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들의 약속은 언제든 변개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약속은 절대성취를 위한 약속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재림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불성실이요 하나님의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삼라만상 온 우주와 자연 속에서도 그리고 오늘까지의 인류역사 속에서도 그리고 저와 여러분삶속에서도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불성실함을 하나님의 거짓말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성실하심 그리고 진실하심과 진리만을 발견하여 감탄과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게 됩니다. 매일 새롭게 성실과 진리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며 찬양이 마르지 않는 삶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의 본문 31절의 말씀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반드시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재림.......그날은 초림의 때와 같지 않습니다. 충만한 영광으로 오신다. 홀로 오시지 않습니다. 모든 천사들과 함께 오신다. 과연 그날은 언제일까? 만일 우리의 눈으로 주님의 재림을 목도하게 된다면 그 영광을 무엇으로 설명하며 그 영광에 우리들의 심장은 얼마나 떨리겠습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날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을 살다가 그 영광에 참예하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2. 마태복음의 본문 32-33절의 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은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양 곧 하나님의 참 자녀는 하늘잔치에 들어감을 입는 오른쪽에 구분하시고 염소 곧 사단의 자녀는 지옥 불에 던짐을 당하는 왼쪽에 구분하시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에는 착오가 있을 수 없습니다. 정확무오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에는 뇌물이 통하지 않습니다. 아부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은 진리의 말씀에 따른 공의의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하나님의 참 자녀이며 누가 영원한 하늘잔치에 들어감을 입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35-36절)
복음을 위해 힘쓰고 애쓰며 수고하고 땀 흘리는 복음전도자들 그리고 교회안의 소외된 성도들 더 나아가 고난 받는 이웃의 필요와 요구를 주님의 마음으로 돌보고 섬기며 베풀고 나눈 성도들 그들이 바로 참 성도요 그들이 바로 하늘나라에 들어감을 입겠다 하십니다.
3. 그러자 오늘 편에 구분함을 입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성도들이 묻습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37절)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성도들의 다름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무엇인가 했다고 하는 선행을 전혀 기억조차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나는 여기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신앙이 주님께서 인정하실 의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의인의 신앙!!! 많은 것을 행했을지라도 적었다 여기고, 넘치게 했을지라도 모자랐다 여기며, 주님의 일에 죽도록 헌신충성하고, 때론 버거울 정도로 나누고 베풀었을지라도 은혜 베푼 것은 조금도 돌아보지 않되 은혜 받은 것은 늘 기억하며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하나님 앞에 행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주님의 일에 그저 무익했던 종입니다.’.........“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34절) 아담이 범죄 할 때로부터 예비 된 나라 하나님의 나라, 아담으로 인하여 상실된 낙원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회복된 낙원 그리스도의 나라.........그리스도의 의인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하는 여러분의 소유, 여러분의 유산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이제 사도요한은 여섯째 인이 하나님의 어린양의 손에 의해서 열려질 때의 광경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광경은 참으로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떨리던지 온 몸이 얼어붙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이곳저곳에서 지축이 흔들리는 지진이 일어나니까요 눈부신 광명의 해가 검은 상복처럼 검어지니까요. 밝고 아름다운 달이 핏빛으로 가득히 물 들으니까요. 하늘에 총총히 떠서 눈부시게 빛나야 할 별이 그냥 땅으로 곤두박질치니까요. 게다가 하늘이 종이처럼 둘둘 말려서 사라지고 온 산과 섬들이 정신없이 비틀거리니까요........
만일 우리가 이러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기절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혼돈이 그 어디에 있겠습니까? 심장 약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 쓰러져서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체가 다 흔들려버리고 뒤틀리고 무너져 내리는 이 말씀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 답이 본문 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5.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그마 만큼 크고 그마 만큼 무섭고 그마 만큼 두렵겠다하는 것입니다. 그 진노를 피할 존재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누가 하나님의 진노의 칼을 피하여 그분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who is able to stand? 돈으로 피할 수 있을까요? 세상권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지식으로 모면할 수 있을까요?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15-16절)
그날엔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소용이 없습니다. 가난하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부자라고 지옥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비록 대통령이 되었을지라도, 비록 무능력한 자일지라도, 비록 세계를 호령하는 사업가 일지라도, 비록 방한 칸 없는 자일지라도, 비록 파리 한복판에 가장 크고 럭셔리한 집에 살지라도.........육체에 매여 육체의 영광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은 그 진노의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된다는 메시지입니다.
6. 그러나 오늘 본문의 진짜 주제는 심판이 아닙니다. 저주와 진노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의 주님의 마음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본다고 하나 소경된 이 세상의 사람들을 향해서 회개할 기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기회를 허락해 주시는 초청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에 심판을 끝내실 수 있습니다. 죄악으로 오염된 모든 것을 한순간에 멸망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바로와 애굽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키신 것처럼, 금송아지 앞에서 망령되이 행하였던 사람들을 심판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한 번에 진멸시키지 않으시고 심판의 시간을 유예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쉽게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극한 자비와 긍휼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7. 진노의 심판이 유예되는 두 번째 이유 그것은 믿음의 성도를 향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어떤 어려움과 고난 앞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라! 마지막까지 선한싸움을 싸우라! 마치 순교하는 것 같은 믿음으로 복음이 되어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라 하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영광보다 높은 것은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영광은 이 땅에 살면서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핍박과 눈물을 수천 만 번을 덮고도 남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절)
결코 놓쳐서도 안 되고 놓칠 수도 없습니다. 그날에 주님 앞에 능히 설 수 있는 의인의 신앙으로 그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