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9월 16일. 아주 잘 생긴 젊은 청년이 찬양을 듣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온 학생이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서보니 그 청년은 아주 특이한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약간 검은색 나는 나무로 작았지만 심혈을 기울여 만든 십자가였습니다. “아주 특이한 십자가를 목에 걸었군요.” 그러자 청년은 “저의 아버지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목에 걸린 이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그러자 청년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분이 오늘도 나를 보호하여 주십니다. 십자가는 이런 의미입니다.” 저는 이야기가 그렇게 마무리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의 마지막 말이 아주 맘에 닿았습니다. “사람들이 제 목에 걸려있는 이 십자가를 보면 그는 제가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난 크리스천이고 싶습니다.”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 삶, 자신의 삶으로 그 목에 걸린 십자가를 증언하는 삶!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제자 된 삶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믿는 주님! 우리가 배워가는 주님! 우리가 만나고 체험한 예수님…… 그분의 십자가가 증언되고 있습니까?
❊ 오늘본문 10-12절의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이 말씀가운데서 핵심 되는 말씀은 일곱 교회와 일곱 금 촛대입니다. 일곱 촛대는 본문 20절에서 말씀한 것처럼 일곱 교회를 의미합니다. 본문의 핵심은 이 하늘의 편지를 받을 수신자가 교회라는 것이요 교회의 교회 됨인 성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교회와 성도들은 하늘의 편지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하나님의 편지를 받고 그대로 살아내겠다는 믿음의 다짐이 되어있습니까? (일곱 금 촛대로 나타내신 교회와 성도들의 신비: 움켜쥐려 하지 않고 찢어 베풀려 하고, 높이 있으나 낮은 삶을 찾아 행하고, 나도 아프지만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을 축복하는 성도의 삶……그들의 삶이 금 촛대요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편지를 완성해가는 참 교회이다. (세 개의 곶감과 나의 신앙)
❊ 이제 본문 13-16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여러분! 이 말씀을 읽고 듣는 동안 여러분의 심령에는 어떤 마음과 느낌 그리고 어떤 감동이 밀려옵니까? 참으로 신비한 감동, 두렵고 떨리는 마음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힘과 능력과 확신이 밀려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도요한은 이러한 예수그리스도의 엄위하신 모습을 보고서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 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스도로부터 나아오는 영광이 너무도 가득해서 감히 주님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거룩함의 광채가 너무도 찬란해서 감히 서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 사람의 아들 요한을 하나님의 사람 요한이 되도록 만나주신 분! 끓는 기름가마솥과 밧모섬의 극한 환난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게 하신 분! 예수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분이셨습니다. 그 놀라우신 분 예수님이 요한을 지나 하나님의 금 촛대 된 여러분들 사이에서 친히 일하십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우리 성도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걷는 길에 동행하시고, 내가 지치고 힘들 때 그 마음을 지켜주시며, 내가 건널 수 없는 강을 앞에 놓고 있을 때는 친히 나를 업고 가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 이스라엘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 그 바닷물을 가르시고 벽을 쳐서 백성들을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한 존재는 누구였습니까?
출애굽기 14장 21-22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오늘 내가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고난의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이르게 하신 분이 누구신가?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내 수고로 이만큼 이루었다.’ 생각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는 아직도 철부지입니다. 그 영광의 주님이 여러분들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함 가운데 그 어떤 홍해가 가로 막을지라도 담대하시길 축복합니다.
❊ 이제 우리는 사도요한이 목도한 예수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스런 주님이 우리들의 삶에 어떻게 역사하시는지에 대하여 발견해야겠습니다.
첫째는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인자 같은 존재” 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그리스도는 참 사람인 동시에 참신이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에스겔1:26)
❊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 인간들 사이로 내려오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악한 세상에 무슨 좋은 일이 있어서, 이 간사한 사람들에게서 무슨 영광을 얻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되심! 그것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왜요? 우리 인간이 얼마나 연약합니까? 얼마나 부족하며 깨어지기 쉽습니까? 게다가 영원한 저주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를 짊어지심!!! 나를 위해 죽으심!!! 그 영광의 은혜가 인자이신 십자가의 그리스도입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그 영광의 주님이 여러분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 능력의 주님이 여러분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에 힘이 솟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되심은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을 친히 사랑하신 하나님자신의 실제적인 사랑이요 완전한 희생의 헌신입니다. 그것도 고난과 고통이 없는 사랑이 아닌 가장 극한 고난과 고통을 통과한 사랑입니다.
스스로 계시는 분 전능자께서 왜 우리처럼 사람이 되셔야만 했는지……? 그 하나님이 왜 사람들의 손에 의해 가장 수치스럽고 저주스러운 나무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는지…..? 그 이유는 날마다 죄악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죄와 구원, 구원과 희생제물, 희생제물과 완전한 구원의 삯!!! 나! 나! 나! 나를 위함입니다. 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우리는 밝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그 놀랍고도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기헌신이 우리를 향해 쏟아지고 있음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가던 나를 깨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무너뜨려진 나 자신 안에 십자가를 세우고 그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영광되게 하는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생명을 먹었으니 생명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희생의 헌신을 입었으니 우리도 우리를 쪼개어 나누는 것이 마땅합니다. 진리의 생수를 마시니 진리가 되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완전한 사람이요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성도의 본분입니다. 이러한 능력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에 성취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평생 자신의 배만 불리며 살다가 죽는다면? 일평생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과 육체의 욕구만 채우다 죽는다면……생의 의미와 가치의 발견은 인자이신 십자가 예수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