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기( 독일할아버지와 짐)
독일에서 차에 짐을 가득 싣고 헝가리까지 그리고 다시 슬로베니아까지 나아가는 한 나이든 성도: 여러분과 그를 교차해서 비교해본다면? 오늘 나는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있나? 나의 신앙은 너무 럭셔리 한 것 아닐까? 생각 들지 않습니까? (손과 발이 주님의 손과 발이 되지 못한다면 심장이 주님의 심장이 되지 못한다면 하늘나라가 가능할까? 구원이 그렇게 쉽다면 신앙의 길을 어찌 십자가의 길이라 하며 좁은 길이라 하겠는가? 인생성공은 육체에서 결실되지 않고 영혼에서 열매 맺습니다.)
1.11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
당시 유대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 하늘왕권을 가지신 메시아께서 다스리실 나라가 곧 시작될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음에 비유의 말씀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가? 주님의 날을 기다린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기다리는가? 과연 그 날에 기뻐하며 춤출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겠습니까?)
2.12-13절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
본문 설명과 한 므나라는 삶을 받은 우리자신: 주님의 재림의 날까지 시간과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이 시간과 기회인 삶을 장사하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오늘 여러분의 삶은 이익을 남기는 장사입니까? 아니면 손해를 보는 장사입니까? 삶은 행위이니까 주님께 칭찬받을 삶입니까? 아니면 주님께 책망 받을 삶입니까? 삶의 시간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마감해야 할 시간이 있고 마감 뒤에는 그 삶에 대한 셈을 할 시간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주님께서는 엄중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15절: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주님께서 셈하자고 나를 부르실 때 나는 무엇을 들고 그분께 나아갈 수 있을까? 그 두렵고 떨리는 시간은 하루하루 가까워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세상의 타락의 정도)
3.16-19절: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한 므나로 열 무나를 남기고,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겼다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놀라운 복의 신비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므나로 열므나를 남기고 한 므나로 다섯므나를 남긴 종들은 과연 무슨 방법으로 장사하였기에 열 배 다섯 배의 이윤을 남기게 되었을까요? (열 배 다섯 배가 적은 것인가? 열 배면 천만원 투자했는데 일억을 거두는 것이요 다섯 배면 오천 만원을 거두는 것이다.) 세상방식으로 거짓 사기 아부 부풀리기 허풍 공갈 협박해서 남겼을까요?
아니면 왕위를 받으러 간 주인의 가르침대로 하였을까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세상의 방식으로 살지 않고 복음의 방식으로 살면 손해보고 실패한다고 여기지만 결코 그렇지않다 라는 것이 본문 속에 담겨있는 진리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방식으로 승부하는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베푸십니다. 하늘을 열어 세상의 방식으로 거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탐스러운 결실을 얻게 여 주십니다. 여러분의 삶의 장사 여러분의 삶의 기업이 열 배 삼십 배 백배의 결실을 거두는 은혜와 복과 영광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4.“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그렇습니다.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라는 칭찬의 의미는 주인의 뜻대로 행하였음을 의미한다. 왜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왜 고난이 없었겠으며 왜 유혹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오직 주인의 가르침과 뜻대로 행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의 날이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가장 영광된 희망의 날은 주님 오시는 그날입니다. 그날엔 모든 것이 회복되고 역전되며 그날엔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되지 않은 영광을 입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으로 맞서라. 세상방식으로 사는 것을 거부하라: 이범섭집사의 삶의 방식)
5.수고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보상을 받는 신실한 종들 :
17절: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9절: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
천사들의 손에 들려 천국문안으로 들어갈 때 그 순간 과연 어떨까? 열 두 진주문을 지나 황금길을 걸으며 유리바다를 건너 무지개가 병풍처럼 둘러 있는 하나님의 보좌 뒤편을 바라볼 때 그 감동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그리고 열 두 제자와 사도 바울 그리고 수많은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을 만날 때 우리의 심장은 어떤 박동을 하게 될까?
그리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때 과연 우리는 그 영광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햇빛조차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하늘아버지의 그 빛난 얼굴을 뵐 때 과연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 비교할 수 있으며 과연 세상의 그 무엇과 그 영광을 바꿀 수 있을까? (그래서 주님을 위한 고난 주님의 교회를 위한 헌신 주님의 복음을 위한 충성은 기꺼이 아멘아멘 하며 기쁨과 감사로 감당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손에 아직 한 므나가 들려있습니까? 더욱 힘써 장사하시기 바랍니다. 영광으로 보상하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6.이를 갈며 애통해할 한 사람:
20절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
전혀 주인의 가르침과 뜻에 순종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나이다.”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얼마나 자기주장과 자기 고집이 강한가? 도대체 이 종은 주인이 다시 돌아올 동안 무엇을 한 것인가? 아무런 수고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자기 고집과 자기가 쳐 놓은 기준 안에 스스로 갇혀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이 한 사람을 오늘날의 신앙으로 비유한 다면 어떻겠습니까?
몸은 주님과 있다 하는데 삶은 내 기준 내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말로는 주여주여 하는데 삶에서는 예수복음이 없는 사람들. 성경에 대한 지식은 있는 듯한데 세상사람들과 차이 없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헌신하고 충성한다 하는데 말씀이 기준이 아니라 자기기준과 자기 방식대로라는 수건에 삶을 묶어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한다면 지나친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주님은 말씀을 그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는 삶에 대하여 말입니다. ❊사진보기( 이명박전대통령)
7.그들에게 임할 심판:
24절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그렇습니다. 주어졌던 한 므나를 빼앗기는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즉 그 자신의 영혼이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몸은 비록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나 그의 삶이 주님께 합당하지 않은 악한 종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세상사람들보다 더욱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표를 얻는 특권을 가졌음에도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손에 천국 행 표를 얻고서도 천국에 들임 받지 못할 때 그 극한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들이 가야 할 곳은 하나님의 나라아가 아니기에 그 비통함은 더할 것입니다.
27절입니다.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세상 사람들과 열매 맺지 못한 무늬만 성도인 사람들)
8.한 므나로 비유되는 삶은 기회인 동시에 책임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선물인 동시에 심판입니다. 과연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어디로 가기 위한 삶입니까? 세상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인간의 눈으로 보면 잘 되어 보이고 화려해 보이고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으나 그것 또한 다 지나가 버리고 그 대가는 영원히 치루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곧 오십니다. 재림의 왕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의 삶을 셈하십니다. 그 계산의 날에 우리가 내어 놓을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다시 깨달아지는 주님의 심판은 너무도 엄정하고 분명합니다. 그 심판의 시간엔 뇌물도 아부도 자기변명도 자기공로도 통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