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일(2014년 5월 19일)미국 켄터키 대학의 지리학교수 겸 과학자인 John All 씨가 히말라야에서 지질을 탐사하던 중에 빙하가 만들 낸 계곡인 크레바스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크레바스로 깊이깊이 추락하던 그는 다행히 추락 후 22m 지점에서 얼음 턱에 걸려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크레바스로 추락하면서 어깨가 탈골되고 얼굴과 무릎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섯 개의 갈비뼈가 부러지고 오른쪽 팔이 부러지는 중상까지 입었습니다. 그래서 22m 아래의 크레바스 계곡에 빠진 그가 다시 살아나올 가능성은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 자신의 생명을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얼음도끼 하나를 이용해서 무려 여섯 시간을 오르고 또 올라 그 죽음의 크레바스 계곡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 거의 온 몸에 중상을 입었기에 손 하나 움직일 때 마다, 발 한걸음 뗄 때 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살기 위해서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또한 크레바스에서 겨우 빠져나왔다고 모든 것이 잘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베이스 텐트까지 또 다시 세 시간을 걸어야했기 때문입니다. 그 역시도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게다가 위성 전화기로 구조 요청을 했지만 악천후 때문에 또다시 고통스러운 하룻밤을 지내고 나서야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으로 위대한 인간 승리 아니겠습니까? 절대 절망의 환경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한 투쟁이 고귀함을 넘어 거룩하기까지 합니다. 참으로 힘써 박수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밝히 깨달아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절대절망의 역경 속에서도 온갖 노력을 하여 고난을 이겨내며 생명을 스스로 구해낼 수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 할 수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힘과 노력으로도 스스로 자신의 영혼은 구원해 낼 수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옛사람은 새사람으로의 인침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지 않고서는 결코 생명이 생명이 되지 않습니다. 새사람 즉 마음의 할례를 입은 생명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 성령으로 기름부름 받을 때만이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나름 크레바스 같은 고난이 가득한 세상에서 어찌하든지 살아내려고 애는 쓰는데 그래서 적지 않은 성공도 거두었는데 정작 생명이 생명 되게 하는 일에는 얼마나 마음을 쏟고 있는지 말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24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은 육체의 사람 죽은 사람입니다. 새 사람은 성령의 사람 생명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누구이며 누구여야 합니까?
* 오늘 본문 38절에서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세상 그 누구든지 - 그가 남자든지 여자든지, 부자든지 가난하든지, 건강하든지 병들었든지, 배웠든지 못 배웠든지 - 자신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성령의 강수가 흐르는 생명이 될 것이라고.......생명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 는 것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이 누리게 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의미합니다.
* 우리가 잘 알듯이 모든 인생은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 육체에 대한 갈증으로 끊임없이 목말라 합니다. 소유하면 더욱 소유하려하고, 보면 더욱 보려하고, 쌓으면 더 쌓아두려 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그 자신의 삶에 초청하면 그 삶은 인간의 갈증, 육체의 욕망들이 꺾인 생수의 강이 흐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리스도의 약속입니다. 한마디로 멋지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주님이 흐르는 삶이니까요. 요한의 이 말씀을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58:11)
여러분! 물이 항상 넘쳐흐르는 동산의 과실은 어떨까요? 빛나고 탐스럽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은 너무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또한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솟는 샘물의 물은 어떨까요? 그 맛이 하도 달아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 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에 초청하며 그 분의 영으로 충만하게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은 성령이신 생수 샘물을 통해서 그 삶이 놀랍고 아름다운 열매를 결실할 뿐만 아니라 이웃을 생명으로 살려내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흐르는 삶!!!!!
*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몇 날 동안 기도하고 있던 그들에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에게 보이면서 각 사람위에 성령의 불이 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행2:3-4) 그들이 했던 방언이란 지상 방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성령의 불이 임하자 이사람 저 사람, 여기저기에서 영어, 불어, 독일어, 한국어, 이태리어, 헝가리어 등이 마구 터져 나온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이후 막혔던 언어가 뚫리는 역사! 혼돈되었던 언어가 일치 되는 역사! 곧 생명의 역사가 바로 성령 안에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 이러한 현상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헤아릴 수도 없었고, 사람의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문을 듣고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120문도의 이러한 성령 충만해서 벌어지는 그 광경을 보고는 놀라서 기이히 여기고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새 술에 취했어. 이상한 싸구려 술을 마셨나봐! 그래서 미친 거야!” 성령을 받은 새 사람들과 세상과 함께 사는 옛사람들의 극명한 차이가 여기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하늘이 내리는 영광을 자신의 삶에 그대로 받는 사람들과 하늘의 일들을 보고서도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아! 새 사람이여! ........아! 옛 사람아!
