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가복음 28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모든 앎의 근원이시오 마침이신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서 맞이하게 될 자신의 운명을 모르셨을까? 참혹한 고통을 당하며 저주의 나무에 못 막히실 것을 알고도 그리스도께는 왜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셨을까? 게다가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권능을 아주 쬐끔만 사용해도 이스라엘에 진치고 사는 사단의 무리들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 텐데 그리스도께서는 왜 겨우 새끼나귀를 타신 채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셨을까? 누구 때문일까?
2. 35-38절 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호산나 호산나 환호하는 무리들! 그러나 그들은 과연 그리스도의 예루살렘입성의 의미를 알고나 환호하는 것일까? 인간의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어버리시기 위해 십자가를 제단삼고 자신의 몸을 제물 삼아 희생제사를 치르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지나 영문 밖 골고다로 관통하시는 그리스도께 지워진 하나님의 뜻을 눈꼽만큼이라도 깨달았을까? 메시아를 기다린다던 그들이 하나님의 이 거룩한 희생제사의 뜻을 알았다면 그들의 환호소리는 계속되었을 텐데….. 왜 그 군중들의 함성은 뒤바뀌었을까? 심지어 제자들은 겁먹고 다 뿔뿔이 줄행랑을 쳤으니……호산나 그 찬양소리는 잦아들고…..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마가복음15:13절) 호산나를 외쳤던 무리들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소리친 군중들은 각각다른 사람들이었을까?
3. 본문 39-40절 말씀보겠습니다.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의 골고다십자가 제단으로 나아가시는 발걸음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으시다. 하나님의 일에 어깃장을 놓은 바리새인들….사단의 일꾼들이 환난과 핍박과 조롱과 채찍질과 심지어 죽음으로 제어하려 해도 주님의 발걸음은 오직 앞을 향하신다. 과연 누가 무엇으로 골고다 언덕의 죽음 넘어 부활의 아침을 향해 서슴없이 걸으시는 우리 주님을 제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당시의 기득권 세력들인 종교주의 자들은 거세게 달려들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축배를 들며 ‘눈엣가시가 제거되었다. 여전히 우리세상이다.’ 라고 좋아라 하겠지만 그들은 앞을 못 보는 맹인! 그들의 축배는 죽은 시체들의 탄식에 불과하다. 새 창조의 새 아침!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은 사람들이 침묵하면 심지어 돌들이라도 소리쳐서 알리게 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변개할 수 없는 완전하신 뜻!!!
오늘……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아니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호산나 즐거이 소리만 지르고 말 군중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그 어떤 환난가운데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관통하고 부활의 아침을 맞이할 참 제자가 되겠습니까?
4. [계]2: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계]2: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계]2: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
되…….
섬칫한 메시지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습니다. 발신자의 메시지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으면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그대로 넘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다움의 삶을 요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다움의 빛을 반드시 드러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아낌없이 날선 검으로 단번에 베어버리시겠다는 주님의 메시지는 이미 우리 앞에 던져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과연 그리스도의 편지에 제대로 응답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5. 이제 계시록의 본문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서 먼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하신 말씀의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버가모교회와 그 성도들이 처해있는 상황, 그리고 그 지역의 영적 상황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버가모는 “사단의 위, 사단의 왕좌가 있는 곳이라.” 한 것처럼 세상의 왕인 인간을 신처럼 섬기는 황제 숭배의 본거지였습니다.
6. 또한 신들의 왕이라는 제우스를 섬기는 신전과 뱀을 신으로 섬기는 아스클레피우스 신전을 비롯한 여러 신전이 세워져서 우상숭배가 가득했던 곳이었습니다. 우상숭배는 항상 성적인 타락과 연결되어있습니다. 한마디로 혼돈이요, 무질서요, 어두움으로 가득 찼던 곳이 바로 버가모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황제숭배에 무릎굻지 않았던 충성된 예수의 사람이었던 안디바가 참혹한 죽음에 처해지는 극한 위협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믿음의 행진을 계속하였습니다.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의 믿음행진은 혼돈가운데 뚜렷한 질서였고 어두움 가운데서 광명의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 사단의 무질서와 어두움의 한 가운데서도 안디바의 뒤를 잇는 순교적 신앙으로 살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안디바와 초기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은 과연 무슨 힘으로 그 시대를 살아내며 그리고 어디로 관통되기를 바랐던 것일까?
7.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하늘에 속한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어떤 힘있는 자들이 “너 계속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직장에서 해고 시켜버리겠다. 네가 계속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겠다고 하면 감옥에 처넣겠다. 세상에서 살려면 신앙에도 유연성이 있어야 해. 그렇게 고지식하게 믿으면 출세하기 힘들어. 나처럼 하면 큰 재물을 얻을 수 있어” 라고 위협하고 꼬득이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하겠습니까?
또한 제가 여러분이 보는 앞에서 복음 전한다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죽음을 당한다면 과연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극한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제자들처럼 다 도망가지 않을까요?........
8. 우리 육체의 힘! 인간적인 의지는 죽음의 공포를 감당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것을 다 성취하신 십자가의 예수님……인간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그리고 모든 권능가운데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공포와 환난과 위협과 죽음의 벽을 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힘과 능력과 권세가 우리의 연약함 안에서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수이름을 믿고 따르는 참 성도는 넘지 못할 것들을 넘어서는 능력이 됩니다.
성도여러분! 이 사실을 깨달아 확신가운데 거하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우리 주님의 이름은 가난도, 환란도, 절망도, 두려움도, 눈물도, 죽음도 모두 넘게 하시는 구원하는 능력의 이름입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에서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예수이름이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9.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주님의 성도로 부름 받은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버가모를 둘러싸고 있었던 영적 어두움보다 더 강력한 사단의 영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거기에 미쳐있지 않습니까?
황제숭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돈숭배!!! 코로나바이러스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한 그리스도의 편지는 무엇입니까?......’여전이 돈이 우상이 되어야 할까? 여전히 육체의 행복추구여야 할까? 여전히 안목의 정욕 육체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어야 할까?’………… 하나님보다 높거나 앞세웠던 모든 우상들을 무너뜨려야 할 때가 바로 이 시대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예수! 그 놀라우신 이름보다 앞선 것이 없음을 다시 깨닫는 시간입니다.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영문 밖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신 그리스도의 이유 있는 편지가 여러분에게서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이긴 자…. 그 영광을 위하여 보내신 편지!!! 또한 초기 버가모교회의 성도들이 그들의 사랑하는 형제 안디바와 함께 순교적 신앙으로 메시지 한 그 목적 있는 편지가 저와 여러분에게서 성취되기를.... 감추주었던 만나와 흰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