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사와 대처승의 딸과의 만남! 어떨까요? 참으로 이색적인 만남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많은 의미가 담겨있지 않을까요? 제가 파리 드골 공항에서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이 특별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저는 보딩타임을 착각해서 비행기를 놓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26살의 대처승의 딸은 여러 명의 동료들과 함께 부다페스트로 출장을 오는 길이었는데 졸다가 비행기를 놓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사람인지라 착각해서라고 인정할 수 있겠지만 대처승의 딸은 다른 동료들도 있었는데......... 그래서 도무지 비행기를 놓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만남, 특별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대처승이 된 사연 그리고 대처승의 딸로 자라면서 겪어야했던 적지 않은 아픔의 일들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 저는 그 아가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의 아버지는 하필이면 승려가 되었을까? 그 당시 그의 아버지 주위에는 왜 예수 믿는 사람이 없었을까? 왜 그에게는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또한 이유도 원인도 모를 눈병이 났을 때 부처가 아닌 하나님을 찾았더라면......... 하나님에 대하여 듣고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헛된 수고와 땀을 흘리는 승려가 되지 아니하고 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또한 그랬더라면 그의 딸이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마음의 고민과 고통을 하며 살지는 않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부녀의 관계가 참으로 복된 관계가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그 젊은 청년과 이야기 하는 동안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로 자랐더라면........ 이 아이가 복음의 은혜를 누리면서 성장했더라면.........” 하는 깊은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다.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께 특별히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 특별하게 부름 받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인 것을 믿으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아직도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울타리 밖에 있는 세상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과연 어떻겠습니까? 또한 만일 여러분이 대처승의 자녀나 이단 불신자의 자녀로 태어나고 살아간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나 하나님께 선택을 받을 수도 없고 또한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세계 70억이 넘는 인구가운데........)
*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선택함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살아간다는 특권 앞에서.......... 또한 오늘의 삶의 수고와 헌신이 헛된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원한 나라에 이른다는 사실 앞에서 감사하고 감격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 택정함을 입은 특별한 인생! 복 받은 인생! 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다윗이 증언합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 하리이다. (시편65편 4절)
*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환상 중에 소아시아 일곱 교회로 보내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습니다. 제가 계시록의 말씀을 시작하면서 언급하였지만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단순히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부름 받은 성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의 역할을 해야 하는 우리자신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바로 우리 자신을 보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나는 어떤 교회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나는 어떤 교회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교회됨은 어떻습니까? 주님을 증언하는 교회! 죽음의 자리에 생명을 공급하는 교회로 우리 자신이 세워져 있습니까? 이 시간 여러분의 삶의 점검, 신앙의 점검을 그 결과를 밝혀보시기 바랍니다.
*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때 방문하여 세운 사도교회였습니다.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이 직접 세운, 정성을 많이 들인 교회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3차 선교 여행을 할 때 이곳의 두란노서원에서 복음을 증언하며 직접 2년 동안 목회를 하였습니다.(행19:9-10) 즉, 눈물로 세운 교회요 헌신적인 수고로써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깊은 은혜와 사랑이 가득한 교회였던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에베소 교회는 믿음과 행위가 일치하는 활동적인 교회였습니다. 소망의 인내를 이루는 교회였습니다. 또한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는 분별력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거짓사도들을 가려낼 줄 아는 진리의 교회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일에 참고 견디며 부지런했던 교회였습니다. 한 마디로 흠 잡을 곳 없는 완벽한 교회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과연 에베소 교회와 같은 교회가 있을까? 싶습니다. 과연 이러한 성도가 오늘 날 어디에 있을까? 싶습니다.