* “이상한 술에 취해서 저렇다.”고 조롱하는 사람들 앞에 사도 베드로가 열한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 높여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설교를 우리는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들이 술에 취해서 미쳤구나.” 하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들아! 우리는 싸구려 술에 취해서 미친 것이 아니야! 오늘 우리 안에서 일어난 이 놀라운 일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는 요엘 선지자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야......”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언했습니다.
그러자 무려 삼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회개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어찌해서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지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령, 그리스도의 영에 기름 부음 바 되었더니 평범했던 사람이 비범한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무능력자가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하여 죽음에 이를 사람들이 생명으로, 죄에 매였던 사람들이 자유인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보혜사 성령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성령을 받게 되고 성령을 덧입은 사람은 세상을 살리고 유익하게 하는 생명의 샘, 성령의 강수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20:22)
* 그렇다면 과연 성령은 무엇인가? 우리는 성령에 대해서 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먼저 성령을 명칭 하는 대표적인 이름들을 보면 성령은 “하나님의 신”(창 1:2) “주 여호와의 신”(사61:1) “아버지의 성령”(마10:20) “진리의 영”(요14:17) “성결의 영”(롬1:4) “생명의 성령” (로8:2) “그리스도의 영”(로8:9) “아들의 영” (갈4:6) “보혜사”(요14:16) 등 그 밖에도 여러 이름들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님이 가지신 인격의 특성은 “지성”(요14:26) “감정”(사63:10) “의지”(고12:11) 등이 있으며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인격적인 행동은 “말씀하심”(행28:25) “가르치심”(요14:26) “사람과 함께 하심”(창6:3) “증거 하심”(요15:26) “책망하심”(요16:8) “명령하심”(행8:29) “위로하심” (9:31) “계시하심”(고전2:10) 등 여러 일들을 사람들 안에서 행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님의 사역들이 성도 안에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 “거듭나게 하시고”(요3:3,5) “성도 안에 임재하시고”(롬8:11) “세례를 주시고” (행2:17-41) “삶을 인도하시며”(요16:13) “권능을 주시며”(미3:8) “거룩하게 하시며” (롬15:16)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 하시고”(롬8:16) “기쁨을 주시며”(롬14:17) “분별력을 주시고”(고전2:10-16) “열매 맺게 하시며”(갈5:22) “은사를 주십니다.”(고전12:3-11) 그러니까 살펴 본대로 성령은 흙의 사람이 새 사람, 생명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받아야할 최고의 보배인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라.” 그 삶에 주님이 흐르려면..........!!!! 성령을 받으라.
* 우리 사람의 수명은 보통 70-80세를 이야기 합니다. 물론 요즘에는 의학의 발달과 식생활등의 변화로 100세-120세 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수명의 본질은 흙에서 왔기에 흙으로 돌아간다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길어야 120년을 넘기기 어려운 존재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작품들은 100년 200년 500년 천년 이천년을 넘기는 것들이 즐비합니다.
백오십년 정도 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그리고 ‘안나 카레니나’ 같은 문학작품을 비롯하여, 거의 200년이 다 되어가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그리고 오백년을 훌쩍 넘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 심판’ 그리고 역시 오백년을 훨씬 넘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리고 천사백년을 넘긴 우리 한국의 ‘첨성대’ 그리고 거의 이천년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로마의 ‘콜로세움’........잠깐의 삶을 살며 육체의 일만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이 어찌 이렇게 놀랍고도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말입니다. 이러한 명품들을 보노라면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시115:16) 하신 말씀이 사람들의 삶의 태도에 따라 얼마나 놀랍고 경이적으로 성취되는지를 보게 됩니다.
* 그런데 저는 우리사람들의 이러한 위대한 작품들을 보면서 한 가지 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은 역사에 남은 몇몇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땅을 거쳐 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원한 삶’ 에 이르도록 하는 명품을 만들어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흙의 사람이 영생으로, 죽음의 사람이 생명의 사람으로 뒤바뀐다면 그것보다 명품이 어디 있겠습니까? 명품 사람이 될 때 그가 만든 것이 명품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까? 오늘의 나는 하나님의 눈에 과연 아름답습니까?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영광을 누릴 삶이란 옛사람이 아닌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해진 새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눈에 아름다운 사람이란 새사람을 입고 주님가신 길을 따라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삶에서 그리스도가 흐르도록,,,,,,..그것은 성령의 사람이 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