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친구인 악어부인들이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보고 싶었어. 그런데 어쩜 넌 하나도 변하지 않았니. 보톡스라도 맞았니?” “얘는. 그러는 너는 더 젊어 보인다. 얘. 그런데 너 가지고 있는 가방이 아주 멋지다. 그거 어디선 난거니?” “응. 전 남편이야!”...... 여러분! 동물은 동물 같은 일들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다움을 잃어버리고 죽음이 되어 동물 같은 일들을 한다면 어떨까요? 미움, 시기, 다툼, 거짓말은 예삿일이고 귀금속을 사기위해 남자를 유인하여 살인을 하고, 돈을 더 많이 모으겠다고 경찰이 강도짓을 하고, 정신박약인 사람들을 고쳐주겠다며 모아놓고 노동력을 착취하고...........셀 수도 없는 참혹한 일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 사람들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세상과 그 세상이 주는 것에 온 마음을 기울이고 살던 사람이 먹든지 마시든지 그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삶을 다할 수 있는 비결은 없을까요? 악한 일을 일삼던 사람이 선한 일꾼이 되며, 무능의 사람이 능력의 사람으로 뒤바뀌는 역사는 없을까요? 그리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죽음을 따르던 사람이 시원스레 보고서 생명의 일을 도모하는 일에 온전히 충성 할 수 있는 비결은 없을까요? 또한 사람이 사람다움의 품위를 나타내며 창조의 영성으로 충만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 같은 일들을 할 수 있는 비결은 없을까요?
* 오늘 본문을 기록한 에스겔은 부시의 아들로서 제사장가문 출신이었습니다.(겔1:2) 에스겔은 B.C 597년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이스라엘 유다의 왕 여호야김과 왕족 및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들을 포로로 데려갈 때에 그들 가운데 섞여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간지 5년만인 약 30세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선지자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그는 22년간 결코 쉽지 않은 시대 속에서 오롯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 사역을 충성되게 감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하여 그 삶을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 에스겔서를 1장부터 48장까지 읽어가다 보면 우리는 전율을 느낄 만큼의 귀한 성품을 지닌 에스겔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심혈을 기울여 꼭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첫째로 그가 지닌 성품은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열정으로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전능자를 향한 열정과 충성으로 가득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내를 갑자가 거두어 가시면서 “결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지 마라.”(겔24:16) 하셨을 때에도 흔들림 없이 그 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복종하였습니다. 맘을 다스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을 텐데도 맡기신 사명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그의 눈엔 오직 하나님만 보였고 그의 심장은 오직 하나님으로 충만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 충만. 하나님으로 충만!!!” 바로 그가 하나님의 성품을 소유하게 됩니다.
* 또한 에스겔의 다른 성품 하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서 자신의 민족, 고난당하는 그 백성들을 뜨겁게 사랑한 애국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로 생활가운데 있던 자신의 민족을 품고서 온 삶을 다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외쳤고, 자기만을 추구하고 ‘나 살기도 힘들다.’고 불평하던 민족을 품고서 자신처럼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성품하나는 하나님의 크고 놀랍고 위대하신 사랑을 통하여 빚어진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선지자로써 심판의 예언을 행할 때에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직하고 날카로웠지만 백성들을 살피고 헤아림에 있어서는 선한 목자의 성품을 나타내는 균형을 이룬 인격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열정과 충성, 온유와 사랑의 성품을 가지고 고난 받는 민족, 아픔당하는 민족, 그리고 죄악의 결과로 신음하는 백성, 절망에 사로잡힌 영혼들을 붙들고 헌신할 수 있었던 그 힘과 능력은 오직 하늘로부터 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사람됨!!!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그렇게 세우신 것입니다. 사람의 사람됨! 신의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말입니다.
* 에스겔서에서 계속하여 에스겔에게 쏟아지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1:3) “그 신이 내게 임하사”(2:2)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올려 데리고 가시는데”(3:14)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하시더라.”(3:14) “여호와께서 거기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3:22)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서 내게 임하기로”(8:1), “그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40:1)............ 그렇습니다. 바벨론의 포로 되어 그들의 노예처럼 속박되어 있던 에스겔이 그 눈으로 하나님을 보며, 그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생명과 능력의 사람,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는 에스겔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신, 하나님의 권능이 그에게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아! 모든 장애물을 넘는 여호와의 권능이여! 아! 생명의 하나님의 신이여!”
