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물입니까 도구입니까?
* 삶의 근거를 땅에 두고 사는 사람은 이 땅의 것들에 모든 마음을 쏟습니다. 그리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그것들을 얻고자 합니다. 그들의 노력이란 불의와 불법, 거짓과 속임, 심지어는 강도와 살인도 포함됩니다. 얻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지 그것을 얻는 방법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세상으로부터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끔찍한 뉴스의 실상이 무엇입니까? 소유에 목적을 두고 사는 사람들의 탐욕의 결과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삶의 근거와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손이 되고, 하나님의 발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이 되어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땀 흘려 모은 귀한 재물을 다 풀어 고난당하는 이웃을 사랑 하며 그 누구든지 품고 축복하는 일에 사용합니다.
“왜 그토록 땀 흘려 모은 재물을 저렇게 다 나누지? 돈이 남아 도나보네. 저렇게 베푼다고 누가 알아주나?” 죽음에 이르는 모든 죄로부터 구속함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에게서의 재물은 소유가 아닌 나의 나됨의 전부이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영광되게 기쁘시게 하는 도구와 수단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에게서의 재물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그토록 힘써 모으려합니까? 자신의 영광을 위하는 소유물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자하는 도구입니까?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재물을 소유물 삼으면 그 인생은 추해지며 재물을 도구 삼으면 그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 다음과 같은 글들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향해 그토록 억척같이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먼저 가서 미안하다. 다음 생애에도 부모와 자식으로 태어나 행복하게 살자!” “주인아저씨! 고마웠습니다.” 지금 읽어 드린 글은 최근 몇 주 동안 생활에 대한 고단함, 질병으로 인한 고통, 삶의 현실에 대한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죽음으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 작성한 유서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좀 여유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백만 원 수천만 원씩 유흥비로, 명품 구입비로 육체를 즐겁게 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동일한 사회의 한편에서는 단돈 몇 푼 때문에 극한 고통아래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정점에서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 우리들의 교회는 어떤 삶을 살아야겠습니까? 우리의 눈에 그리스도의 눈이 드리워진다면 어떻게 살게 될까요? 우리의 심장에 하나님의 마음이 새겨진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요? 요한일서 3장 17-18절에서 말씀합니다.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재물을 그리스도로 통치하라
* 하늘을 소유하게 될 성도의 물질생활은 자신의 육체를 자랑하는 일에 부요하게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에게는 가난하게 사용하고 고난당하는 이웃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넘치도록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물질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의 사랑하는 자녀인 성도들이 부지런하여 으뜸이 되며 머리가 되며 다스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신28:13)
그리고 때를 따라 풍성한 복, 감당할 수없는 복을 부어주십니다. 그리고 그 부요함을 누리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아무리 부요하게 될지라도 심령은 언제나 가난하게 함으로 그 물질이 그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일 물질이 사람을 다스리면 결국 그는 물질을 섬기는 자가 되어 하나님나라를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재물이 나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재물을 예수그리스도로 통치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의 나됨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에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란 재물을 소유물로 여기지 않고 재물을 하나님을 나타내는 도구삼아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입니까?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19절과 20절에 기록된 “너희를 위하여” 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우리 자신에게 주는 생각은 재물을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곧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재물은 모으면 모을수록 좋은 거야. 돈이 힘이잖아. 그래 ! 인생 한번이야. 그러니 너를 위해 마음껏 모으고 쓰는 거야.” 그러나 이와는 달리 우리 자신을 위하여 재물을 땅에 모으는 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 남의 것을 제 것으로 삼으려는 도적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죽하면 ‘먹 튀’ 라는 말이 생겨났겠습니까? 소액 먹 튀에서 거액 먹 튀까지, 국내 먹 튀에서 국제 먹 튀까지, 개인 먹 튀에서 기업 먹 튀를 지난 정부 먹 튀까지 참으로 다양한 먹 튀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 지난해 말에 개인 투자자들에게 사상최대의 피해를 몰고 왔던 동양증권 사태를 기억하십니까? 회사의 경영진은 자신들의 회사가 부도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사람들을 현혹하여 기업어음(Company Paper)을 발행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속임수도 모른 채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려 1조 3000억 원의 엄청난 재물을 투자했습니다. 그들은 투자를 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기대하지는 않았겠지만 투자한 금액에 합당한 이익을 당연히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인 자신들의 보물창고인 동양증권이 완전히 부도가 난 것입니다. 보물처럼 여겼던 어음이 하루아침에 빈 종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비상한 도둑, 비열한 도둑, 교묘한 도둑, 번개 같은 도둑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과연 이러한 도둑들로부터 자신의 재물을 보호할 비결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재물을 쌓지 말아야할 이유는 단지 무수한 도둑들이 우글거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생명이 이 땅에서 결코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고 하신 것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 이 땅의 것은 그 어느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나라로 가져갈 수 없습니다. 설령, 자신이 애써서 수고하여 모은 수백 억, 수천억 원의 돈뿐만 아니라 온갖 보석을 짊어지고 갈수 있다하여도 또한 온 몸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최고의 것으로 멋을 부려 하늘에 오르게 되었을지라도 그는 결코 하나님께 주목 받지 못합니다. 아니 오히려 극한 책망만 받게 됩니다. “넌, 왜 그리 인색하게 살았지? 넌, 왜 너만을 배불리며 살아왔니? 네 눈에는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 헐벗은 사람들이 안보였더냐? 네 눈이 어두웠구나. 그래서 네 삶이 어두움 이었구나. 이제 어두운데 처하여 슬피 울며 이를 갈아라.” /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23절)
그러나 빈털터리가 되어 하늘에 올랐으나 열심을 다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물질을 사용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주목받고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이르러서는 놀라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 써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물질이 그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 고스란히 쌓여 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재물을 비우라
* 물이 고이면 썩고 악취가 나듯이 돈이 흐르지 않고 쌓이기만 하면 그곳은 병든 곳, 썩는 곳, 죽은 곳이 됩니다. 돈이 돈 되는 이유는 흐름에 있습니다. 돈이라는 것은 생명도 아니고 인격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루는 사람에 따라서 생명으로 쓰이기도 하고 놀라운 인격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이 사용하는 물질에 대하여 무어라 말씀하실까요? 보물을 땅에 쌓는 소비라 하실까요? 아니면 보물을 하늘에 쌓는 저축이라 하실까요? 이 땅에 자신을 위하여 재산을 모으면 모으는 만큼 결국 자신에겐 돌아오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자신의 곡간을 비우고 나누는 만큼 또한 금고를 열어 비우는 만큼 그 자신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비우는 사람입니까? 쌓기만 하는 사람입니까?
