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선택을 받아 성도가 된 우리들의 신앙은 뜨거워야 합니다. 미지근하다는 것은 섞였다는 것입니다. 찬물과 더운물이 반반씩! 마음은 하나이어야 하는데 두 개로 갈라서 한쪽은 하나님을 다른 한 쪽은 세상을 붙들고 산다면 그의 신앙은 결코 뜨거울 수 없습니다. 미지근한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런 신앙으로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온전히 사랑하거나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제대로 체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놀랍고 신비하며 무궁하고 영광스러운 역사하심을 날마다 체험하고 싶습니까? 그럴진댄 갈리지 않은 순전한 마음, 목숨도 아깝지 않다는 뜨거운 신앙으로 나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기 있는 주님의 모든 성도들이 종교인이 되지 아니하고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하고 은혜가득하며 신비한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행복한 신앙인들이 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쌓여가는 재물로 인하여 그리고 재물로 맛보는 세상의 부요함, 편안함 때문에 라오디게아의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는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엉망진창이 되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곤고한지, 얼마나 가련한지, 얼마나 쪼그라들었는지, 얼마나 암흑이 되었는지, 얼마나 누더기 된 옷을 입고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미지근해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면 그냥 토해버리시면 될 텐데, 형편없이 망가져서 온갖 냄새가 진동하면 멀리 내치시면 그만일 텐데 우리 주님께서는 그리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사랑과 치유와 회복의 은혜로 다가 가십니다.
본문 18-19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마지막 까지 사랑하시길 원하시고, 마지막까지 기회주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향한 마음입니다. 돌아오라! 회복되어라! 강건 하여라! 하십니다. 그 길은........
3. 첫째.......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흙 도가니에 일곱 번 제련한 것 같은 말씀의 금으로 새로워지는 삶이 되어라. 그리하여 세상의 그 어떤 유혹과 시험에도 무너지지 않는 거룩한 부자가 되어라.’ 하십니다. 세속의 부자는 매일매일 안목의 정욕과 육체의 탐욕을 쫓으며 살다가 영원한 형벌의 자리로 떨어집니다. ‘아! 조금 전에 본 그 명품이 눈에 아른아른 거리네. 그거 사야하는데 말이야!‘ 그들은 생명의 말씀의 통치를 거부한 사단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부자는 아무리 재물이 늘어도 그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로 골똘합니다. ‘내가 주를 위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도 복의 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감을 입습니다. 불로 연단한 금!!!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으로 빚어내는 삶!!!
4. 돌아오라! 회복되어라! 강건 하여라!...... 그 두 번째의 길은 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지 않게 하라........‘하나님의 어린양 십자가의 피로 직조된 의의 옷을 입으라. 그리하여 죄와 허물의 가리움을 받고 의의 열매를 가득히 맺는 빛의 사람이 되어라.’ 하십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옷을 입어도 죄와 허물은 가려지지 않습니다. 아니 세상의 화려하고 비싼 옷은 오히려 사람들을 죄악으로 더욱 몰아갑니다. 비싸고 화려한 옷 입고 어딜 갑니까? 무슨 일들을 벌입니까? 그러나 저렴한 옷을 입었을지라도 그 마음 안에 예수피의 옷을 입고 사는 사람은 의를 행하도록 부르심 받은 대로 살기에 그 삶에서 광채가 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의로 광채 나며 하나님께 영광 되는 삶!!! 누구의 것이어야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1:11) 여러분의 삶의 열매가 되기를 바랍니다.
5. 돌아오라! 회복되어라! 강건 하여라! 그 세 번째의 길은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성령 충만의 안약을 통하여 눈에 씌워진 세상비늘이 벗겨짐을 당하라. 그리하여 볼 것을 제대로 보고 사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되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환난이 고난이 창칼이 굶주림이 두렵겠습니까? 눈에 비늘이 벗겨져 하나님만 보이는 사람.......성령의 사람!!! 그는 세상이 감당할 수없는 사람이 됩니다. 이 시대의 성령의 사람.......바로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왜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향하여 아니 오늘 우리들을 향하여 이러한 엄중한 책망과 징계의 해결책을 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이기는 자되어 그리스도의 보좌에 함께 앉음의 영광, 영원한 구원의 잔치를 함께 누림의 은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바로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리스도의 사랑의 메시지가 들립니까? 영원한 생명과 복의 자리로 여러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까?
6. 이제 여기에서 빌립보서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빌립보서의 말씀가운데서 참으로 놀랍고 위대한 복음의 사람과 마주대하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에바브로디도! 그 뜻은 사랑스러운 자......... 그래서였을까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진실로 그렇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를 대표하여 로마감옥에 갇힌 바울을 돕기 위해 보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복음을 삶으로 보여준 바울을 진실로 사랑하고 따랐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로 기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넘치는 헌금을 거두어서 바울의 옥바라지를 위해 신실한 성도를 로마로 보냅니다. 그가 바로 에바브로디로입니다.
7. 마게도냐 빌립보에서 로마까지는 육로로 대략 2,000km 가 넘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교통 환경이 아니었는데 에바브로디도는 그 멀리까지 무슨 힘으로 갔을까요? 더구나 꽤 많은 액수의 돈을 가지고 장거리 여행을 한다는 것은 이미 목숨을 걸었다는 의미일터. 또한 그에게는 가정이나 생업이 없었을까요? 그는 그 위험천만한 일을 맡으면서 왜 한마디 핑계도 대지 않았을까? ‘나는 밭을 샀으니.........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니..........나는 장가를 들었으니......’.
핑계 댈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에바브로디도는 어찌 오직 순종하며 나아갔을까요? 은금을 얻는 일도 아니고, 명예나 권력을 얻는 일도 아닌.......겨우 옥바라지 하는 일을 위하여 말입니다. 게다가 그는 바울을 돕는 일을 하면서 죽을병에 걸립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온전히 충성을 다합니다.
8. 빌립보서 본문 30절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는 사람.......죽을병에 들었지만 충성을 멈추지 않는 사람.......에바브로디도! 만일 에바브로디도가 말씀의 통치를 받지 않는 세상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만일 에바브로디도가 세상의 고급스러운 옷을 탐내는 사람이었다면 어떠했을까? 또한 만일 에바브로디도가 세상 것에 눈꺼풀이 벗겨진 성령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떠했을까?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는 헌신과 충성은 커녕 주님의 일에 아예 외면했을 것입니다. 복음으로 빚어진 삶이기에 목숨도 기꺼이 주를 위해 드린 것입니다. 과연 세상의 부자 누가 에바브로디도를 능가하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오늘 이 시대에 새로운 에바브로디도를 부르십니다.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는 헌신과 충성으로 주님의 일을 할 사람 말입니다. 누가 이 시대의 정금의 말씀으로 새로워진 자이며, 누가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피의 옷을 입은 자이며, 누가 이 시대의 성령의 사람입니까? 여기에 있는 여러분 모두가 이 시대의 에바브로디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