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가보주: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선물은 단순한 선물이 아닌 그 삶의 환경과 처지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엄청난 보석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석을 선물한 친구는 자신의 친구가 잠든 사이에 그의 옷 안쪽에 바느질을 해서 그 보석을 잘 감추어 놓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보석을 선물한 친구는 일찍 길을 떠나는 바람에 그의 친구에게 보석을 옷 안쪽에 바느질하여 넣어둔 사실을 알려주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보석을 받았던 친구는 매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가운데 살아야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자신의 옷 안쪽에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보석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전연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한참 세월이 흐르고 다시 보석을 주었던 친구를 만나고 나서야 자신이 항상 그 보석을 품에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만일 보석을 선물 받았던 친구가 자신의 품 안에 숨겨져 있던 보석을 발견 했다면 어땠을까요? 어려울 때, 가난으로 힘들었을 때, 그 보석이 힘과 능력이 되어 그 인생을 새롭게 하지 않았을까요? 전능자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성도들에게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보물, 보화인 그리스도를 각각의 영혼이라는 품에 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걸을 힘, 거친 삶의 자리에서 소망으로 나아가는 능력, 세상이라는 사명의 땅에서 승리하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비밀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진실로 발견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제대로 발견했다면 우리는 고백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은 나의 선한목자이십니다.”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내 삶의 인도자는 누구입니까? 오늘 내 인생의 목자는 누구입니까?
* 우리들의 삶이 날마다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받을 길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런 찬송이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 하시 도다.♬” 부르면 부를수록 좋고 들으면 들을수록 귀한 찬송입니다. 단순한 위로와 위안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씀 한마디 한 마디가 실제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참 목자, 선한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삶에 관계된 모든 것을 완전케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지난 주, 저는 사역을 다시 시작하면서 ‘내가 걷고 있는 사역의 현장은 여전히 사막이구나.’ 하는 것을 또 다시 깨달았습니다. 몇 년 전에도 어떤 녀석이 발전기에 설탕을 넣는 일이 있어 두고두고 겨우 고쳐 놨더니 지난주에 또 다시 발전기에 설탕을 집어넣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가끔 말썽을 부릴 테지만 고쳐서 쓸 것입니다. 또한 집시마을에서는 한 가정이 졸지에 집을 잃고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아이들은 고아원에 맡겨지고 부모는 겨우 새로운 거처를 마련한 곳에서 따로 지내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불안해하고 부모는 눈물 흘립니다. 또한 건장하던 사람이 졸지에 뇌졸중이 와서 몸의 한쪽을 전혀 쓰지 못하며 자신의 이름도 알파벳도 다 잊어버리는 고난에 처해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과연 나는 이러한 곳에서 어떻게 사역을 해야 할까? 기도로........... 기도로.......... 나의 목자이신 주님께로 나아가야겠다.’고 또 다시 생각했습니다. 사막에 대로가 놓일 때까지, 광야에 꽃이 필 때까지 말입니다.
* 지난 화요일 서부역사역에서 중년의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나눈 대화입니다. “우리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똑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행하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가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디에 삶의 승리가 있을지? 어디에 행복이 있는지? 또한 우리가 내일 일에 대하여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치 앞도 보지 못하고 걷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에겐 인도자가 절대 필요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당신의 마음에 영접하십시오. 그분이 당신의 걸음걸음을 인도하십니다.” 깊이 듣고 있던 그 중년의 신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삶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돈이 최고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에 목숨 걸고 살지 않습니까? 죽는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 것은 잘 아는데 왜 본질에 대해서는 모르는지 말입니다. 그런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당신의 삶에 하나님을 영접하십시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기 바랍니다. 왜 예수님이 구세주입니까? 우리 스스로를 전연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이 뭔가를 아는 것같이 하며 살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인생들의 실상 아니겠습니까?
*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을 어디에 그리고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혹 어떤 분은 ‘사람이 왜 어리석다 하는가?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과학과 기술의 경이적인 일들을 보라!’ 하며 반문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고 둔한 것이 실제입니다. 보는 것 같으나 보지를 못하지 않습니까. 무엇인가 행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망할 일을 위해서 행합니다. 깨닫는 것 같으나 전혀 엉뚱한 일들을 벌입니다. 걷는 것 같으나 향방 없이 걷고 있습니다. 대구 지하철 사건, 서해 훼리호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참으로 셀 수 없는 일들을 겪었는데도 우리는 또다시 참혹한 세월호 사건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상이 아닙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우리인간은 내일 일을 전혀 알 수 없는 막힌 존재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눈먼 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아! 누가 나를 이 어리석음에서.........누가 나를 이 어두움에서 건져낼까?”
