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보시기에 좋았더라.

Tatabanya 집시마을 가까운 곳에 아주 넓고 높은 언덕이 있습니다. 매년 그곳엔 밀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십년 넘게 바라보며 집시마을 사역을 다녔습니다. ‘야! 참 멋있다. 저 언덕엔 언제 한번 올라가 보려나? 언제 저 언덕에 올라서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찬양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사역 길에 오르며 결심을 했습니다. ‘오늘은 사역 마치고 오면서 반드시 저 언덕에 오르리라.’ 사역을 마치고 드디어 그 언덕을 헤매고 또 헤매다가 오르게 되었습니다.
누렇게 익은 밀이 다 추수된 그 넓디넓은 언덕에 오르니 얼마나 아름답고 멋이 있는지요. ‘하늘과 맞닿은 언덕, 갖가지 모양의 구름, 온 언덕에 누렇게 흐트러져 있는 이삭과 볏짚 그리고 그 사이에서 피어오른 이름을 알 수없는 가냘프게 핀 보라색 꽃들, 또한 저 멀리 곱게 드러누운 산등성이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아직도 한창 피어나는 해바라기’ 그곳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영광이 펼쳐진 터전이었습니다. ‘이 아름다움과 멋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혹, 수천억 원의 돈을 주면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토록 눈부신 장관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평생 땀 흘려 일하면 이 멋들어진 장관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닙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에 무조건 순종하는 그곳만이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이 눈부시게 펼쳐진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거부되지 않는 그곳, 그곳만이 하나님의 소유물들인 은혜와 사랑, 자유와 평화, 소망과 기쁨, 형통함과 부요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는 빛나는 복을 받는 곳이 됩니다. 곱게 드러누운 산등성이가 ‘왜 날 여기에 두었어?’ 라고 불평하겠습니까? 구름이 ‘왜 날 이곳으로 보내는 거야!’ 하고 원망하겠습니까? 해바라기가 ‘나 지금 꽃 피우기 싫어. 나중에 필거야’ 라고 거역하겠습니까? 그런데 왜 사람은 그렇게도 원망하고 불평하고 거부하며 사는지 말입니다. 그러니 삶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그러니 인생에 하나님의 멋이 열매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 자연처럼 하나님의 이끄심과 말씀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면 어떨까요? 우리들의 삶에서 주의 영광이 펼쳐져 저 자연보다 더욱 아름답고 보배로움으로 빛날 것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까요?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시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