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성도에게 문제는 고난도, 어려움도, 실패도, 가난도, 억울한 일을 당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기도하면 문제는 작아지고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무릎기도를 하지 않으니까 작은 문제도 점점 커 보이고 하나님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하심으로 다가가십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엎드렸는데 한참 기도하다보면 문제에 대한 기도는 온데 간데 없고 확신가운데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아이가 없어서 고통 하던 한나가 울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던 이야기와 죽음고지를 받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히스기야가 절대 간절함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던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응답!!!
사무엘뿐 아니라 세 아들과 두 딸! 일 년 이년이 아니라 무려 십오 년이 더해진 생명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소원이 그리고 해결 받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일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의 기도 어디까지 일까요? 주님의 재림시간까지 엎드리고야 말겠다는 믿음이라면 어떨까요?
2. 예수님께서 예화로 드신 오늘의 이야기는 엉뚱한 이야기를 꾸며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다른 예화들과 마찬가지로 고대 근동지방에서 흔히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과부의 삶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사회적으로 가장 극빈층으로 전락하기가 일수였고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라는 말씀처럼 힘 있는 자들에게 착취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가만히 놔두어도 삶이 어려운 한 과부의 마음을 고통하게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본문에는 어떤 일이 그녀의 마음에 원한을 맺히게 하였는지 기록 되어있지 않으나 3절의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라는 기록으로 보아 자신의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극한 어려움이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과연 누가 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여인의 원한을 풀어줄 유일의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얕보고 무시하는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인격! 그런 그에게 정의와 사랑, 타인의 눈물에 대한 배려와 공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3.본문 4절의 말씀입니다.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그렇습니다. 역시나 그 재판관은 정의나 진리, 공의와 긍휼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에게 한 과부의 억울함!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희망제로의 관계입니다. 혹시 이 과부가 재력 있고 사회적 영향력도 있는 사람이었다면 몰라도, 그랬더라면 불의한 재판장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든지 혹은 적잖은 사례를 받기 위해 뒷거래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가슴에 원한이 맺힌 사람은 다름 아닌 아무런 이용가치가 없다 여기던 과부였으니까 말입니다. 그 어떤 것도 기대를 할 수 없는 조건! 그러나 이 여인은 그 모든 조건을 넘어섭니다. 본문 5절입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4. 그렇습니다. 한 번 찾아가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해결이 안 되니 두 번 세 번을 찾아갑니다. 면박을 당했을 것입니다. 모욕을 당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쫓겨나기도 했을 것이고 다시 한 번 찾아오면 그땐 오히려 형벌을 내리겠다는 협박을 당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습니다. 열 번 스물 번 찾아가 가슴에 맺힌 억울함을 거듭 호소합니다. 가슴에 맺힌 억울함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삶의 문제가 그 불의한 재판장을 넘어설 만큼 컸던 것입니다. 그 끈질긴 호소 앞에 드디어 불의한 재판관은 마음을 돌이켜야 했습니다.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기 싫어서 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슴에는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이 과부처럼 여러분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잠 못 들게 하며, 무엇이 여러분을 한숨짓게 하며, 도대체 무엇이 여러분을 낙심하게 하며 근심걱정으로 두렵게 합니까? 그리고 무엇이 여러분의 가슴을 간절하게 합니까? 끈질긴 호소가 불의한 재판관을 돌이키게 하였다면 마지막 시간까지의 무릎기도는 어떨까요?
5. 본문 6-7절의 말씀보시겠습니다.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예수님께서 우리성도의 정체를 뭐라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택하신 자라 말씀하셨습니다. 택하신 자란 세상가운데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택하신 자란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택하신 자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실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구별된 사람입니다.
하물며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끈질긴 호소에 응답하는데, 하물며 너희를 택하신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거절하시겠는가? 하물며 하나님께서 내 삶을 향한 눈물의 간구를, 하물며 하나님께서 내 자녀들을 향한 깊은 소원을, 하물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기업을 향한 숨 막히는 호소를, 하물며 하나님께서 내 조국교회를 향한 가슴 찢는 간구를, 하물며 하나님께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아닙니까? 오늘 나는 누구입니까? 그 하나님 앞에 간절함으로 무릎 꿇는 자 아닙니까?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무릎으로 하나님을 찾고 내려주실 은혜를 믿음으로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6. 본문 8절의 말씀보시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것으로 택하신 사람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지만 결코 이 세상에 속할 수 없는 구별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잘 먹고 높아지는 세상적인 것이 목적일 수 없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최종의 목표와 목적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모든 것을 역전시키는 마지막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그 어떤 일을 이루고 그 어떤 것을 거머쥐고 그 어떤 영광을 누렸을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면 그는 가장 어리석은 실패자입니다. 자신의 영혼에 대한 구원을 받지 못했는데 더 이상 논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부자의 상에서 버려지는 것을 겨우 먹고 살던 거지 나사로처럼 세상에서 멸시 받고 고난당하며 눈물가운데 살았을지라도 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았다면 그는 가장 지혜로운 승리자입니다. 영혼구원! 영혼구원! 영혼구원! 죄 덩어리 우리 인간에게 그것을 넘어서는 그 어떤 복과 영광은 없기 때문입니다.
7. 우리 성도가 이악한 세상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억울한 일, 손해나는 일, 답답한 일, 눈물 나는 일 가운데 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삶을 결코 손해나도록, 성도의 가슴을 멍든 채로 그냥 놔두시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 예수님의 메시지입니다. 혹 그렇게 간구하고 눈물로 간구했음에도 해결 받지 못했을지라도 예수님의 재림의 날 그날엔 모든 응어리가 풀어지고야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우리 성도는 바로 이것에 대한 믿음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영광을 위한 믿음이 아니라 다가올 예수그리스도의 날에 대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또한 오늘과 내일과 여러 날 엎드리는 기도를 넘어서서 모든 것이 역전되는 예수님의 재림의 날까지 엎드릴 수 있는 끈질긴 기도여야 합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과연 누가 주님의 재림 날까지 기도하는 믿음가운데 있을까? 바로 너희가 그날까지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라 하심입니다.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엎드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그에게 하나님의 응답과 보상과 영광은 임하고야 말겠다는 것이 예수님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의 믿음은 어디까지 입니까? 여러 날 엎드리다가 포기할 믿음입니까? 아니면 주님의 날까지 엎드리는 믿음입니까? 마지막 날까지 엎드리는 믿음가운데 살아가는 자에게 주실 하나님의 약속은 이것입니다.
계시록 21장 3-4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