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25:11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하나님께 벗이라 칭함을 받았던 그 위대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도 결국은 죽음으로 넘어 갔습니다. 모든 인간은 흙에서 왔기에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창3:19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그런데 여기에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 아브라함 그는 자신이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에서 과연 부활에 대해 생각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다음의 말씀은 죽음을 앞둔 아브라함이 어떤 생각을 했을 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창]25:8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
여러분은 이 말씀에서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라는 말씀을 대하면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아브라함은 죽어서 끝난 존재로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죽었으나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 혹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까?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라는 말의 실제적인 의미는 ‘몸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은 복을 입은 자들의 처소로 들어갔다.’ 라는 의미입니다. ‘곧 다시 만나게 될 존재!!’ 라는 깊은 뜻을 품고 있습니다. -
[갈]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사랑하는 주님의 성도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말씀으로, 주님의 성령으로 축복하고 축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처럼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반열에 세움을 입어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본문 11절의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 [창]25:11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
아브라함이 죽었을진대 아브라함에게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죽었으니 이제 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도 폐하여 지는 것일까요? - 아브라함은 이삭을 사랑하고 더욱 사랑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무려 백세에 이삭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삭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약속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 [갈]4:22 기록된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갈]4: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은 아들이니 얼마나 애지중지했겠습니까? 게다가 모리아 산에서 여호와 이레의 영광을 함께 체험하였기에 서로의 마음은 더욱 결속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삭의 신부를 찾기 위해 온 마음을 쏟은 아브라함의 모습은 이삭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이나 그두라에게 낳은 자녀들에 대해서 신부감을 찾기 위해 그렇게 마음을 쏟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 ❋ 자녀들을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고 축복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그 깊고 깊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의지하며 살았던 이삭! 그러나 이제 그는 누구를 의지 할 것입니까? 과연 누가 그를 복된 길로 인도하겠습니까? 이에 대해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 아브라함은 그의 열조에게로 떠났지만 그의 일생가운데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영광과 복과 은혜가 여전히 이삭의 삶에서 역사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이삭을 붙들고 그 삶을 성취해 가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창]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17: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오늘 여러분의 삶을 시작하고 붙들고 계신 분은 누구입니까? 오늘 여러분의 삶의 방향을 인도하시고 이끌어 가는 분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과연 누가 여러분에게 복을 베풀어 주며 여러분의 삶을 성취할 것입니까? - 아브라함의 삶을 시작하시고 붙드셨던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수많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를 걸음걸음 인도하신 분! 복의 복으로 기름 부으시고 약속을 성취하신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살아계신 하나님이 바로 오늘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자녀들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 하나님을 확신하고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온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복을 넘어 더 깊고 넓은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 [갈]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 [창]25:12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창]25:13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창]25:14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창]25:15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창]25:16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
이 말씀은 본문에서 밝히는 것처럼 하갈에게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아들들에 대한 소개입니다. 무려 열두 명입니다. 이스마엘의 아들들은 그 이름을 따라서 각자의 부족을 이루어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창]25:16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 엄청난 부와 명예와 권세를 얻어 땅의 지경을 넓히며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이스마엘의 아들들은 어떻게 해서 열두 족속을 형성하며 근동지역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는 복을 누리게 되었을까? 게다가 그들은 약속의 아들이 아닌 하갈에게서 낳은 육체의 자손이었는데 말입니다. - 육체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의 아들들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이러한 복을 누린 그 비결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열두 명의 자녀들이 한 결 같이 지혜롭고 똑똑하고 부지런해서 얻게 된 복일까? 지혜롭다고, 똑똑하다고, 부지런하다고 다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닐진대 과연 그들의 복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요?
❋ [창]17:20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
그렇습니다. 이스마엘족속이 누린 복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그대로 이루어 가시는 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불변 실현되는 하나님의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은 말씀하신바 그대로 지금도 이루어 주십니다. -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며 수고하는 사람에게는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복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복을 누립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고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베푸시는 은혜와 복을 누립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리스도의 삶을 열매 맺는 성도에게는 영생의 영광까지 주십니다.
❋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육체의 자손에게도 그 놀라운 복을 베푸신 하나님이실진대 오늘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새 언약 안에 있는 여러분을 향한 사랑과 복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 이 지점에서 깊이 생각해 볼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십이’ 라는 언약의 수입니다. 먼저 본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수가 열둘이고 열두 부족장이 되었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이미 잘 아시는 것처럼 이삭의 후손도 후에는 야곱을 통하여 열두 자녀와 지파를 가지게 됩니다. 제사장들의 흉패에는 열두 가지 보석으로 수를 놓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의 수도 열둘이고 천국문은 열두 진주 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기초석도 열두 가지 보석으로 다듬어졌으며 새 예루살렘에는 생명 생수를 마시며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나무들로 충만합니다. 성경속의 모든 숫자의 결국은 구원받을 자와 구원에서 제외될 자의 수로 구분됩니다.(짐승의 수를 받은 사람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 그 구원의 수, 사랑 받는 자, 쓰임 받는 자, 영광 돌리는 자, 그리고 영원한 영광을 누릴 자의 언약 안에 들어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반드시 그 은혜 안에 거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창]25:17 이스마엘은 향년이 백삼십칠 세에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고/ Altogether, Ishmael lived a hundred and thirty-seven years. He breathed his last and died, and he was gathered to his people. / [창]25:17 이스마엘은 백서른일곱 살까지 살다가 숨을 거두어 조상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 [창]25:8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Then Abraham breathed his last and died at a good old age, an old man and full of years; and he was gathered to his people / [창]25:8아브라함은 오랫동안, 평안히 살다가 숨을 거두어 자기 조상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죽음에는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왜 아브라함의 죽음에는 오랫동안, 평안히 at a good old age, an old man and full of years; 라고 기록하고, 왜 이스마엘의 죽음에 대한보고는 아주 일반적일까? 또한 아브라함이 죽어 돌아간 곳과 이스마엘이 죽어 돌아간 곳은 과연 같은 곳일까?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고”- 왜 이러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요? 죽음이라고 다 같은 죽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완성된 구원의 나라, 믿음의 열조들이 있는 같은 곳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 [마]25: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저와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언약의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죽음의 결국을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