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먼저 사무엘상의 본문 17-19절까지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참으로 안타깝고 가련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처음 마음, 감히 왕의 자리를 꿈도 꿀 수 없는 겸손함이었는데 그 높은 자리에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주심을 늘 기억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처음 사랑, 하나님께 두었던 처음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순종했더라면 그 왕좌를 누림은 물론 이스라엘 역사에 거룩하고 보배롭게 기록이 되었을 텐데…….. 이스라엘의 역사에 흐르는 하나님의 구원의 영광이 그와 그 자손들의 차지가 되었을 텐데 무엇이 그늘 멸망하게 하였을까?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욕심!
2.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첫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하심에 그대로 순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선하고 복되며 은혜로운 결말이 됨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첫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그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합니다.
사울의 실수는 실수가 아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던져버림 때문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은 하나님을 위함이 아닌 결국 자신을 높이고 자신의 배를 불리려 함 때문이었습니다. 부요해 질수록 하나님께 돌아가는 사람, 높아질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 드렸던 첫 마음 첫 사랑 그리고 첫 서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육체의 욕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삼키지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원토록 하나님의 복이 되는 주님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오늘 본문의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때 방문하여 세운 사도교회였습니다. 사도교회란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에 의해 직접 세워진 교회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겠습니까? 온갖 핍박과 조롱을 받으며 전한 복음의 열매가 에베소교회였습니다. 눈물로 세워진 교회, 기도로 세워진 교회, 충성으로 세워진 교회 그래서 하나님의 깊고 넓은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가득한 교회가 에베소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선교 여행을 할 때 이곳의 두란노서원에서 복음을 전하며 직접 2년 동안 목회를 하였던 것은(행19:9-10) 그가 얼마나 에베소교회를 마음에 품고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는 단면입니다.성도여러분! 바울의 심정으로 오늘 우리들의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고 충성하기를 바랍니다.
4. 에베소교회는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1)믿음과 행위가 일치하는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또한
2)소망의 인내를 이루어 가는 천국을 지향하는 교회였습니다. 또한
3)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는 거룩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거짓사도들을 가려낼 줄 아는 4)영적 분별력이 살아있는 교회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5)모든 일에 참고 견디며 부지런했던 교회였습니다.
한 마디로 흠 잡을 곳 없는 완벽한 교회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과연 이와 같은 교회가 얼마나 있을까? 또한 이러한 신앙의 삶으로 살아가는 성도는 과연 얼마나 될까?
5. 믿음과 행위가 일치하는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교회!
소망의 인내를 이루는 천국을 지향하는 교회!
악한 자들과 타협하지 않는 거룩한 교회!
영분별을 할 줄 아는 진리의 교회!
모든 일에 참고 견디며 부지런한 교회!
이러한 교회가 오늘 우리들의 교회요 바로 여러분의 신앙이 이와 같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상의 풍조가 아무리 빠르게 변화하여 복음대로 사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을지라도, 사단의 권세가 제 아무리 강하게 덤벼들지라도, 또한 먹고 사는 일이 아무리 고되다 할지라도, 또한 아말렉의 소와 양과 낙타가 아무리 탐스러워 보일지라도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열매 맺는 주님의 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6.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책망하십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여러분! 도대체 이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수많은 어려움과 극한 상황 속에서도 신실했던 교회요,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았던 교회요, 완벽하다 싶을 만한 교회였는데 책망이라니 말입니다. 어마어마한 책망입니다. 촛대를 옮긴다니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책망을 듣게 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7.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You have forsaken your first love.”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은
첫째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잃어 버렸다.(TEV역)
둘째는, 성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렸다.(제임스 모팻역)
셋째는, 잃어버린 자를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렸다(하쉘 홉스역)는 의미입니다.
단언적으로 말하면 주님의 사랑을 포기했다. 십자가사랑을 뒤로 던져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본질은 그리스도의 사랑이었는데 일만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 사랑, 처음 마음, 처음 열정을 던져버린 신앙의 행위가 과연 어떤 능력이 되며 그 어떤 탐스러운 열매를 맺겠습니까?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절)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는 순종함이 없는 번제와 제사가 하나님께 아무런 감동이 되지 않는 것처럼 십자가 사랑이 없는 종교적 행위로는 결코 주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8.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주를 믿는 믿음이 주님의 사랑 위에 세워졌습니까? 주님께 충성 헌신함이 진실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루어져갑니까? 또한 우리성도간의 교제와 사귐이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어우러지고 엮여져 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달려가다 보면 어느 샌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붙들고 있어야 할 것 대신에 엉뚱한 것을 붙들고 있기도 합니다. 마지막까지 진리를 붙들고 살아야 했는데 어느덧 그 진리의 자리에 자기 신념, 자기 확신, 자기 행위, 자기변명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세워져야 할 자리에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삼상15:12절)
얼마나 무서운 일을 저지른 것입니까? 그에 대한 값이 바로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자 버림을 당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9. 여러분!
혹 여러분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세워야할 자리에 에베소교회처럼 자신의 신념과 자기 경험과 자기 행위와 열심을 세워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한 그리스도가 세워져야 할 자리에 사울처럼 자신의 기념비를 세워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계시록 본문 5절과 7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우리에게 선택과 결정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결말을 원하고 있습니까? 은혜와 복의 촛대로부터 옮김을 당할는지……. 하나님의 낙원에 이르러 영생에 이르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거둘는지…. 선택!!!
참 믿음… 참 신앙의 절대적 근거와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최고봉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결코 그 어느것과도 바꿀 수없고 결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은혜입니다. 이것 붙들고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