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죽은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한 예를 들어 책망하십니다. 한 포도원 주인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먼저 큰 아들에게 가서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합니다. 아들아! 오늘 포도원에 유난히 일이 많구나. 우리 아들이 오늘 포도원의 농부들과 함께 일 좀 해야겠구나. 게다가 오늘은 가장 힘 잘 쓰는 사람이 못 나온다 하네. 아버지가 돌아올 동안 우리 큰 아들이 열심히 일하며 일꾼들도 살피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잘 마무리해 주렴” 그러자 큰 아들은 “아버지 가겠나이다.” 합니다. -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누구입니까? 이 집안에 맏아들 아닙니까? 제가 맡아서 해야죠. 아버지의 일인데요“- 그러나 큰 아들은 포도원에 가질 않고 딴 길로 갔습니다. ‘아휴! 날도 더운데 무슨 일을 시키실까? 내가 이 집안에 큰 아들인데 험한 일을 할 수가 없잖은가?’ 큰아들은 근사하게 차려 입고 딴 길로 갔습니다. - 말씀을 들을 때는 아멘 아멘 하는데 딴 길로 가는 사람들 천지입니다.
❉ 아버지가 이번에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싫소이다.’ 라고 합니다. - 아버지! 이 더운 날에 무슨 일을 시키십니까? 형 있잖아요. 나는 힘도 없고 일도 잘 못하잖아요. 그리고 오늘은 친구들과 선약이 있단 말이예요.- 아버지는 몇 번 달래보았지만 둘째 아들은 싫다고만 합니다. 아버지는 약속에 늦겠다며 급히 집을 나섰습니다. 놀러 가려던 작은 아들은 자신에게 간곡히 포도원 일을 부탁하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그 후에 뉘우치고) 포도원으로 가서 농부들과 함께 열심히 일했습니다. 작은아들은 고된 일을 하며 생각했습니다. ‘아! 우리 아버지가 나 때문에 이렇게 힘든 일들을 해오셨구나 마치 품꾼 처럼!’ - ‘하나님 믿으면 뭐가 달라지나?’ 하던 사람들이 나중에 깨닫고 예수 믿어 먼저 믿은 사람들 추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행 할 때 참 아들이 됩니다. 아버지가 좁은 길로 가라하셨다면 분명 그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 이웃을 위해 애통하는 삶이어야 한다.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한다 하셨다면 아들은 그 뜻에 기꺼이 순종해야 합니다. ‘아버지! 왜 넓은 길 놔두고 좁은 길입니까? 왜 심령이 가난해야 하며 애통하는 마음이어야 하며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하며 왜 의에 주리고 목마른 힘든 삶을 살아야 합니까?’ - 하고 아버지의 뜻을 버리고 자기 뜻대로 살면 아버지께서 예비해 놓으신 복을 거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땅을 차지하고......)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아버지의 참 자녀로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큰 아들과 작은 아들 중 누가 참 아들이라고 생각합니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서기관, 장로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그들을 향한 질타였습니다. 오늘 하늘 아버지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이미 포도원의 일- 주님의 일을 맡겨주셨는데 오늘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 본문 31-32절: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누가 참 아들이냐?’ 하신 주님의 질문에 그 죽은 자들이 대답합니다. “둘째 아들이니이다.” 그들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세상에 이런 충격적인 질타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산헤드린공회원들에게 아주 참혹한 모독이요 저주로 들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하나님께 특별하게 선택 받은 사람들이요, 성전을 중심으로 일했던 사람들이요, 성경을 늘 연구하고 필사하던 사람들이요, 종교적 의무에 충실하던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것이다 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세리들과 창녀들이 자신들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먼저 들어간다니요? 세리가 누구입니까? 유대백성의 피를 빨아 자신의 배를 채우는 매국노요 더러운 도둑이라 불리던 사람들입니다.(텔로네스), 창녀가 누구입니까? 더러운 쓰레기 같은 사람들로 여기며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는 사람들로 손가락질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들 보다 하나님 나라에 앞서 간다했으니.....(창녀가 건네주는 콜라!) 그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를 차지한다하니? - 자신들에게 모독과 저주를 퍼붓는 주님께 화가 끝까지 나서 머리 뚜껑이 오르락내리락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머리 뚜껑이 오르락내리락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의 판단은 분명하고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판결 법원에서 주님께서 심판하셨는데 그것을 누가 뒤집을 것입니까? 세상 법정은 엉만진창 그러나 하나님의 법정은 정확무오!
❋ 성도여러분!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의 생명책에 우리 스스로 적어 넣을 수 있을까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참인지 거짓인지? 하나님의 자녀에 합당한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 결정하는 것이 아닌 우리 주님께서 친히 하십니다. 그러하기에 내 기준, 내 생각, 내 판단, 내 경험대로 살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 [요]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5: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예수님께서는 왜 세리들과 창녀들이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말씀 하셨는가? 입니다. 그 답이 본문 3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렇습니다. 의의도 곧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다움의 삶,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열매를 맺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곧 새사람!!! 세리와 창녀들은 세례요한의 가르침을 듣고 회개하며 세례를 받고 의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삭개오가 그 예입니다.) 그러나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말했지만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뜻과 멀었습니다. 진리와 생명의 힘은 언어에 있지 않고 행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죽은 믿음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 세례요한은 단순히 ‘의의 도’를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의라고 하는 원어 '디카이오쉬네' 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상석에 앉기를 좋아했을까요? 멋진 옷을 입고 근사한 음식을 먹기를 즐겨했을까요? - 여러분의 생각에는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입니까? 근사한 옷 입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즐겨하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서기관입니까? 아니면 약대 털옷을 입고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의의 삶을 보여준 세례요한입니까? - 여러분 생각에는 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참 아들입니까? 몇 십 년 예수 믿는다, 교회 다닌다 했으나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시기 질투가 하늘을 찌르고 세상과 차이 없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하려 애쓰는 색깔 있는 사람입니까? - 여러분의 생각에는 누가 하나님의 참 자녀입니까? 앞에서는 주님의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뒤에 가서는 다른 성도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묵묵히 기도하며 격려하며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려는 사람입니까? 또한 여러분의 생각에 오늘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큰 아들입니까? 작은 아들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