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주 전 서부역 전도 집회 때 4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다가오더니 ‘복음을 전해주어 고맙습니다. 우리 헝가리를 위해서 이렇게 외쳐주니 감사합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민족을 위해 목사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방에서 한 송이 꽃이 들어있는 가로 세로 20cm 정도의 액자를 주면서 ‘이것은 제가 찍은 사진을 이렇게 액자로 만들어서 정말 꼭 필요하고 귀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누고 있습니다. 내 마음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에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이렇게 받은바 은혜와 사랑을 나눕니다.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나는 이 일을 행할 것입니다. 목사님도 힘내서 더욱 외쳐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며 내게 선물로 주는 것이었습니다. 흰 나무액자에 한 송이 꽃 사진의 바탕에는 다음의 시편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시편86:12-13절)
구원받은 자의 믿음으로 사는 그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누군가 그 심령 안에 십자가의 예수님을 모셨다면 그의 삶은 반드시 예수님을 비추는 등불, 복음의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심령이 주님예수로 더욱 충만하여 예수님을 비추는 등불로, 복음의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되는 삶이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나는 어떻게 이곳 헝가리까지 오게 되었을까? 오늘 왜 나는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 나는 언제까지 이곳에서 살게 될까? 나는 오늘 왜 원치도 않았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이 고난과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걸어가야만 할까? 아! 코로나는 언제쯤 종식이 될까? 코로나 이후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일 년 후에는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과연 나는 행복하게 생을 마칠 수 있을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지혜와 지식과 경험으로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나 자신을 향한, 가족을 향한 그리고 나라와 인류와 전 우주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이 인생사요 세상사입니다.
사도 바울이 증언합니다. “세상이 자기의 지혜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고전1:21) 죄인인 인간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인 하나님의 일을 어찌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인 우리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는 언제나 옳고, 언제나 최고이고, 언제나 선하고 복되고 보배롭게 완성된다는 사실입니다.
3. 우리가 잘 아는 사람, 꿈꾸는 자로 불리던 요셉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상에 팔려가는 그 상황의 비밀을 과연 누가 알겠습니까? 보디발의 종으로 팔려가서 온갖 험난한 세월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던 요셉의 삶에 대한 비밀을 과연 누가 알아내겠습니까? 또한 오르는가 싶더니 더 깊은 나락으로 꼬꾸라져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감옥살이에 빠져든 그 고난의 비밀은 누가 알겠습니까?.........오랜 세월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고 극적으로 형제들을 만나 요셉이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45:7-8절)
4.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셨다!!! 그렇습니다. 헤아릴 수 없고, 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우리들의 인생길의 완성자는 오직 하나님 이십니다. 그 지존하신 분께서 오늘 여러분의 길을 정하셨고 그 길을 따라 오늘도 내일도 선한 목자가 되셔서 인도해 가십니다. 때로는 돌부리가 가득한 산언덕으로, 때로는 차가운 강물 속으로 끌고 가십니다. 때로는 모래밭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은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시며 하늘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처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뢰하며 순종하는 사람 그들은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립니다. 아바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복을 열매 맺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삶도 요셉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내게 이와 같이 행하셨습니다.’ 라는 가려진 신비가 열매 맺는 복된 삶이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이제 계시록의 본문 4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하늘에서 펼쳐지는 천상의 예배, 하늘예배의 그 거룩하고 장엄한 광경을 목도했던 사도 요한이 이제는 어찌된 일인지 크게 소리를 내어 울고 있습니다. 그는 왜 심장이 타들어가듯 소리 내어 크게 울고 또 울고 있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져있는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2절에서 말씀합니다.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즉, 닫혀있던 것을 열어야 하는데, 감추어 있던 것을 보아야하는데, 화를 복으로, 눈물을 기쁨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그에 합당한 자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고 여겼던 사도 요한은 통곡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멈춰버린 것 같은 삶이 다시 흘러야 하는데, 갇혀버린 것 같은 삶이 다시 힘차게 자유 해야 하는데, 얽힌 삶이 술술 풀려야 하는데.......어찌해야 할까? 누가 나를 이 환난에서 고난에서 눈물에서 건져줄까?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올까?)
6. 하나님의 성도로 택함을 입은 여러분!
잠시 생각해 볼까요? 한국으로 아주 급히 가야할 일이 생겼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헝가리에 갇혀서 갈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요? 수고와 땀 흘림만 있고 추수가 없다면? 눈물만 있고 기쁨이 없다면? 흑암만 있고 광명이 없다면, 절망만 있고 소망이 없다면? 인생의 마지막 날에 나를 죽음을 관통하고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인도할 존재가 없다면? 그 마음 그 삶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사도요한은 큰 소리로 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진 베일에 가려진 여러분의 삶의 운명을 열어 고치고 다듬으며, 부수고 다시 세워 구원의 흰옷을 입혀줄 존재는 누구입니까?
7. 그러나 걱정 할 것이 없습니다. 사도요한처럼 심장이 터질듯 소리 내어 울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십사 장로 중 한 사람이 가르쳐 주듯이 다윗의 뿌리에서 태어나신 그 영광의 존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아 살다가 영원한 저주 아래서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할 우리흙덩어리들에게 영생의 길을 놓으신 분! 친히 저주의 십자가로 오르시고 그곳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다 내어주시고 승리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에게로 이미 오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로 오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마땅히 소리 높여 울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 쳐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심장이 터질듯이 고통스럽게 울어야만 합니다. 소망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울 것이 아닙니다. 낙심하거나 절망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바울처럼 절대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예수그리스도로 하루 일곱 번씩 찬양해야 합니다.
본문 5절에서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눈물을 기쁨으로, 실패를 승리로, 암흑을 광명으로 바꾸실 주님이 계신데 왜 운다는 말입니까? 이 진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내일을 볼 수 없으나 모든 것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매일의 삶을 도우시며 이끄시며 마침내 하나님아버지의 뜻으로 완성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약속이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서 반드시 성취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