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있고, 쓰임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래서 루소는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존재하기 위해 태어나고, 또 한 번은 일하기 위해 태어난다. 때문에 사람은 자기 사명을 발견하기까지는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릇이라고 다 같은 그릇인가요? 부엌에도 쓰임받는 그릇과 쓰임받지 못하는 그릇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실 조석으로 사용되는 그릇은 국과 밥, 반찬을 담는 작은 그릇이지 절대 큰 그릇이
아닙니다. 그릇의 가치는 그릇을 만든 재료의 좋고 나쁨보다는 주인의 사용 여하에 있습니다. 즉 ‘값지고 귀한 그릇’ 보다는 ‘자주 귀하게 쓰이는 그릇’ 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큰 그릇, 큰 교회가 축복의 산물인양 외치고 그러한 방향으로만 가고자 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 자주 귀하게 쓰임받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성경에 그 답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3:20-23절은 사울과 다윗을 예로 들면서 과연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들어 쓰시는지 말씀합니다.
다윗이 선택받은 이유가 사무엘상 16장 7절에 나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다윗의 중심이 어쨌다는 것입니까? 골리앗 앞에서 모두 도망갈 궁리만 할 때, 소년 다윗은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는데,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재 내시지 않겠습니까?”(삼상17:37)라며,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거라고 했습니다. 그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다윗은 철저한 하나님 중심주의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만을 믿었기에 블레셋의 거인이나 적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왕의 권력이나 형들의 전술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의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러한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중심을 보셨습니다. 역대하 16장 9절은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라고 말씀했고, 사무엘상 15장 23절에서 사울은 하나님 말씀을 버렸기에 버림받았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쓰임받은 비결,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 올인하는 거였습니다. 하나님께만 집중함으로써 자주 귀하게 쓰이는 주님의 그릇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양식 중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