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31:36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창]31:37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라반은 칠일 동안의 끈질긴 추격 끝에 야곱의 일행과 맞닥뜨렸다. 마음 같아서는 야곱을 실컷 두들겨 패고 빈손으로 돌려보내고 싶었겠지만 도무지 그럴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셨기 때문이다. 라반은 하나님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지만 비록 꿈일지라도 하나님의 현현 앞에서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개입 앞에 인간의 힘은 무력해지며 계획은 꺾일 수밖에 없다. 피조물인 사람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
([창]31:29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세상 사람들과 그들이 가진 힘과 권력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분의 뒤에는 여러분의 삶에 친히 개입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개입으로 야곱을 해칠 수 없게 된 라반은 다른 문제를 들고 나온다. 자신이 숭배하던 드라빔이(고대 근동 지방의 가정 수호신: 테라핌, Teraphim: 재산보호, 다산) 없어졌다는 것이다. 마치 본래의 문제에서 밀리자 새로운 혐의를 제기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의 법정용어로 말하면 별건 수사와 비슷하다. - ‘저 사람이 뭔가 수상해! 분명 숨겨진 문제가 있을 거야!’ -증거도 없는데 의심 부터하고 보는 타락한 본성의 습성이다. 이에 대한 야곱의 반응은 분명하고 단호하다. "내 허물이 무엇입니까? 내게서 무슨 죄를 발견했습니까?" - 당당했다는 것이다.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 야곱은 결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증거를 요구한다.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 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 내었나이까-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해 보십시오. 드러난 증거가 있습니까?”- 21세기 오늘날도 사람들은 소문과 추측으로 타인을 판단한다. SNS의 여론재판, 직장에서의 뒷말, 공동체 안에서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그렇다. 그러나 의심과 추측은 증거물이 될 수 없다. (함부로 의심하면 곤란하다.) - 야곱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력! - 성실함과 정직함을 내놓는다. 그것이 그의 가장 강력한 변호인이었기 때문이다.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
결정적인 것은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삶이다.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은 검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검증할수록 흠잡기 어려운 눈부신 삶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야곱이 라반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힘은 큰 목소리도, 뛰어난 언변도 아닌 ‘하나님 앞에서 살아온 삶!’ 그 자체에 있었다. 오늘 여러분과 내가 세상과 세상 사람들 앞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는 삶의 이력은 무엇인가?
❋ [창]31:38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창]31:39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창]31: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
남의 일에 어찌 이와 같이 정성을 다할 수 있으며, 부지런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찌 이와 같이 신실하고 성실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놀라운 성품과 인격의 근원은 무엇일까? - 야곱은 주인이 아니라 고용된 목자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회사의 주인도 아니고 CEO도 아닌 한 직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야곱은 주인보다 더 주인처럼 일했다. 그는 "암양들과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연이 아닌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살핀 결과였다. 또한 그는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신의 기력보충을 위해 남의 것을 탐내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손해를 대하는 태도다. 맹수에게 물려간 것도, 도둑맞은 것도 자신이 책임지고 보상했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지만 기꺼이 책임을 졌다.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
부당한 요구였다. 야곱의 이 놀라운 성품과 인격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이었다. 내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셨기 때문에 충성한 것이다. (오늘 여러분이 하는 일 누가 맡기셨을까?)
❋ [눅]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
야곱은 이 진리를 삶으로 보여 주었다. 내 것이 아니어도 내 것처럼 돌보는 사람! 주인이 아니어도 주인처럼 책임지는 사람! 보상이 없어도 충성을 멈추지 않는 사람!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에게 더 큰 것을 맡기신다. 충성스러운 청지기!!!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막]3: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모든 일에- 직장에서, 사업에서, 학업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이와 같이 충성되게 헌신함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은혜 입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목회자들의 충성이 야곱과 같다면!!!)
❋ [창]31: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창]31: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
본문 41절과 42절은 극명하게 대조된다. 41절이 우리가 살아가는 고약한 세상과 인간의 현실을 보여 준다면-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
42절은 그 현실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살았다. 그 길고 고된 세월 속에서 야곱은 끊임없이 속임을 당했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품삯은 수시로 바뀌었고 약속은 번번이 뒤집혔다. ‘아! 내가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였을 때 나의 형과 아버지의 마음이 이러했겠구나!’ -야곱은 그 거친 광야 이십년의 삶을 살며 깎이고 깎였다. 다듬어지고 다듬어졌다. (재산보다 더욱 값진 것은 다듬어진 인격과 성품이다.)
❋ 욕심에 눈먼 사람! 술수에 뛰어난 사람!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한 사람! 냉랭한 사람! 라반은 먼 옛날의 인물이 아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그와 같은 사람을 수도 없이 만난다. 그와 같은 환경에 수시로 처한다. -이익에 따라 계약조건이 바뀐다. 사람들을 성과 중심의 도구로 사용한다. 어려운 일은 아랫사람이 감당하고 공로는 윗사람이 가져간다. 문제가 발생하면 부하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부당한 대우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찢어진다. "이제 그만두고 싶다." 인생 자체가 부당한 대우가 넘쳐나는 광야 생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도들의 삶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도를 빈손 되게 하지 않으신다.
“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 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
야곱은 자신에게 임한 역전의 복과 은혜를 선포한다. “살아계신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나의 고난을 보셨음으로 나의 보장이 되셨고, 살아계신 이삭의 하나님께서 나의 수고를 기억하셨음으로 나의 방패가 되셨으며, 나와 언약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개입하심으로 오늘의 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라반과 그 세상에 대하여 선포한 것이다.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나의 고난을 보셨음으로! 나의 수고를 기억하셨음으로! 나의 삶에 개입하심으로!’ -여러분을 향한 말씀이다.
❋ 주님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여러분과 나도 마찬가지다. 성도라고 해서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억울함도 있고 손해도 있다. 눈물도 있고 긴 고통의 시간도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은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의 고난을 보고 계신다. 여러분의 수고를 잊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을 기억하시고 여러분의 삶에 친히 개입하고 계신다. 이 놀라운 은혜와 복 가운데 더욱 견고하게 세움을 입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