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부류는 죽음을 결실하는 사람들이다. 온갖 욕심을 품고 각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사람위에 살려고 하나 결국은 허무와 저주의 죽음 그리고 심판의 죽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그들을 세상사람 혹은 육체의 사람이라 한다. 다른 한 부류는 생명을 결실하는 사람들이다. 자발적인 고난, 자발적인 가난함, 자원하는 헌신과 충성, 자원하는 낮아짐의 삶으로 다른 사람들 아래에 사는 것 같으나 감사와 소망의 죽음을 맞이하며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그들을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라 부른다.
오늘 우리들의 삶의 추구는 예수그리스도로 사는 낮아짐입니까? 아니면 세상으로 사는 높아짐입니까?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하는 자는 생명 됩니다. 가장 크시고 가장 높으시며 가장 영광스러운 분이 가장 초라하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셨고 그리고 가장 참혹한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다면 그를 따르는 우리의 삶의 추구는 무엇이어야겠는가?
누가복음 17장 33절을 보겠습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영원한 나라의 삶을 위해서는 고난과 환난의 통과는 필수입니다.
2. 본문 10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 말씀을 다른 성경에서는 “네가 인내하라는 나의 명령을 지켰은즉” 혹은 “네가 견디라는 나의 명령을 지켰은즉” 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요8:51)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빌라델비아는 서머나 버가모처럼 황제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이 도시의 모든 세력을 잡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는 당연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후미진 곳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가난으로 인한 굶주림과 헐벗음을 감당해야 했고, 예수님 때문에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고되었겠습니까? 그러나 빌라델비아의 성도들은 “인내하라. 견디라. 참으라.”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오롯이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께 칭찬받는 성도의 반열에 세워진 것입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3. 하나님의 사람인 성도의 삶은 환난과 핍박과 고난이 연속되는 도상에 있습니다. 육체와 땅의 일들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세상과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21세기 오늘, 우리가 숨 쉬는 세상은 그야말로 혼돈입니다. 하루하루 혼돈을 들이마시고 있습니다. 도덕적으로는.....동성애가 이미 쓰나미입니다. 영적으로는....종교 통합을 외치며 그리스도교를 말살하려합니다. 진실로 시험의 때, 환난의 때가 임박한 것입니다. 과연 누가 우리를 시험가운데서, 환난 안에서 이기는 자 되게 하겠습니까? 무엇으로 시험의 때를 넘어서서 주님 앞에 서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그리스도께서 기쁨으로 여러분의 연약함을 도우실 신앙을 지닌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든 시험과 환난을 통과하여 정금의 사람들이 들어가는 그 나라를 차지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하늘에 소망을 둔 성도여러분! 풍성한 결실, 탐스러운 열매를 거두는 기쁨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습니다. 땀 흘리고 수고해야만 합니다. 비를 맞고 바람을 견뎌야 합니다. 뙤약볕의 고난도 지나야만 합니다. 하루, 한 주, 한 달, 두 달......... 인내하고 견디고 참아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풍성하고 탐스러운 결실의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불을 통과하지 않으면 정금은 얻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 됨과 같은 영원한 존귀의 영광의 얻으려면 어찌해야겠습니까?
야고보서 5장 7-8절에서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습니까? 주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고난당하며 핍박받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마지막까지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주님의 말씀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그 길이 성전의 기둥 됨의 영원한 존귀를 얻는 성도가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환난을 이기는 믿음으로!!!
5. 이제 본문 11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예수님께서 재림을 다시 한 번 강조 하십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아버지의 시간이 차면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로 온다. 나의 시간은 틀림없는 약속이다.” 말씀하십니다. 왜 주님께서는 재림의 날을 강조하실까?......그리스도께서 다시 강림하시는 그날, 그 시간은 모든 것이 변화되고 회복되며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주님 때문에 흘렸던 눈물은 온갖 보화의 기쁨으로 바뀌며, 복음 때문에 당했던 고난과 환난은 영원한 영광으로 수여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환난을 기꺼이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의 고난은 장차 맞이하게 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말입니다. 빌라델비아 성도들을 지나 오늘 여러분에게 그리스도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약속된 면류관, 준비하신 면류관이 있다하십니다. 과연 나는 그것을 차지할 수 있을까?
6. 옛적 주님께 칭찬 들었던 그들이 굳게 잡았던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목숨으로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재산이었을까? 지식이었을까? 명예였을까? 권력이었을까? 아니면 값진 것으로 장식한 집이었을까? 그러나 우리 모두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처럼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세상을 이기는 힘인 우리의 영혼을 견고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오히려 우리를 연약하게 할 뿐입니다.
세상 것에 눈독들이고 사는 사람들을 보았습니까? 향기롭습니까? 흠모할만합니까? 평화가 있습니까? 정이 있습니까? 온화하고 부드럽습니까? 재산이 많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보다 근심이 많습니다. 그 재산 잃어버릴까봐서 말입니다. 높은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은 일반서민들보다 훨씬 불안한 잠을 잡니다. 그 권력을 놓치게 될까 두려워서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 할지라도 심지어 목숨을 잃게 된다 할지라도 반드시 붙들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향해 예비해두신 승리자의 면류관, 하나님성전의 기둥 됨의 영원한 존귀의 복을 소유하게 할 신앙.......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입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사단과 그 세상은 우리성도가 승리자의 면류관, 영원한 하나님의 존귀를 얻지 못하도록 온갖 환난과 고난과 시험으로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나.......빌라델비아 성도의 뒤를 이어가는 우리는 믿음위에 믿음으로 예수님을 굳게 잡아 예비하신 승리와 존귀의 면류관을 다 차지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