*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어리석은 자에겐 지혜 자가 필요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에겐 신실한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흙덩어리인 우리 인간에겐 절대적으로 전능자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참 지혜자요, 신실한 목자이시며 우리 생명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만났습니까? 우리들에게 주어진 단 한번뿐인 이 소중하고 보배로운 삶이 날마다 그분으로 들어가고 매순간 그분을 통해 나오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들의 삶이 주님으로 들어가고 주님을 통하여 나오지 않는다면 과연 그 삶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명이 될까요? 복이 되겠습니까? 오늘과 내일과 미래가 보장되겠습니까?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양의 문이 되신 주님으로 통과되지 못하며 주님으로 일치되지 못한 자의 실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죽고멸망당하는 인생입니다.
* 고기를 낚는 어부였던 베드로가 예수그리스도와 연합되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삶이 뒤바뀌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자신의 삶에 치켜들고서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람들에게 주님을 증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에게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은혜가 임하였는지 말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를 염려하며 ‘오늘은 어떻게 해야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어디에 그물을 내려야 할까?’ 하며 땅의 삶을 위해 배를 몰던 사람이 주님을 위해서라면 감옥에 갇히는 것도 매를 맞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죽는 것도 겁내하지 않는 복음의 사도가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실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에 묻힐 일만 하던 육체가 참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그분으로 들어가고 나오더니 생명의 일을 성취하는 영광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고 주님과의 일치, 그것은 육체가 영체가 되는 것이며 땅이 하늘이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는 일입니다. 우리도 영체가 되기를.......하늘이 되기를.......생명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게다가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의 영광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한 번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과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행2:40) 하는 외침을 통하여 무려 삼 천 명의 사람들을 회심하게 하며 제자를 삼는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일생을 지나면서 단 한사람도 회심시키기 어려워 쩔쩔매는데 어찌 같은 밥을 먹고, 같은 물을 마시며, 같은 옷을 입고 사는 똑같은 사람이 땅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을 하늘을 바라보며 살도록 이끄는 능력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자신의 삶도 스스로 감당 못하던 사람이 어찌 진노아래 놓여 사는 사람들을 하늘의 은혜와 복을 누리게 하는 생명의 자리로 인도할 수 있었을까요? 그 측량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힘과 능력은 과연 어디로부터 주어진 것일까요?
*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의 말씀처럼 예수그리스도께로 연합되고 일치된 사람, 그 분으로 삶을 통과한 사람은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받은바 생명으로 또 다른 사람들을 생명으로 일으켜 세우는 능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샘물은 차면 넘쳐흐릅니다. 고여 있는 법이 없습니다.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이 내 안에 차오르면 세상을 향해 그 생명의 능력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과일 나무에 생명이 있을진댄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생명 있음의 증거인 잎사귀와 꽃을 마구 피우며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 우리는 생명과 능력 그 자체이신 주님으로 들어가며 주님으로 나오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생명의 삶을 지나 능력의 삶으로 풍성해질 것입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 절망을 붙들고 주님께로 들어가면 새로운 도전의 소망으로 변화됩니다. 무지함과 어리석음이 주님께로 들어가면 지혜와 명철로 새롭게 창조됩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들어가면 가난은 허물 수 없는 부요함으로, 실패는 영광의 승리를 위한 기초석으로, 죽음은 생명으로 부활되어 나옵니다. 그러기에 내 삶을 예수님으로....... 예수님으로 ........예수님으로...........!!! 이것이 삶의 정답입니다.
* 우리는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고 산을 넘으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에 직면하게 됩니 다. 가정문제로.......건강문제로........자녀문제로.........사업 때문에.......직장 때문에........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우리는 그럴 때마다 좌절하고 낙심하며 절망하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때마다 오늘의 말씀을 상기해야 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나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목자가 되셔서 어려움의 수렁과 고난의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시며 쉴만한 물가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셔서 나로 날마다 풍성케 하시는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 “선한 목자”라는 의미는 단순히 착한 마음을 지녔다거나, 도덕적으로 깨끗하다거나 하는 뜻이 아닙니다. “선한목자”라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성취하신 영광이 입혀진 호칭이기 때문입니다. 전능자께서 전능자이신 자신을 죽이심으로 세워놓으신 것이 선한목자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15절에서 이렇게 증명합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나를 사랑하심! 그것은 현란한 말이 아니라 죽음으로 보이신 실제인 것입니다.
* 오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습니까? 그분의 죽으심은 죽으나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닌 영원히 살리기 위한 죽음이셨습니다. 주님의 죽음은 억지에 의한 것이 아닌 스스로 입으신 권세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 일을 내게서 빼앗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요10:17-18)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로 생명이 되어서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시려고 스스로 죽음의 길에 오르신 그 영광의 사랑 안에 있기에 결코 낙심할 수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나를 인도해 가시는 선한목자의 영광이 내가 걸어가는 삶의 길목마다 놓여있기에 결코 좌절 할 수도 없고, 결코 절망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을 힘입고 위대하고 아름답고 놀라운 삶의 승리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은혜가 여러분과 저의 삶에서 온전히 성취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이 말씀은 오늘 우리를 향하여 주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