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지인케젤렘교회에 벤체라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12학년의 쌍둥이 딸들이
있고 그는 그의 자녀들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그의 아내는 학교선생님이고 벤체성도는 쎄멜바이즈의대와 데브레첸의대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벤체성도는 진실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고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가 성전공사를 시작 한다고 할 때부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목사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하겠습니다. 페인트칠도 할 수 있고 잔일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성전을 세우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돕고 싶습니다.’ 참으로 진실하게 말했기에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 맡길 일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너무 험한 일들이었고 위험스러운 일들도 적잖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일 그가 다시 말했습니다. ‘목사님! 뭐 도울 일이 없습니까? 이번 주 목요일에는 강의가 없어서 오후 2시까지는 일할 수 있습니다.’ 마침 공사하면서 생긴 건축쓰레기들을 치울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요일에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가장 큰 건축물쓰레기 컨테이너를 불렀습니다. 얼마나 그 양이 많은지 한 대 가지고 될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어서 급하게 다시 한 대를 불러 다 정리를 했습니다. 벤체성도가 인부들과 함께 아주 열심히 일을 해주었습니다. 온몸은 땀으로 가득했고 숨소리도 거칠었습니다. 그가 함께함이 참으로 감사했고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신 제사가 된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사실 벤체성도는 얼마 전부터 심장이 너무 느리게 뛰고 있어서 진단을 받고자 그날 오후 병원에 예약을 한 상태였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일을 했던 것입니다. 잠시 생각해봅시다. 대학의 교수가 건축물 쓰레기 청소하겠다고 허름한 옷을 입고 1구역에서부터 8구역까지 온 그 열심은 무엇때문 이었을까요? 또한 자신의 심장 상태가 건강하지 못하여 병원까지 예약해 놓은 날 몸을 사리지 않고 그렇게 무거운 쓰레기들을 나른 그 헌신은 누구를 위함입니까? 만일 벤체성도에게 예수복음이 없었다면, 만일 그가 예수피의 공로를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행할 수 있었을까? 오늘 여러분에게서는 예수복음이 살아 역사합니까? 오늘 여러분은 진실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그 피의 공로를 알고 있습니까? 예수복음이 살아있는 사람,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피의 공로를 알고 있는 사람! 그는 삶으로 제사 드리는 사람이 됩니다.
2. 이제 계시록의 본문 9-10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본문에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밝혀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9절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럼
첫째로 “사람들을 피로 값 주고 샀다.’ 라는 말씀의 원어를 보겠습니다.
원어로는 ‘아고라조’ 라 합니다. 그 뜻은 ‘사람들의 생명의 값을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지불하셨다. 따라서 사람의 생명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소유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라는 말씀의 첫 메시지는 우리의 생명은 더 이상 우리자신의 것이 아닌 값을 치르고 사신 주님께 있기에 우리의 전 생애를 주님의 뜻에 온전히 드림이 되도록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명의 소유권이 자신이 아닌 주님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인정합니까?(무슨 소릴. 내 생명 내 것이지. 주님이 누구인데 내 인생을 간섭하는 것이냐)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듯이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사는 삶은 철저하게 세상길로 나아갑니다. 내가 주인 된 삶이란 육체가 이끄는 삶이요, 육체의 본성은 세상의 즐거움을 �i아가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19-21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세상 사람들의 실체 아닙니까? 아니 예수 믿는다고는 하나 거듭나지 못한 자들의 실상 아닙니까?
4. 따라서 그리스도의 핏 값의 은혜를 깨달은 성도는 자신의 생명에 대한 소유권을 오직주님께만 드려야합니다. 우리가 9월의 기도로 함께 드린 것처럼 먹든지 마시든지 그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19-20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절)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끊임없이 사람들을 향하여 들려지는 메시지입니다. ‘너희 생명의 소유권은 예수님께 있다.’
주님의 성도여러분! 우리의 몸을 육체의 욕심이 날뛰는 사단의 소굴이 아닌 성령이 역사하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움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우리 생애의 목표가 이 땅에서 부자 되고 높아지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의 삶의 행로는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나의 생명의 소유권이 주님께 있다는 권리증명서입니다.
5.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리증명서가 주님께 이미 넘겨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다수의 교인들이 받은바 예수십자가 피의 은혜를 잊고 사는 정도가 아니라 여전히 육체의 소욕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거스르며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십자가를 배반하고 말씀을 거스르는 것을 밥 먹듯이 해서 이제는 양심에 가책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정직해야 할 성도의 본문을 잊고 늘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삽니다. 의롭게 살아야할 성도의 본분을 팽개치고 불의한 사람으로 삽니다. 나누고 베풀며 살아야 할 성도가 욕심의 바벨탑을 쌓고 삽니다. 다 그 육체를 위함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값을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다시 은혜가 흐르겠습니까? 이러한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피가 열매 맺겠습니까? 베드로사도의 메시지를 보겠습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베드로후서2:20-22절)
그리스도의 피에 합당한 삶!!!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먹는 밥은 같을지라도 삶을 살아낸 열매는 달라야 합니다. 마시는 물이나 커피나 차는 같을지라도 삶의 이유와 목적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입는 옷이나 신는 신발은 같을지라도 행복의 이유 기쁨의 이유는 분명하게 달라야 합니다.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내 생명에 대한 권리증명서는 이미 주님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6. 이제는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의 말씀 속에 담긴 두 번째 메시지의 원어는 ‘엑싸고라조’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인간을 위한 대속의 희생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 안으로 부터 잉태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우리 스스로가 당해야할 저주와 고난과 죽음을 친히 자신의 몸에 짊어짐으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셨다. 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0장10-12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그 완전하신 몸으로 영원한 속죄의 제사, 희생의 제사를 드리심으로 나와 여러분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죄인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의인으로, 세속의 사람이 아닌 예수십자가로 말미암은 거룩함을 입은 사람으로 그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7. 운명이 바뀐 사람들!!!! 우리성도가 복음 때문에 때로는 세상에서 이런 저런 일로 수치와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가난과 눈물을 머금기도 하고, 고난과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우리의 이름은 여전히 하나님께 드림이 된 거룩한 사람! 성도입니다. 그리고 우리성도의 정체성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영생의 존재입니다. 거룩한 사람! 영생의 존재! 세상에 이보다 더한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 이 보다 높고 존귀한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늘의 별에 비교하겠습니까? 들녘의 꽃에 비교하겠습니까? 이 세상의 왕들에 비교하겠습니까?
그러하기에 본문12-13절의 찬송은 우리성도들의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나는 여러분이 예수피로 말미암은 운명이 바뀐 사람다움의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에게 입혀진 거룩한 성도의 옷에 합당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존재다움의 행함이 결실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