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기독교신문에 난 기사입니다. 한 여름의 더위를 나타내고 있는 서울 한 복판, 그것도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동상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는 여성이 있습니다. 올해 39세, 자녀들을 기르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지난 4월 28일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 4시간씩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자신이 정한 자리를 지키며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무슨 억울한 일이 있어서 이런 시위를 할까?’ 그녀가 들고 있는 팻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습니다. “내 가족 우리 아이. 은폐엄단! 진실규명! 세월호 다 밝히라! 아이들이 끝까지 애타게 불렀을 이름! 엄마!!! 이제 우리가 답할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그리고 그 푸른 아이들이 주검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당한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그 슬픔과 그 아픔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가는 성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실제를 행동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 가정주부가 얼마나 일이 많습니까? 그럼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 4시간씩 광화문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게다가 극우 단체들로부터 숱한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월호 희생자들이 다 구조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겠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제까지 단 한 번의 시위도 해 본적이 없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진정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충만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대로 반드시 살게 될 것입니다.
* 이사야서 60장 2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쉽게 깨달을 수 있듯이 이 말씀은 땅에 속한 사람의 삶과 하늘에 속한 사람의 삶, 그리고 육에 속한 사람에게 임하는 것과 영에 속한 사람에게 내려주시는 복이 얼마나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인생은 다 똑같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어찌 땅에 속한 사람의 삶과 하늘에 속하여 사는 사람의 삶이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땅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들의 삶은 어두움에 덮이는 삶입니다. 캄캄함이 임하는 인생입니다.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이 임하시고 그 분의 영광 속에서 사는 인생이 됩니다. 생명이 샘솟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같은 땅에서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여 결코 같은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하게 하루 세 번의 양식을 먹고, 비슷한 옷을 걸치고, 비슷한 잠자리에서 잔다고 하여 결코 동일한 인생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땅에 속하여 어두움과 캄캄함이 임하는 죽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속하여 그분의 영광가운데 거하는 생명의 사람입니까?
* 오늘 본문 1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도 위에서 생각해본 이사야의 말씀처럼 땅과 하늘이, 산과 바다가 선명히 구별되듯이 완전하게 구별되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영적인 일을 본다 할지라도 보지 못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속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나, 국가에서 그리고 인류가운데 일어난 어떤 사건이나 어떤 현상들을 보고서 “아!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거야! 야! 이것은 하나님의 작품이야!” 하며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신 것을 금방 분별하게 됩니다.
* 그것은 “파라클레토스”라 하는 보혜사, 즉 하나님의 성령이 성도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보혜사 성령이 성도 안에 임마누엘로 거하심으로 성도를 깨닫게 하시고 가르치시며 위로하시고 충고하시기 때문에 매순간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을 깨달아 감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20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그날에는! 그날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그날에는!!!내가 보리라! 내가 알리라! 내가 행동하리라!
*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은혜,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건강의 복일까요? 물질의 복일까요? 아니면 받은바 탁월한 지식과 재능일까요? 물론 그러한 것들도 복입니다. 건강도 소중합니다. 재물도 귀합니다. 또한 지식과 재능도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은혜, 가장 큰 축복은 다름 아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나로 오늘도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며, 영생으로 인도해 가시는 임마누엘 예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심 이것이 최고의 은혜요,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밝히 깨달아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혜사 성령, 임마누엘의 예수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살아계심의 그 가치, 그 능력을 삶의 자리에서 열매 맺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먹었으니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를 품었으니 진리를 펼쳐야 합니다. 사랑을 발견했으니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생명을 먹기만 하고, 진리를 품기만 하고, 사랑을 발견만해서야 되겠는가하는 것입니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광화문 사거리로 달려간 힘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을 연장시켜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로 20세의 나이에, 혹은 30세의 나이에 단명하지 않게 하시고 세상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역사의 무대 앞에 나를 여전히 세워두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지금보다 더 많이 모으라고 하심 때문일까요? 지식과 재능을 지금보다 더 많이 쌓고 개발하라고 하심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곳저곳 더 많은 곳을 다니면서 좋은 구경하라고 하심 때문일까요? 우리는 이미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는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생명주심의 참 가치인 하나님을 향한 영광의 삶을 더욱 살아가야만 합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에 조금도 충성하고, 남들이 사랑하기를 꺼려하는 일에 먼저 사랑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자발적으로 달려가며, 이웃을 더욱 품어야 합니다. 결코 어제처럼 살수는 없습니다. 더 이상 산자 인지 죽은 자인지 어정쩡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영광의 생명이신 최고의 복!!!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내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 제가 지난주일 저녁부터 왼쪽 발 종아리가 얼마나 아픈지 만질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곧 낫겠지!’ 하며 기다렸는데 낫지는 않고 오히려 몇 칠 절뚝거리며 다녀야만 했습니다. 사역을 하면서 또 관공서의 일을 보면서 절뚝거리며 걷는데 제 걸음이 얼마나 느린지 말입니다. 할아버지도 저를 앞질러 갑니다. 연약한 여성들도 저를 앞질러 갑니다. 또한 어린아이도 저를 앞질러 갑니다. 이일 앞에서 제가 무엇을 깨달았겠습니까? 건강한 다리가 있다는 것이, 두 발로 제대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말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갖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 다리가 건강해서 제대로 걷고 뛸 수 있을 때, 죽음이 다가 오기 전 기회가 있을 때,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열매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영광이 반드시 나타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기회 지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 오늘 본문 15절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If you love me, you will obey what I command.”이 말씀은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에서 반드시 실천하게 되어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연인들의 사랑이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놀랍고 대단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천리도 달려가고 강을 건너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내어 주지 않습니까? 사랑이 사람의 심장 속에서 역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연히 그 삶을 예수그리스도로 충만하게 채워갑니다. 그 인생을 예수그리스도로 빛나게 하고 향기 나게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그 심령 안에서 역동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그 자신을 넘도록 힘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 본문 15절의 말씀을 23절에서는 또다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삶에서 드러난 열매가 사랑의 존재 유무를 증명합니다. 삶이 그리스도로 채워져 가고, 그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열매가 보여 지고 있다면 그는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삶속에서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와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가 아무리 “나는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해!!! 내 삶에는 하나님 밖에 없어!!!” 라고 수천 번 웅변하듯 외칠지라도 그는 결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삶은 사랑의 존재 유무를 증명하고, 사랑은 삶의 방향을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그 삶은 당연히 주님의 방향으로,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비추는 빛과 향기는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삶의 자리에서 맺어가는 열매들은 어떤 것입니까?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리니”(24절)
* 잘 아는 목사님께서 우루과이의 어느 작은 성당 벽에 적혀있는 기도문이라며 보내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이라고 말하지 말라!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 “
우리”......... 라고 말하지 말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 라고 말하지 말라! 아들딸로 살지도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라고 하지 말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라고 하지 말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라고 하지 말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라 하지 말라! 죽을 때 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두려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라 하지 말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라 하지 말라! 죄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라 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이라고 하지 말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 오늘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2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