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
* 우리는 지금 교회력으로 사순절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종려나무를 태운 재를 이마에 바르며 회개하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부터 부활절 전날까지 40일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 기간 중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참혹한 고난과 죽으심을 깊이 묵상하며 절제생활과 금식생활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됩니다. 사순절기간을 영어로는 Lent 라고 하는데 그 어원의 의미는 ‘만물의 소생’입니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서 온 인류에게 베풀어진 ‘영원한 생명’(요3:16)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고난을 자신의 삶에 채우면 능력을 얻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으로 자신의 죽음을 삼으면 새롭게 사는 은혜를 얻습니다.(갈2:20) 우리 모두 이 사순절의 기간 동안 그리스도로 더욱 삶을 새롭게 고침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개의 의미
* 오늘 본문12절에서 요엘 선지자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회개란(metanoia, repentance) “ -에서 떠나 -로 돌아간다.”는 의미로서 세상과 육체로부터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의미는 단순히 방향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계명을 삶속에서 열매 맺는 실제적인 변화여야 합니다. 매일매일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그곳에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 사랑과 복과 승리가 열매 맺는 생활의 변화로 인격의 변화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진정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아왔습니까?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에 있습니까? 진정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평화합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우리가 세상으로 나아가면 그곳은 참혹한 눈물과 탄식과 죽음이 됩니다. 사도바울이 증언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 하라”(고후5:20) 회개의 열매는 하나님과 화목입니다.
한 오페라가수의 죽음
* 두주 전 화요일,(2014년 2월 25일) 전도를 하는 중에 약 60세 후반의 아주머니에게 복음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단아한 차림에 꽤 수준 있게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늘 이곳을 지날 때마다 당신의 찬양 소리를 듣게 됩니다. 늘 마음에 감동이 밀려옵니다. 당신의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당신의 노랫소리를 들을 때마다 제 남편을 생각하게 됩니다.” 의아해서 제가 물었습니다. “남편이 생각나다니요?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아! 제 남편이 오페라 가수였습니다. 이곳 오페라 하우스에서 테너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52살에 죽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정말 안됐습니다. 52살이면 가장 황금기의 소리를 낼 수 있는 나이 인데요. 52살에............. 정말 안타까웠겠습니다.”
* 저는 그 아주머니와의 대화중에 참으로 금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오페라를 공부했기 때문에 드는 마음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탄식에 가까운 안타까움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52살이면 음악적인 감성도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목을 잘 관리했다면 소리의 색깔이나 질이 최고의 정점에 있을 때입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면에서도 가장 최상의 시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페라 가수로서의 가장 황금기인 시절에 심장마비로 인하여 삶의 이편에서 결코 돌아올 수없는 삶의 저편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과연 노크도 없이 다가온 죽음이 그 생명을 덮어서 어디로 데리고 간 것일까요? 52살의 오페라가수의 죽음!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그런데 저의 안타까운 마음은 여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생각이 곧장 밀치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관계성에 관한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만일 그 유명했던 오페라 가수가 자신의 가족과 친지와 동료들에게는 좋은 남편으로, 훌륭한 아버지로 그리고 더 없이 좋은 삼촌과 최고의 동료로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고 살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는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살았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그는 죽음이전에 하나님께로 돌아감!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를 맺고 있었을까요? 만일 그가 하나님과의 최고의 관계, 즉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으로 살지 못한 채 영혼의 거둠을 당했다면 그의 삶은 과연 승리를 거둔 삶일까요? 그리고 그의 영혼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누가복음15장 20절에서 말씀합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하나님께로 돌아감에 삶의 회복, 사랑의 회복, 아들 됨의 회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감