*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 알아야 할 것은 ‘여호와의 권능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권능은 권세 있는 능력으로서 하나님의 권능에 기름부음을 입은 사람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됩니다. 또한 희한한 능력과 기이한 일도 행하게 됩니다. 마치 사도바울과 베드로처럼 불치의 병자를 치유하고 예언을 하며,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려내는 생명이 됩니다. 또한 엘리야 선지자처럼 가뭄의 땅을 위하여 기도하면 비를 내리게 하는 역사도 일으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권능’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힘이요, 하나님의 신으로부터 우리 성도에게 임하는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 저는 간절히 그리고 또 다시 간절히 바랍니다.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것 같으나 실상은 타는 목마름으로 허덕이는 이 시대! 부요한 것 같으나 실상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보다 더 가난한 이 시대! 외적으로는 살아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죽어서 온갖 악취가 가득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에스겔에게 임하였던 여호와의 권능, 에스겔에게 부어졌던 하나님의 신! 성령의 권능이 끊임없이 부어지기를 말입니다. 그래서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되며 그래서 은혜가 되고, 영광이 임하는 삶을 살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오늘 본문 말씀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1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에스겔이 하나님의 신에 붙들려서 한 골짜기 가운데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세워진 골짜기 한 가운데는 맑은 샘이 흐르거나 온갖 꽃들이 가득 피어 있는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각종 새들이 소리 높여 지저귀거나 삼림이 우거진 풍광 좋은 골짜기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서 있던 곳은 아주 심히 마른 뼈들이 가득 메워진 곳이었습니다. 엄청난 시체들이 썩고 썩어서 뼈를 이룬 무시무시한 곳이었습니다.
* 여러분! 한 번 상상을 해 볼까요? 죽은 시체들이 다 썩고서 뼈를 이룬 곳! 그 뼈들이 마르고 말라서 바람이 불면 골짜기의 먼지와 함께 뼈에서 나오는 가루들이 흩날리는 곳! 어떻습니까? 표현하기조차 참으로 끔찍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황량하겠습니까? 얼마나 절망적이겠습니까? 또한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하나님의 신이 에스겔을 끌고서 데려다 놓으신 마른 뼈들로 가득 채워진 골짜기는 바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그들에게 자유를 넘겨주고 고난 당하며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실상, 그 자체였습니다. 바벨론으로 부터 당하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아픔의 삶, 황량함만 가득한 절망의 세월을 겨우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의 처지가 곧 골짜기에 가득 쌓여있던 마른 뼈들이었습니다. 이제 그러한 이스라엘의 탄식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겔37:11)
* 과연 누가 여기에 소망이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누가 이곳이 살만한 곳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무엇으로 이 죽은 곳을 생명이 역사하는 곳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불도저로 다 밀어 버리고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여 신도시를 건설하면 되겠습니까? 그곳에 정책적으로 사람들을 이주시켜서 전원도시를 만들면 될까요? 아니면 라스베이거스 같은 도박의 도시, 용인 자연 농원 같은 오락의 도시를 만들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과연 생명이 있겠습니까?
* 표현하기조차 참혹한 광경 앞에 서 있던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질문을 던지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3절) - 과연 마른 뼈 같은 너희 이스라엘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끝없는 절망가운데 있는 너희가 참으로 회복될 수 있겠느냐? 죽은 바 된 너희 안에 생명이 일어나겠느냐? 너희가 과연 새 사람이 되겠느냐?” 물어 오십니다. 하나님의 물음 앞에 에스겔은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의 이 대답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무한 신뢰, 전적인 신뢰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정도 신뢰” 그에 해당하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사용하십니다. 부족함이 있고 모자람이 있을지언정 여전히 그를 붙들고 계십니다. 완벽하기 때문에 그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심령 안에 심겨져 있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것을 보시고 사용하십니다.
*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대언자로, 소망으로 이끄는 예언자로,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자로 높여서 사용하십니다. 그러자 가루를 일으키던 뼈들 사이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뼈들이 짝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수많은 뼈들이 얼굴뼈는 얼굴로, 등뼈는 등으로,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짝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여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히 4:12) 하신 말씀이 죽음의 골짜기에서 그대로 성취되는 놀랍고 신비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니까 말입니다. “아! 천지를 창조하시던 생명과 능력의 하나님의 말씀이여!!! 저희가운데도 임하소서!!!”
* 바로 그때 에스겔은 다시 하나님의 명을 쫓아 힘줄도 있고, 살도 붙고, 가죽으로 덮여 있었으나 여전히 시체 같은 그들에게 명령합니다. “생기야! 사방으로 붙어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붙어서 살게 하라”(9절) 그러자 시체 같았던 움직이지 못하던 그들에게서 생기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힘과 능력을 가진 군대가 되었습니다. 절망으로 가득했던 곳, 탄식과 슬픔이 있던 곳, 눈물이 마르지 않던 곳, 썩은 냄새가 가득했던 곳, 산 것처럼 보였으나 여전히 사망이 넘실대는 그곳에 하나님의 생기 즉 “루아흐” 하나님의 성령이 부어지자 회복의 역사! 생명의 역사! 부흥의 역사! 승리의 역사가 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 역사! 그 영광! 임하소서!!!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진실로진실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로 살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로 생명이 되게 하고 부흥이 되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나님의 일을 능하게 하는 권능으로 인도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진실로 하나님의 생기로 충만합니까? 우리 안에 생명 샘이 마르지 않고 쉼 없이 흐르고 있습니까? 혹, 육체로 여전히 목말라 하며 탄식하며 절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 에스겔이 본 환상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혹 우리는 여전히 죽은 사람, 옛사람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 5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 하나님의 권능이. 그리스도의 영이, 보혜사 성령이 우리 안에 가득 부어지기를 그리하여 하늘의 생명이 분출하는 우리의 삶이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