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앙의 삶은 신비입니다. 하나님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을 살리고자 애를 씁니다. 자신을 죽이고 살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은 자신도 살리지 못하고 영원한 죽음으로 나아갑니다. 육체의 마지막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육체 곧 자신을 죽이고자 합니다. 내가 죽어야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시면 내가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그래서 성도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이 땅의 것이 그리 흥미롭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좋아보이던 명품들도........하나라도 더 사들이려했던 보석도........ 더 이상 그 마음을 빼앗지 못합니다. 이미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없는 가장 보배로운 것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 예수그리스도로 주신 가장 보배로운 것! 그것은 죄 사함과 영생입니다. 죄 사함과 영생!!! 풀과 꽃처럼 잠시잠간 사는 흙덩어리 인생에게 이것을 능가할 보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늘을 발견한 예수의 사람에게서는 감사와 찬송이 마르지 않습니다. ♫날 구원 하신 감사 모든 것 주심감사♬ 여러분! 이 사실을 아십니까?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신앙인은 내적인 순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늘 그 자신의 육체를 죽이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죽지 않은 사람들이 그 입으로 토해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불평과 원망 아닙니까?
여러분! 혹 눈 여겨 보셨습니까? 자신의 육체가운데 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스미어 나오는 빛과 예수그리스도로 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이 얼마나 다른지 말입니다. 불평과 원망의 대명사는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 안에 내가 살아있습니까? 아니면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십니까? 이 신앙의 신비가운데 사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2. 신앙의 삶은 신비입니다. 자신을 신뢰하면 근심과 걱정이 넘쳐나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평안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근심과 걱정을 늘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가와도 걱정 해가 나도 걱정..........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여러분은 그들을 만나 보셨습니까?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들이 혹시 있었나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란 근심과 걱정덩어리인 인생을 하나님께 통째로 맡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하여 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혹, 걱정할 만한 일이 일어났을지라도 안절부절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대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걱정거리들의 실상은 다 해결될 일이며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하여 주실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시편 27편 3절에서 말씀합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전쟁이 일어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삶! 극한 환난 중에서도 평안가운데 거하는 심령! 이것은 오늘도 내일도 인생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사람들의 실제인 것입니다.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내가 나를 짊어지고 가는 인생입니까? 아니면 인생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긴 삶입니까? 나로 이 신앙의 신비한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3. 신앙의 삶은 신비입니다. 하나님 밖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손아귀에 끝없이 채우려고만 합니다. 욕심을 부리고 또 부려 채우고 또 채웁니다. 그러나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육체는 만족을 모르는 ‘탐욕의 바다’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사람은 하나라도 더 나누려고 합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갇힌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에서 기쁨을 얻습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자신의 손을 펴서 베풀고 또 베풀어 갑니다. 그 삶으로 그가 속한 가정에서, 사회에서, 공동체 안에서 천국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이 아깝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것을 나누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사람은 ‘소유와 나눔’ 의 그 엄청난 차이를 이미 발견했기에 베풀고 나누는 것입니다.
(* 몇 년 전 수원종로교회의 한 권사님이 저희 아이들 학비 하라 고 헌금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우유배달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 이후로도 제가 한국을 가면 맛있는 것 사드시라고 때론 10만원 2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주십니다. 이번 봄에도......)
* 하나님 밖과 하나님 안의 차이는 ‘움켜쥐지만 만족함이 없다.’ 는 것과 ‘쪼개고 나누어 주지만 더욱 큰 부요함이 밀려든다.’ 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모으려하고 쌓으려하고 거두어드리려고만 하는 하나님밖에 있는 삶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나를 향하여 완전하게 내어 주신 것처럼 나도 나누고 베풀려 하는 하나님 안에 있는 삶입니까? 형제자매여러분! 내 것을 나누면 그리스도를 얻습니다. 내 것을 베풀면 그 비워진 자리에 그리스도께서 존재하시며 그 분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 놀라운 신앙의 신비를 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무엇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4. 신앙의 삶은 신비입니다. 하나님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절망스러운 일들이 닥치면 그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자신을 비관하며 세상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절망 중에도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어 놓는 사람들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풍성한 결실을 이룰 때는 물론이지만 적은 소득, 모자라는 결실 중에서도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림으로 소득으로 인한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 “설교자의 왕자”라고 불리는 찰스 하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1834-1892)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하나님은 전등을 주시고, 전등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하나님은 밝은 천국을 주신다.” 여러분! 오늘 나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절망 중에서도 찬송함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역전되는 신앙의 신비 속에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과 차이 없는 있으나 마나한 신앙을 붙들고 있습니까?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어 놓는 능력! 실패를 승리로 바꾸어 놓는 힘!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는 권세! 이 신앙의 신비가운데 살게 하신 하나님께 우리가 드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5. 신앙의 삶은 신비입니다. 하나님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부르심과 의롭게 하심의 은혜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단거리 선수입니다. 근시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눈 뜬 장님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압니다. 손에 쥔 것이 희망인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쥐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오래지 않아 자신의 눈에서 사라지거나 타인의 손아귀에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희망 없는 세상에서 희망을 잡으려다가 결국은 절망을 열매 맺습니다. (* 유 병언 일가의 재산과 그들의 처지: 유병언의 실명으로 된 재산만 2400억 원이 넘는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압류 처리되었다. 그의 자녀들은 구속되거나 재판에 회부된다.)
* 그러나 이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 자신의 몸에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장거리 선수입니다. 아주 멀리 내다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곧 인생의 마지막 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하늘의 잔치가 열리는 날, 모든 천사가 부러워하는 삶, 영생의 삶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건축해 갑니다. 성도는 벽돌 한 장 두 장이 쌓여서 견고하고 아름다운 집이 세워지듯이 그 자신의 삶을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하루하루 세워갑니다.
시편 37편 18절에서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성도가 누리게 될 영광의 시간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은 결코 버려지지 않습니다. 영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기업이 됩니다. 형제자매여러분! 우리는 단거리선수입니까? 장거리선수입니까? 이 땅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시간을 바라며 사는 사람들입니까? 이 놀라운 신앙의 신비가운데 사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것은 무엇입니까?
6. 이제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며 곧 한해를 마감하게 됩니다. 2014년, 한해의 살아온 걸음걸음, 넘어온 굽이굽이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어떠셨습니까? 어떤 일이 여러분 자신 안에, 여러분의 가족 안에 그리고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있었습니까? 누가 어떻게 나로 견디며 지난 시간의 언덕을 넘어서게 하였습니까? 또한 누가 무엇이 2014년의 첫걸음부터 감사의 계절 이 시간까지 내 삶을, 우리의 가족을, 우리의 교회공동체를 세우며 온전케 하였습니까?
*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것을 놓고 서로 경쟁합니다.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하여..........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서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주님으로 경쟁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해야 더욱 주님처럼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욱 죽어지며 낮아질까? 어떻게 살아야 더욱 가난하게 살 수 있을까?........어떻게 해야 더욱 멀리보고 살 수 있을까? 신앙의 삶이 참으로 신비합니다. 세상을 거슬러 살게 하니까 말입니다. 이 신비한 신앙의 길을 걸으며 믿음의 삶을 살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우리가 드려야 할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 사도바울이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