압살롬의 도둑질
* 골리앗이라는 넘지 못할 성벽을 넘고 사울이 쏟아내는 핍박과 죽음의 환란을 넘어선 다윗이 드디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다윗이 얻은 것입니다. 다윗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안고 일어섬, 가고 멈춤의 모든 일들을 오직 하나님께 의뢰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또 다시 극한 환란이 찾아왔습니다. 그가 맞이하게 된 환란의 벽은 그의 아들인 압살롬의 반역이었습니다.
* 압살롬은 백성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듣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용모가 아주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를 향하여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다.”(삼하14:25)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군대를 모집했습니다. 그리고 거짓으로 백성들을 도우며 그들의 마음을 도적질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아버지의 자리를 찬탈하였습니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들이 어찌 아버지를 죽이려하고, 아들이 어찌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의 자리를 삼킬 수 있겠습니까? 육체가 이끄는 탐욕에 정복당하여 살면 거짓도 도적질도 살인도 서슴지 않게 되는 자리로 추락하는 우리인간의 모습을 압살롬이 여실히 보여준 것입니다.
* 살기가 등등한 압살롬에 의해 다윗은 황급히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황폐하기 그지없는 상태에 빠졌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들에게서 철저히 배신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도망 길에 감람산을 오르면서 머리를 풀고 맨발로 울면서 넘어갔습니다. (삼하15:30) 참담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제 세상은 다윗의 왕권을 찬탈한 압살롬과 그의 세력의 것이 되었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그들 앞에서 감히 머리를 들 수 없었습니다. 살아남는 방법은 압살롬의 편이 되든지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것뿐이었습니다. 여차하면 목숨이 달아나니까요. 과연 누가 이러한 현실 앞에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과연 누가 빈털터리가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된 다윗과 그의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내어 줄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 그런데 바로 이러한 때에 암몬 족속의 길르앗 사람이었던 바르실래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재물창고를 열어 내일을 기약할 수없는 도망자 신세가 된 다윗과 그의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침상을 내어주고 대야와 질그릇들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내어 그들을 섬겼습니다.(삼하17: 28-29) 남김없이 가난하고 곤고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창고를 열어 베풀어 준 것입니다. 그는 거부였지만 물질에 노예 되지 않으며 자신에게 도취되거나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아! 자신의 재물창고를 활짝 열어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는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 도망 길에 올라 목숨을 장담할 수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유물을 다 풀어 소망으로 채우는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 우리는 사무엘하 17장 29절에서 이렇게 행한 바르실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백성이 들에서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 바르실래는 환난과 곤고함에 빠진 사람들을 자신의 삶으로 위로해 주는 긍휼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 바르실래는 배고픈 사람들, 목마른 사람들을 자신의 재물로 섬기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누구이며 누구여야 합니까?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약 2:15-16)
이 사람이 받은 복
* 바르실래는 자신의 창고를 열어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소유물들을 다 비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하여 더 크게 쌓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삼하19:33)또한 그가 누린 축복은 바르실래 자신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의 자손들에게까지 다윗의 시대를 넘어 솔로몬의 시대에서도 그 보배로운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2장 7절에서 증언합니다.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한 때에 저희가 내게 나왔었느니라” 비웠더니, 베풀었더니 왕과 함께하는 삶, 왕의 축복을 함께 누리는 삶으로 복을 받은 것입니다.
땅의 것을 하늘로 나르는 비결
*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직 우리 자신을 위하여 이 땅의 것을 하늘로 나르는 비결이 있습니다. 이 땅의 것을 하늘에서 갑절로 차지하며 왕 중의 왕이신 주님의 복을 누릴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배고픈 사람들을 위하여, 헐벗은 사람들을 위하여, 환난당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이 피땀 흘려 모은 소중한 재물을 기쁨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늘로 들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쓰여 지는 재물은 비우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육체에 기쁨이 되는 것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는 한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계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