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갈대상자에 눕혀진 채 강물 위에 놓여진 한 아기 그리고 때마침 나일강으로 목욕하러 나온 애굽왕 파라오의 딸……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갈대상자에 눕혀진 히브리인의 아기는 과연 건짐 받을까? 만일 건짐 받는 다면 그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필연적 계획이요 섭리일까? 출애굽기 2장 5-6절 그리고 9-10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
그렇습니다. 부모의 믿음을 따라 일하신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모세라는 인물이 역사의 무대 앞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인의 아기와 나일강 그리고 애굽왕의 공주와 그의 아들이 된 모세….. 이것이 사람의 계획이겠습니까? 하나님의 계획이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의 삶에 인간적인 모든 계획들은 다 무너지고... 오직 하나님의 뜻하심만이 여러분의 믿음을 따라 성취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모세는 공주의 아들로 애굽 왕가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40년을 왕자로 살았으니 그의 몸에 익힌바 된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철학 등의 수준은 당대 최고였음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의 생활수준 그의 배움의 수준을 과연 세상 누기 따라 잡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애굽왕의 공주의 아들 됨을 버립니다. 애굽의 모든 보화를 거절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상 주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결단하고 애굽을 떠납니다.
출애굽기 2: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고된 노역에 시달리는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을 학대하는 애굽사람을 죽인 후 모세가 할 수 있는 것은 애굽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모세가 애굽왕이 무서워서 애굽을 떠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떠났다고 기록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애굽왕이 두려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이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점점점 생각과 마음과 영이 하나님을 향하여 흐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 나에게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하나님 외에 두려워할 존재가 그 어디에 있겠는가? 나를 나일강에서 건져 올리신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여 주시리라. 나와 함께 하시리라’ 이러한 정리된 믿음을 가지고 애굽을 떠나 미디안광야까지 나아갔다는 의미입니다.
3. 본문 말씀을 다시 볼까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모세는 이제 자유자가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애굽에 묶인 채 지낼 수가 없습니다. 나이가 40세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애굽왕의 공주의 아들로 살수는 없습니다. 더 이상 애굽왕의 권력에 기대에 살아서도 안 되고 그 권력에 눌려 지낼 수도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 히브리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애굽에서 빠져 나와 하나님의 땅으로 가야만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애굽왕의 통치를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감이 생명의 길이요 그 길이 승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은혜교회의 성도들이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끊어버렸더라. 은혜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두려워함이 없는 자유자가 되었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은혜성도들은 이미 예수그리스도로 거듭난 새 생명의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사람이 세상 무엇에 굴복당하며 예수말씀으로 사는 사람이 세상 무엇으로부터 겁을 먹는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14:8)
살아도 죽어도 오직 주를 위하여 라는 믿음가운데 이 세상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이 세상의 모든 권세들을 무너뜨리는 예수능력이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모세는 미디안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그는 그 4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를 아내로 맞이해 게르솜과 엘리에셀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돌보며 살았습니다. 무려 40년 동안 말입니다. 하루 아침에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왕궁이 아니라 광야요 화려한 곳이 아니라 소박하다 못해 촌스러움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과연 모세는 그곳에서 40년 동안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요? ‘아! 이 미디안 광야! 지겹다 지겨워. 해도 해도 일이 끝이 없네. 내가 누군데 양떼나 치며 산다는 말인가? 내가 어떤 교육을 받고 살았는데 이 황량한 미디안 땅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아! 그때 내가 왜 괜히 끼어들어서 애굽 사람을 죽여서 이 고생을 한다는 말인가?’ 과연 모세는 이렇게 후회하며 탄식하며 절망하는 삶을 살았을까요? 모세가 만일 그렇게 살았다면 성경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모세를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본문말씀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무슨 의미가 담겨있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모세는 4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늘 믿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묵상했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하나님을 늘 앞에 모시고 사는 것처럼 살았다는 것입니다. 양떼를 치면서도, 구름을 보면서도, 산등성이를 넘으면서도, 잃을 양을 찾아다니면서도, 거친 빵을 먹으면서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늘 하나님을 묵상하며 믿음의 인내로서 40년의 삶을 살아냈다는 의미입니다.
5.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하루하루가 믿음으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세계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눈에 볼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더 영광스럽고 더 힘이 있으며 더 권능이 역사하는 세계입니다. 삶의 진정한 승리는 보이는 세계를 쫓으며 사는 세속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 승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수여해 주십니다. 때로 어려운 일을 만날지라도, 때로 일이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도, 때로 건강을 잃어 연약할 때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자에게 영광의 승리가 임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품고 살아 하나님께서 수여해 주시는 영광스러운 인생승리를 거두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 이제 출애굽기 3장 1-4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 하는고 하니 그 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7. 그렇습니다. 40년의 광야 세월을 지나며 이모저모로 다듬어진 모세에게 하나님의 불의 임재 하심이, 하나님의 소명이, 하나님의 시간이 임한 것입니다. 곧 고통 받는 이스라엘백성을 하나님의 땅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임무, 거룩한 책무가 맡겨진 것입니다. 여러분! 질문한가지 할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과연 위대한 임무를 맡기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으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어찌 애굽왕 파라오에 맞서게 하며 이스라엘백성을 이끌고 출애굽 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오늘 말씀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인간모세가 하나님의 모세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믿음이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가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이 모세가 품었던 그 이상의 믿음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삶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