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본문 23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우리는 이 짧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의 믿음의 결기를 보게 됩니다.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는 믿음의 결기,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연한 모습이 모세의 부모에게 강력하게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모세가 태어난 시대는 애굽왕 파라오의 이스라엘민족을 향한 핍박과 학대가 최고조에 달하던 때였습니다. 왕궁을 짓고 성을 건축하는 무거운 노역뿐만 아니라 온갖 궂은일과 농사짓는 일까지 하게하였는데 그 모든 일이 아주 힘겹고 엄격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백성은 숨도 허락 받고 쉬어야 할 처지였습니다. 게다가 파라오는 이스라엘 중에 남자아기가 태어나면 모두 다 죽이라고 명령을 했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백성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강대해져서 애굽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시는 이스라엘은 고난 중에서도 번성하고 창대하고 견고해져 갔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손이 늘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출애굽기 1장 12절과 22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파라오는 참으로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찌 그렇게 생명을 함부로 할 수 있는지? 어찌 그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지 말입니다. 실로 그는 악한 자였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모세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절대권력인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부모의 죽음과 모세의 죽음이 될 것이고 왕의 명령을 따르면 이제 막 태어난 모세는 나일강에 던져져야 될 텐데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모세의 부모 된 입장에 서있다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겠습니까? 왕의 명령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거부하겠습니까? 진퇴양난!!!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곧 파라오에게 자신들의 목숨을 맡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들의 목숨을 맡긴 것입니다. 파라오의 명령은 결코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의 명령은 악한 것이었고 불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어떤 환경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잠시 살겠다고, 조금 더 얻겠다고 악하고 불의한 것에 타협하고 무릎 꿇을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의 신앙이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본문 23절의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이 말씀 속에서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볼 때에 ‘아름다운 아이로 보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모든 아기들은 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굳이 이렇게 기록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자신들의 아이를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기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아이 하나님의 은혜가 담긴 아이!!! 아름다운 아이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아이!!!
진실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현재의 상황 속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그리고 진실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하심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세력, 그 어떤 권세, 그 어떤 고난 앞에서도 굴복 당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의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 그리고 메시지가 있음을 확신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뜻하심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과 같은 믿음으로 세상의 모든 불의한 권세들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결국을 성취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이제 본문 24-26절의 말씀으로 함께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앞절은 모세의 부모에 대한 믿음이었다면 이제는 모세의 믿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가운데는 세상사람들이 그토록 탐내고 얻기를 힘쓰나 그림의 떡 같은 두 개의 단어가 놓여있습니다. 그것은 ‘바로의 공주의 아들’ 이라는 것과 ‘애굽의 모든 보화’ 라는 단어입니다. ‘아! 내가 왕의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아! 내가 재벌의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아! 내게 차고 넘치는 돈이 있다면….’
모세는 마음만 먹으면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권력 그리고 그 권력으로 말미암는 엄청난 부귀영화가 그 자신의 차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손에 쥘 수 있는 모든 권력, 육체로 즐길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포기했습니다. 아니 거절했습니다. 거절했다는 의미는 자신의 뜻을 적극적인 행동으로 옮겼다는 의미입니다. 왜 그랬을까? 모세는 갈등이 없었을까? 당시 세계최강의 나라 애굽의 공주의 아들로 계속 살게 되면 그 나라의 절반은 자신의 차지가 될 텐데……..모세는 부귀영화가 싫었을까? 그는 권력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몰랐을까? 살짝 눈만 감으면 일생을 호화롭게 살 텐데……..
5. 모세, 그는 권력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부귀영화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왕궁의 생활을 통해 그 누구보다 더 잘 알았을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얼마나 많이 보고 체험했겠습니까? 권력 앞에 쩔쩔매고 부귀영화 앞에 숨죽이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사는 것 대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길을 택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있는 죄악의 낙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보화를 차지함 대신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의의 고난을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주는 보화의 가치 보다 영원한 영광의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급의 가치는 세상전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돌과 황금이 비교될까? 순간의 것과 영원한 것이 비교될까?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과 전능자전부터 받는 것이 비교될까? 깨달을지어다!!!
6.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모세 앞에 놓였던 동일한 선택의 길이 놓여있습니다. 죄악의 낙을 위하여 살 것인가? 아니면 주님을 위한 고난 받는 삶을 살 것인가? 세상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을 바라보며 살 것인가? 우리를 향한 오늘의 이 말씀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우리 성도 역시도 모세가 살아냈던 그 믿음의 삶을 사며, 그가 걸어간 그 믿음의 길로 나아가라는 뜻이 아닙니까? 과연 오늘 우리는 모세가 가졌던 그 믿음, 바로의 공주의 아들 됨 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 하는 믿음!!! 애굽의 온갖 보화를 탐하기보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고난도 기쁨으로 맞이하겠다는 믿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있다면 세상은 여러분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믿음이라면 여러분은 세상 그 어떤 것과도 싸워 이길 것입니다.
만일 오늘날의 목회자들이 모세가 가졌던 믿음의 영성이 있다면 과연 교회세습을 감행할까요? 만일 오늘날의 성도들이 모세가 바랐던 이 땅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의 바라며 산다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 믿음으로 사는 삶의 길…
그곳에 하나님의 손은 놀랍게 역사합니다. 저는 여기에 모인 우리성도들부터 참 믿음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과 모세가 가졌던 하나님을 향한 그 놀라운 믿음이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되어 하나님의 손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매일 새롭게 체험하는 복을 누리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