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우리들 눈은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로 통과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시대를 읽고 그 시대에서 해야 할 일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의 눈이 예수그리스도로 통과되지 못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세상과 동일하게 슬퍼할 일에 슬퍼하고, 안타까워할 일에 안타까워하며, 분노할 일에 분노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전진 할 수 없습니다. 슬퍼할 일을 넘어서서 기뻐할 일로 만들고, 안타까워할 일을 소망으로 변화시키며, 분노하는 것에서 멈추지 아니하고 개혁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눈이 그리스도로 통치를 당하여 밝아진 눈이 될 때에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볼 것을 제대로 보았다면 사명자가 됩니다. 밝아진 눈으로 사는 사명자는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그가 속한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도구가 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눈은 가려져있습니까? 아니면 밝아져 있습니까?
* 눈의 생명은 봄에 있습니다. 만일 눈이 보고서도 보지 못한다면 그 눈은 생명을 잃은 눈이 됩니다. 생명이 있는 눈이라면 꽃을 보면 꽃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어야합니다. 또한 하늘을 보았다면 하늘이 얼마나 높고 푸른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의 눈은 어떻습니까? 볼 것을 제대로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본 것에 대하여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생명이 있는 눈이란 단지 볼 것을 제대로 보며 본 것에 대하여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닙니다. 생명이 있는 눈, 살아 있는 눈이란? 본 것대로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면 아름다운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보배로운 것을 보았다면 보배로운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진리를 보았다면 진리로, 사랑을 보았다면 사랑으로, 생명을 보았다면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살아 있는 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보며 들으며 따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 우리들의 삶은 주님의 열매로 풍성합니까?
*두 제자는 분명 예수그리스도를 늘 보며 들으며 따르며 살았습니다. 그 영광의 생명이시오, 진리와 사랑의 실체이신 주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두 제자는 그 부활의 영광, 그 엄청난 생명이 용솟음치는 예루살렘을 뒤로 하고 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들은 어찌하여 자신들과 동행 하시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는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보지 못하였을까요? 본문 16절에서 말씀합니다. “저희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그렇습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 할지라도 여젼히 이성에 갇혀 있다면 주님을 보면서도 보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살아갈지라도 여전히 육체의 눈에 통치를 당한채로 살아간다면 그는 하나님의 실제를 경험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참 능력대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표면적인 이야기는 할 수 있어도 내면의 실제, 그 하늘의 능력을 자신의 삶에서 열매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려진 눈, 이성에 사로잡힌 채로 주님 안에 머무는 것......이것은 비극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알고 그 능력을 체험하려면 이성의 뚜껑을 던져버려야 합니다.
* 가려졌던 눈이 열려진 눈으로 뒤바뀐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익숙한 곳, 편안한 곳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아니 열린 눈이 그를 더 이상 옛 삶, 옛 자리로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옛 삶, 옛 자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난과 고통이 없는 곳이지만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죽음을 잉태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열린 눈은 우리의 삶을 예루살렘으로 끌고 올라갑니다. 예루살렘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곳입니다. 그 곳은 고난의 현장입니다. 그 길은 삶을 사명으로 살아야할 고단한 길입니다. 그럼에도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먹고서 눈이 열린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야 맙니다. 그곳은 부활의 소망으로 삶을 육체를 위한 것이 아닌 삶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려 드리는 사명자들이 살아가야할 땅이기 때문입니다. 시편122편 2절과 6절에서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오늘우리는 우리들의 삶의 자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지고 가는 예루살렘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고난 없는 영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면류관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가정을 예루살렘으로....직장을 예루살렘으로.......사업장을 예루살렘으로 세워야합니다.
* 오늘 우리의 눈은 여전히 가려져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그리스도를 참으로 먹고 마심으로 밝아진 눈이 되었습니까? 그리스도의 참 제자는 눈이 밝아진 사람입니다. 눈이 밝아진 사람은 그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삶을 헌신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