* 믿음과 행위가 일치하는 활동적인 교회! 소망의 인내를 이루는 교회! 악한 자들과 타협하지 않는 거룩한 교회! 영분별을 할 줄 아는 진리의 교회! 모든 일에 참고 견디며 부지런한 교회! 이러한 교회가 과연 어디에 있으며 과연 누가 그러한 신앙의 주인공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교회를 세워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수고하고 땀 흘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로 우리자신을 건축해 가야만 합니다. (하루아침에 좋은 교회 좋은 성도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서로도우며 세워가는 교회)
*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모양과 행위를 갖춘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책망하십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여러분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수많은 어려움과 극한 상황 속에서도 신실했던 교회요,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는 교회요, 완벽하다 싶을 교회였는데 책망이라니 말입니다.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책망을 듣게 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은 첫째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잃어 버렸다.(TEV역) 둘째는, 성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렸다.(제임스 모팻역) 셋째는, 잃어버린 자를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렸다(하쉘 홉스역)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러분 진실로 그렇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제인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잃어버린 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어느 샌가 놓치고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이 빠져버린 믿음 소망이 무슨 힘과 능력과 결실을 맺겠습니까? 처음 사랑을 잊어버린 신앙의 행위가 과연 어떤 능력이 되겠습니까?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절)
* 마지막까지 사랑위에 믿음과 행위를 세웠더라면!!! 사랑 안에 진리로 충만했더라면!!! 사랑으로 견디고 부지런하였더라면..........사랑으로 충성하고 헌신했더라면!!!! 사랑으로 나누고 섬겼더라면.......오직 사랑으로!!!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주를 믿는 믿음이 사랑위에, 사랑 안에, 주를 믿는 믿음이 사랑으로 세워져 있습니까?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성도간의 사랑으로.......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뭉쳐진 신앙인가? 하는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우리가 달려가다 보면 어느 샌가 놓치지 말아야할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붙들고 있어야할 것 대신에 엉뚱한 것을 붙들고 있기도 합니다. 마지막까지 진리를 붙들고 살아야 했는데 어느덧 그 진리의 자리에 자기 신념, 자기 확신, 자기 행위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세워져 있으셔야 할 자리에 어느새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혹 여러분은 주님의 진리가 세워져 있어야 할 자리에 에베소교회처럼 자신의 신념과 자기 확신과 자기 행위를 세워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꼭 붙들고 있어야 할 것을 놓쳐버린 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 제가 파리 공항에서 왜 비행기를 놓치게 되었을까요? 8시 20분이라는 숫자가 보딩타임이 아니라 출발시간이었다는 것을 왜 착각을 했을까요? 그렇습니다. 내가 나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한번 확인한 것은 틀림없어”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하니까 이제까지 늘 꼼꼼히 챙기고 여러 번 확인하던 과정을 다 제치고 무작정 8시 20분을 기다리다가 비행기를 놓치고 밤새 고생했던 것입니다. 틀림없이 공항에서 제 이름을 부르며 방송을 했을 텐데 자기 확신에 가려져 귀가 멀었기 때문에 그 방송조차도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 형제자매 여러분!
인생성공의 지도, 천국으로 나아가는 GPS는 우리 자신 안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리고 온종일 예수그리스도와 그 분의 말씀 앞에 자신의 삶을 펼쳐 놓고 점검하고 헤아려 보아야만 합니다. 무엇을 놓쳤는지? 어떤 것을 잃었는지? 어디에서 놓치고 잃었는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고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내가 가진 이 신앙은 틀림없어! 이렇게 신앙하면 되는 거야!! 이만 하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겠어?” 하는 자기 확신, 자기 신념, 자기 행위를 신뢰 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자신을 세워야만 합니다. 인간은 늘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점검하지 않으면 타락하기 때문입니다. 착각마라! 착각마라!! 내가 옳다고 착각마라. 내가 가는 길이 틀림없다고 착각마라!!!
*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처음 사랑, 성도 안에 주님으로 서로 사랑,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잃은 양 한 마리의 사랑을 놓쳐버린 에베소 교회에게 아니 에베소 교회처럼 되어버린 우리 성도들을 향하여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 사랑위에..........사랑 안에.......사랑으로.......그 어떤 일을 하던지 이것은 우리들이 마지막까지 놓치지 말아야할 신앙의 실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