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3: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히]13: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 이 세상에서의 삶이 영원하다면? 이 땅의 재물이 영원하다면? 전능자, 절대자, 구원자가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욕심과 자기영광을 위해 살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처럼 우리가 숨쉬며 사는 이곳은 영구한 도성, 영원히 거할 곳, 취한 것을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못 된다. 그러하니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살라는 것입니까? 영구한 도성, 영생의 나라에 목적을 두고 살라는 것이다. 욕심을 쫓아 사는 사람과 비전에 붙들려 사는 사람, 육체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과 영혼의 만족을 위해 사는 사람…..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누구의 얼굴에서 하늘광채가 날까? 누구의 삶에서 하늘향기가 날까? 그리고 과연 누가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라고 승리를 선포할까? (축복과 권면)
[히]13: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 무슨 의미인가?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의 은혜와 복….그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았다. 그러하기에 예수이름으로 날마다 찬송의 제사를 드려라 즉,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가 열려지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주어졌음을 확신하는가? 그렇다면 찬송과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진실로 구원보다 더 큰 복이 없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온 삶을 드리는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다윗은 하루에 일곱 번씩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의 찬양은 어떠했을까? 그의 찬양을 받으신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사랑하셨을까?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라. 예배에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한 뜨거운 예배자가 되라. 하나님께서 친히 만지시고 힘주신다. 그 마음에 품은 것을 채우신다.)
[히]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의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에 속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다. 예수님의 희생제사는 새 창조의 은혜요 복이며 영생으로 나아가는 영광의 통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아래에 살아가는 신약의 성도들은 두 가지 제사를 드려야 한다.
첫째는 예수이름으로 드리는 찬미의 제사 오늘날 우리가 매주일 드리는 예배가 예수이름으로 드리는 찬미의 제사이다.
두 번째 제사는 삶의 제사이다. 삶의 제사란 16절의 말씀을 의미한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이 말씀에서 선을 행하는 것, 나누는 주는 것을 원어로는 “코이노니아” 라 하는데 그 본래의 뜻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뜻으로서 성도 간의 나눔과 교제를 의미합니다.
사도행전2장의 말씀을 보자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 그렇다. 주님과 사귐이 되는 삶이 되면 그는 하나님과 연합된 존재가 된다. 주님과 사귐이 되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연합된다. 주님과 사귐이 되면 그는 하나님의 성령 안에 거하게 된다. 그리하여 주님 안에서 하나된 형제들이 울 때 함께 울고, 웃을 때 함께 웃는 나눔의 사람이 된다. 진실로 여러분은 주님 안에 거하고 있는가? 진실로 여러분은 주님과 사귐의 삶을 사는가? 그 증명은 교회의 성도들을 향한 나눔과 베풂 속에서 나타난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주님의 형제자매들을 만날 때 적은 것이라도 나누고 베푸는 것이 성도의 예배요 성도의 제사라 한다. 주님의 성도들을 만날 때 빈손 되지 말고 적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는 제사 드리는 삶이되기를 바란다,)
❊교회의 다섯 가지 기능:
1. 예배 (레니토르기아)
2. 말씀, 선교(케리그마)
3. 교육(디다케)
4. 섬김(디아코니아)
5. 사귐(코이노니아)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
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 오늘 이 말씀은 왜 목회자에게 순종하고 순종할 수 없거든 복종하라 할까? 목회자가 신학을 공부한 목사이기 때문인가? 그의 지식과 경험과 인격이 남다르기 때문인가? 목회자에게 무슨 권위가 부여되어 있기에, 목회자들이 부여 받은 책임이 무엇이기에 그에게 순종과 복종을 하라 하는가? 그것은 다름아닌 그리스도의 말씀의 권위 그리스도의 목양의 권세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사가 성도들을 무엇으로 권면하고 축복해 가는가? 주님의 생명과 진리, 사랑과 위로, 소망과 은혜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축복해 가는 것이다. 또한 목회자가 어떤 심정으로 성도들에게 다가가는가?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인간 목사에게 순종하라는 것이 아니다. 말씀의 권위에 목자의 권세에 복종하라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날마다 번성한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세상을 이긴다.)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여러분! 목사의 심정을 아는가? (노심초사…….이 성도들이 주님의 길을 온전히 가야 할 텐데. 이미 받은 구원의 은혜를 놓치지 말고 성취해야 할 텐데. 세상 것 사랑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사랑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이 모든 성도가 하나도 낙오 없이 천국에 이를까? 여기 있는 성도 중에 천국 가지 못하는 일이 발생 하면 어떻게 하나? 그 고민을 하며 기도하는 것이 목회자이다.
❊ 믿음과 예물생활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비례한다. 믿음이 크면 클수록 예물제사가 더욱 깊고 크다. 믿음이 적은 이들은 늘 그대로다. 흉내만 낸다. 믿음이 크고 온전한 성도들은 십일조뿐 아니라 십이조도 십의 삼조까지도 드리는 예물생활을 한다. 즉 예수님께서 십일조 생활뿐 아니라 부모를 섬기는 일에도 재물을 드리라 하신 것처럼 신앙인으로서 인간의 도리와 사회적 책임을 더욱 많이 감당해 가는 것이다. 예물제사는 거룩한 부담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각자의 영혼을 위하시는 하나님의 경계선이다. 하나님께 드릴 것을 마땅히 드림으로, 하늘에 속한 성도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을 하게함으로 그 영혼이 세상과 세상의 것에 강탈당하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계명이기 때문이다. (❊물질을 쥐고 있으면 하나님의 세계가 보이지 않습니다. 물질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예물제사 잘 드리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삶의 창고를 풍성 충만으로 보장해주신다 약속하셨다. 나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말씀들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큰 믿음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 믿음의 제사는 예물제사이다.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여러분! 나는 근심하는 목사이고 싶지 않다. 나는 여러분들로 인하여 감사하고 기뻐하며 행복한 목사이고 싶다. 그러하기에 이 강단에서 말씀 드리고 기도하고 부탁하는 것을 여러분의 감정과 생각과 뜻으로 꺾지 말아야 한다.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주님의 교회의 질서이고 그 질서에 순복 할 때 성도들은 푸른 초장 맑은 물가의 풍요로운 복을 누리며 개인과 가정과 삶의 범사가 풍성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 영혼이 구원의 그늘 아래서 안전함을 입게 되는 것이다. (나는 더욱 행복한 목사이고 싶다. 여러분의 믿음이 더욱 견고하고 커서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될 때, 그리하여 하나님께 더욱 크고 놀라운 은혜와 복 누리는 것을 볼 때 저는 더욱 행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