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넣기:이토록 큰 돌덩어리들이 강물에 굴려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큰 돌덩어리들의 사명이 바다의 고운 모래가 되는 것이라면 그래서 바다를 바다가 되게 하는 것이라면 강물 깊은 곳에서 이리저리 부딪치고 깨지는 것은 복일까요 고난일까요? 바위가 고운 모래가 되고 내가 하나님의 사명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에는 어떤 과정이 필요하겠습니까?
본문11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연단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뀌었습니다.
1. 미디안 광야에서 이드로의 양떼를 돌보며 40년의 세월을 살아낸 모세가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부름을 받은 비결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또한 그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애굽왕 파라오와 맞서며 하늘 권능을 나타내며 이스라엘백성을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제사장이 된 영광을 입은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을 우리가 믿음이라고 한다면 믿음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여러 가지로 정의 할 수 있겠으나 단 한 가지만 정의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난주에 나눈 말씀 속에 있다 하겠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히11:27)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 코람데오의 삶! 이라 하겠습니다. 늘 하나님을 기뻐하며 나의 걸음걸음을 지키시고 시절을 따라 놀라운 은혜와 복을 주시며 일마다 때마다 도우시고 높이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는 삶!!!
2.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을 나의 목전에 두고 사는 삶의 성취는 어떻게 살아내는 것이겠습니까? 그에 대해 오늘 본문1-2절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열매 맺으려면
1)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 버리는 것
2)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들을 벗어 버리는 것
3) 인내로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는 것
4) 예수께 시선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앞선 수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나도 너도 그렇게 살아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우리가 인내로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힘차게 할 수 있는 것과 예수그리스도께 나의 시선을 집중할 수 있으려면 앞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가능할 수가 없습니다. 앞의 문제란 곧 모든 무거운 것을 의미하는 내가 신앙의 경주를 하고자 하는 일에 걸리적 거리는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방해하는 것인지, 도대체 무엇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길에 방해꾼 인지를 찾아내어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얽매이기 쉬운 것이라는 의미인 도대체 무엇이 예수그리스도께 시선을 집중하는 일에 나를 꼭 붙들고서 놔주지 않는지를 찾아내어 털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오늘본문의 “벗어버리고” 라는 말씀의 의미가 그렇습니다. 벗어버리고….던져버리다. 벗어 버리고….내동댕이치다. 벗어버리고….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4.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진실로 신앙의 경주를 하고 있습니까? 진실로 오늘 우리의 시선은 오직 예수그리스도께 집중되어 있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제거해야 할 일, 내동댕이쳐야 할 것, 끊어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끊을 것을 끊지 않고, 내동댕이쳐야 할 것을 내 동댕이치지 않고, 제거해야 할 것을 제거하지 않고 어찌 앞으로 나아가며 어찌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쏟아지는 코람데오의 삶을 누리겠습니까? (사랑의 교회가 오직 말씀의 법을 따라 교회를 건축했다면 어떠했을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교회건축 성전건축이었을까? 누구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결코 주님의 교회 하나님의 성도들이 모이는 성전이 될 수 없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저는 여러분과 저의 신앙의 경주가 가볍고 힘차고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예수님께 집중된 우리의 삶의 시선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의 일들로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5. 본문 5-7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모세에게서의 미디안광야 40년은 하나님의 택하신 민족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가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과 연단의 시간이었습니다. 만일 모세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미디안광야40년의 시간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어제가 있어야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어야 내일이 있듯이 모세에게는 애굽 왕궁에서의 40년뿐 아니라 미디안광야 40년의 시간도 절대적 필요였습니다.
그 시간의 훈련과 마음의 연단과 영성의 변화가 하나님의 그 영광의 사명을 감당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6.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의 시간의 훈련, 마음의 연단, 영성의 변화를 거치는 동안 그는 어쩌면 다음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도대체 하나님의 뜻하심은 무엇인가?..... 왜 나에게 이런 채찍질을 가하시나? 애굽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징계인가?…….이 징계의 시간은 언제쯤 끝나나? 이 고난이 언제쯤 기쁨으로 바뀔까?’ 그러나 그 미디안광야라는 장소와 시간 속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본문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기에….하나님의 손에 붙들고 쓰시려고…..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택하셨기에……그 시간, 그 장소, 그 훈련들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쓰시려고...... 오늘의 시간!!!
7. 순도 99.999%의 순금을 얻으려면 깊은 금광 속에서 금맥이 들어있는 돌을 캐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돌덩어리들을 아주 곱게 가루로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물에 담가 무게차이를 이용해서 금가루와 돌가루를 분리합니다. 금가루는 다시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 고온의 불에서 제련됩니다. 모든 불순물이 제거된 후 비로서 순금이 되는 것입니다.
약 1톤의 원석에서 겨우 몇 그램 혹은 몇 십 그램의 순금을 얻을 수 있다니 참으로 고된 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즈음 금 시세를 보니까 10g의 골드바가 약 675.000입니다. 10kg 이면 가격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순금처럼 제련되고 다듬어진 한 사람의 가치는 얼마나 하겠습니까? 겨우 순금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 세상에 대한 근심 걱정 염려를 하지 않는 사람. 세상을 이기고 다스리고 통치하는 사람.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고통 하는 자와 함께 고통하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의 가치는 얼마나 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의 가치는?
믿음의 조상. 노아의 가치는?
하나님과 동행하여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사람 모세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친구처럼 대면하여 말씀하시던 사람. 다윗의 가치는 하나님께 마음이 합한 사람. 다니엘의 가치는? 하나님께 크게 은총을 입은 사람…….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여러분의 가치가 정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되겠습니까? 연단은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8.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면 육체의 성질대로 살아도 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정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사람들이기에 하나님의 비전에 대한 기준,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기준, 하나님의 사명에 대한 기준에 합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채찍질 같은 연단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인내로 감당해야 할 연단입니다. 연단의 시간이 지나야만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정금 같은 가치가 열매 맺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복을 받기를 원하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훈련)
본문 5절 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 가운데 오늘 나는 왜 이 고난 속에, 왜 이 척박한 어려움 속에, 왜 이 고독한 눈물 속에 있는가 하고 고민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또한 내 삶에 언제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까? 언제나 하나님의 복이 결실할까?...... 기다리고 기다리는 분들이 있습니까? 말씀처럼 낙심하지 마십시오. 아니 오히려 지금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욥이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연단 받은 자의 영광은 정금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기업가운데 그대로 열매 맺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