들이 날마다 바라보는 세계 그리고 여러분이 꿈꾸는 세계는 어디입니까? 눈에 보이는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입니까?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곧 하나님의 세계 말씀의 세계, 영적 세계 성령의 세계, 믿음의 세계 승리의 세계입니까? 본문 말씀에서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세상을 주도하고 통치해가는 보이지 않는 세계 곧 하나님의 세계에 속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 속한 살며 그 세계의 힘과 능력과 복을 누릴 비결은 바로 믿음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라는 것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곧 내일이라고 대변되는 미래의 것을 성취할 확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상= 휘포타시스= 확실한 것. 보증
(이집트에서는 부동산에 대한 권리증서로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2. 여기에서 좀 멈춰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내일 여러분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습니까? 또한 여러분이 꿈꾸고 계획한 일들은 언제 성취되거나 열매 맺겠습니까? 그리고 오늘 여러분의 삶에 막혀있고 꼬인 일들은 과연 내일은 해결되겠습니까? 오늘과 내일 그리고 인생을 살아갈 동안 삶에 대한 모든 일들은 누구에 의해서 무엇을 통하여 어떻게 성취되겠습니까? 그래서 바라는 것들…. 곧 가려져있는 삶의 모든 일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고 맞서며 믿음으로 행하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실재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본문 7절에서는 이에 대한 증언으로 노아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3.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배는 본래 가능한 물에서 가까운 곳에서 만듭니다. 그런데 노아와 그 가족은 높디높은 산에서 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창7:17-19) 게다가 길이 300규빗(약 135m), 폭 50 규빗(약 22.5m), 높이 30규빗(약 13.5m)로 만들었으니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조롱과 비웃음, 멸시와 핍박을 받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노아와 그 가족은 묵묵히 방주를 짓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수고하여 드디어 방주를 완성합니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세상의 모든 손가락질을 넘어서서 방주를 완성하고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고 새 창조의 시작을 이루어갈 의의 사람들이 되게 하였을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해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신뢰하였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6절에서도 힘 있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4. 여러분! 방주의 의미를 아십니까? 방주는 물위는 항해하는 떠다니는 배가 아니었습니다. 방주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같은 궤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언약궤: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아론의 싹난 지팡이,언약의 돌판들)곧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한 자들이 담겨진 곳!!! 그것이 하나님의 방주였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 했던 노아와 같은 믿음의 성도들이 되어 하나님의 궤에 담겨진 구원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요 능력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상을 베푸시고 내 머리에 복락의 기름을 부으시는 분이십니다.’ 라고 선포하고 일하고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어서 그 믿음대로 열매 맺는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이제 다시 본문 1절의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곧 믿음은 영적 세계를 보며 영적 세계의 신비한 은혜와 복을 누리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 세계가 눈에 보입니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거의 누구나 깨닫습니다.
세상 사람들조차도 영적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힘을 빌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것을 알고 싶어 무당을 찾아가고 점집을 찾아가지 않습니까? 그러나 무당을 비롯한 점을 치는 사람들은 귀신의 영을 받아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당이나 점치는 사람들을 찾아가고 미신세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귀신이 이끄는 삶을 살다가 다 패가망신하고 결국 그 영혼마저 사단에게 헌납하게 됩니다.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레 20:6).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렘 29:8)
재미로라도, 호기심으로라도 귀신놀이에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재미로 보는 오늘의 운세)
6. 진실로 그렇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 곧 영적 세계에 대한 증거,영적 세계의 일들을 확실하게 이해하는 능력이요 영적 세계의 보배들을 열매 맺는 비결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가운데서 참으로 신비한 광경, 모든 지식과 이성의 힘을 동원한다 할지라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목도하게 됩니다. 에녹이라는 사람이 산채로 하늘에 올라갔는데 하나님께서 그을 친히 하늘로 들어 올리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화일까요? 동화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녹이라는 인물은 어떠했기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그 궁금증에 대하여 본문은 뭐라고 증언합니까? 에녹은 믿음의 사람이 있었는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삶의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친히 동행하심을 신뢰하며 행했다는 것입니다.
좀 더 생각해볼까요? 에녹이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서 하늘로 옮기심을 입을 정도의 믿음을 가졌다면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는 얼마나 많은 복을 거두며 살았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이 시대의 에녹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처음도 하나님이요 마지막도 하나님이시기를,시작도 예수님이요 마지막도 예수님 되는 삶이되기를 그리하여 에녹이 누렸던 이 땅과 하늘의 복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며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무엇으로부터 말미암는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신학적인 정의나 종교적인 정의가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언약하심 말씀하심, 세상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 무엇을 약속하셨는지, 그리고 그 언약하신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행하셨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행하심은 얼마나 신실하신지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이것이 믿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언약하셨습니까?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언약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하셨습니까? 독생자 예수를 잉태하셨고 그를 제물 삼아 그 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행하심은 어떠합니까? 아침저녁으로 변합니까?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는 신실함으로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예수십자가는 오늘도 살아서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고 있습니다.그렇습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을 믿고 보이는 이 세상에 노예 되어 살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에 속하여 살며 그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도 승리하고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세상에 들림 받을 삶을 살라 하는 것입니다.
❉ 믿음의 증인되는 믿음!!! 저는 여기에 모인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응답하는 큰 믿음 되어 앞선 믿음의 선진들처럼 살아계신 하나님, 은혜 주시는 하나님, 복을 베푸시는 하나님,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체험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