*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흙에서 와서 한줌의 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누구와의 관계일까요? 우리들에게는 가족과 직장, 친구와 사회 등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써 화목을 도모하며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나와 전능자와의 관계는 사람들과의 관계이상의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 땅의 삶과 죽음너머의 삶을 결정짓는 유일의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복의 시작과 마침이신 하나님과 불화하고서 어찌 이 땅에서 복된 삶을 살며 승리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또한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고서 어찌 영혼의 안식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는 길로 그 삶을 돌이켜야 합니다. 속히 하나님께로 돌아가 단절되었던 것을 하나 되게 하며, 막혔던 것을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이루는 길은 늘 회개하며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삶으로 맺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순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함 같은 마음을 품고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위해 힘써야 합니다. 오직 그 길만이 불화를 화목으로 바꾸며, 오직 그길 만이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 이제 오늘 본문 13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여러분! 하나님의 인애는 한이 없이 크고 넓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참혹한 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오래도록 참으시며 긍휼을 베푸시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돌아와! 돌아와! 집에 돌아오라 모든 것 풍성한 아버지 집으로 집을 나간 자여! 어서와 돌아오라! 어서와 돌아오라” 사랑으로 끊임없이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자비하심과 노하기를 더디 하심을 무엇으로 설명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우리는 무수한 죄악 중에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생명가운데 있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 아니겠습니까?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시86:3)
니느웨의 회개와 하나님의 긍휼
* 니느웨 백성들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요나서 1장 2절의 짧은 구절을 통하여 그들의 죄악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이 말씀의 뜻은 니느웨 사람들의 죄악이 더 이상 보아줄 수없는 절정에까지 달했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당장에 그들의 악독한 꽉찬 죄악에 대해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긍휼로 품으셨습니다. 이방인들이었지만 그들도 하나님의 피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아밋대의 아들 요나를 일으키시고 니느웨성으로 보내셔서 외치게 하셨습니다.
* “니느웨 사람들아! 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멸망한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심판하신다. 그러니 회개하고 돌아오라. 즉시 회개하고 돌아오라!” (욘3:4) 요나는 하루 종일 걸으면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심판을 외쳤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을 하십니까? 그 심판의 음성에 대해 이방 민족이었던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남녀노소가 금식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니느웨의 왕은 화려한 옷을 벗어 던져버리고 거친 베옷을 입고서 잿더미에 앉아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니느웨의 모든 생명들이 심판의 음성에 대하여 잠간도 지체치 않고 하나님께 납작 엎드린 것입니다.
* “멀쩡한 내 나라에 무슨 재앙이 일어난다고 난리야. 뭐라고? 40일 후에 우리들의 성이 재앙으로 무너진다고? 이렇게 견고하고 이토록 부강한 민족이 멸망한다고? 지구가 멸망 한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어리석음으로, 무지함으로 떠들지 않고 니느웨 왕은 하나님을 향한 즉각적이고도 분명한 회개를 행한 것입니다. 요나서 3장 7-8절에서 증언합니다.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무슨 의미입니까? 즉각적이고 분명한 회개의 시작이었습니다. 철저하고도 온전한 마음을 찢는 참회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를 보시고 뜻을 돌이키셔서 그들의 머리위에 이미 올려져있던 재앙의 불을 친히 거두신 것입니다. 요나서 3장 10절에서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마음을 찢음이란 회개의 말이 아니라 죄악의 길에서 떠나 삶을 고침입니다.
마음을 찢으면
* 사랑하는 여러분! 진실로 그렇습니다. 옷을 찢지 아니하고 마음을 찢으면 즉, 그 삶을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그 삶을 헤아려 주십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어. 힘들지. 네 약함을 내가 알아. 너의 맘을 나에게 내려놓아서 고맙다. 그래. 그래.” 또한 즉각적이고도 분명하며, 철저하고도 온전히 마음을 찢어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분은 이미 머리위에 올려져있던 재앙의 숯불마저도 다시 거두어들이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애는 크시기 때문입니다. 매일 매순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순간 마음을 찢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사순절의 40일 뿐만 아니라 우리일생 80년 동안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충만한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