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4년 5월 27일, 힘써 부르는 찬양에 귀 기울이며 듣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생명의 복음을 증언하였습니다. 물론 헝가리 사람들도 많았지만 미국인들, 독일인들, 프랑스사람들, 이태리 사람들, 이스라엘 사람들,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도 생명을 실어 나르려고 마음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여러 명의 개혁교회에 몸담고 하나님을 신앙하는 크리스천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십 년, 혹은 오십 년 신앙생활을 하면서 증언하는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첫째로 78세 된 할머니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리고 구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나도 하나님을 믿어요. 개혁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세요? 참 잘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하나님을 믿으니 무엇이 좋으신가요?” 다시 질문했더니 “나는 오십 년을 혼자 살았어요. 남편이 내가 28살 때 병으로 내 곁을 떠났지요. 처음엔 힘들고 어려웠는데 하나님께서 내 곁을 지켜 주셨습니다. 선한 목자가 되셔서 나를 걸음걸음 쉴 만한 물가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셔서 오늘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주님으로 인해 늘 기쁨의 삶이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라고 증언을 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 또 다른 한 분은 60대 중반의 할머니였습니다. 그 분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오늘 날까지의 삶이 어떠셨어요?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물었더니 “아니요. 제 인생엔 유난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젠 괜찮겠지 하면 또 다른 어려움이 몰려왔지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견고케 하여 주셨습니다. 마치 어른 손 안에……… 마치 아버지 손 안에 담겨 있는 아이의 손처럼 하나님께서 내 삶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오늘까지 내 삶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있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 여러분! 그렇습니다. 그들은 70년 혹은 80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 삶에서 만나고 체험했던 하나님을 증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신앙의 증언은 무엇입니까? 다윗처럼 혹은 위의 할머니들처럼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자시오, 나의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산성이시로다.”(시18: 2)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고백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증언하고 있습니까?
디모데전서 2장 4절에서 사도바울이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실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체험하고 만난 구원의 하나님! 생명의 예수그리스도! 에 대하여 힘써 증언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듣고 구원을 받고 우리와 같이 진리의 삶을 살게 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명자입니다. 따라서 성도가 그 자신의 삶의 최고의 정점에 놓고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전능자께서 우리 성도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일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자신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실천할 뿐만 아니라 그의 가정에서 또한 그가 속한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입술의 언어로서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해야합니다. 그래야 영원히 죽을 죄인이 구속함을 받고 진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감으로 영원히 살게 되는 은혜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 만일 동방의 가난했던 작은 나라, 우리조선에 선교사님들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복음을 전하여 주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 우리 민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요? 또한 만일 누군가가 나를 복음의 길로 이끌어 주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과연 세상 것에 욕심 부리지 않으며 영생을 소망하는 거룩한 삶으로 오늘을 건축해 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오늘 내가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못했다면 과연 오늘 나의 영혼의 처지는 어떨까요? 사단의 종노릇하는......... 마치 짐승 같은 삶을 사는 비참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우리 인생에게 절대적 은혜와 사랑은 돈과 명예와 권세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요 복음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도 이 절대적 은혜와 사랑의 영토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죽음을 따라 내려가고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오늘 본문 2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여러분!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내가 너희에게 이제까지 가르쳐준 것이 있지 않니? 비밀스럽게 가르친 것도 있고 너희에게만 개인적으로 가르친 것도 있지 않니? 이제는 그것을 광명한 빛처럼 모든 사람에게 증거 하여라! 집 위에서 나팔을 불어 전파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이 진리를 듣도록 증언 하여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이 말씀을 오늘날의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 성도들에게 적용을 시켜보면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가 듣고 배우고 경험한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입술로써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을 찾아가서 증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복음의 증인으로써의 삶,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사명자의 삶, 사단이 이끌어가는 죽음의 행진을 절단해버리는 증인으로 제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 우리는 입은 있으나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벙어리는 괜히 벙어리가 아닙니다. 진리를 말하지 못하면 벙어리입니다. 삶에서 체험한 생명의 은혜를 증언하지 못하면 벙어리입니다. 나에게 주님으로부터 쉼 없이 임하는 기쁨을 노래하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벙어리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밝히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내가 죄에서의 자유, 죽음에서의 생명, 저주에서의 축복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증언하지 않는다면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저주의 자리로, 형벌의 자리로 떨어진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을 향하여 진리와 생명을 증언하는 나팔수가 되어야 합니다.
* 저는 오늘까지 15년차의 복음전도자의 삶을 살면서 늘 잊혀 지지 않는 사건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그 사건은 오늘까지 사시사철 저를 복음전도자로 서부역에서 외치게 하는 중요 이유 중의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지하철에 투신한 사람의 소식을 들으며/ 조금 더 힘써 복음을 노래했더라면.........)
*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의 복음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 인생들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강입니다. 따라서 그 생명의 강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그들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관계없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삶에는 생명을 마시는 사람다움의 힘과 능력이 나타나며 풍성하고 탐스러우며 보배로운 생명을 결실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생명의 강이 더 이상 흐르지 않고서 오늘 나에게서 멈춰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를 들어 한강을 팔당댐에서 완전히 막아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부다페스트에서 도나우 강을 막아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강 하류의 모든 것이 마르고 시들고 죽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생명의 강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의 강은 끊임없이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흘러야 합니다. 귀머리거리에도, 절름발이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구걸하는 사람에게도, 거리의 여자들에게도, 그리고 부자로 불리는 사람에게도, 건강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귀부인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제한 없이 흘러서 그들이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 하나님에 의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생명의 강이 그의 제자들을 관통하였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와 그 성도들을 관통하였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관통하여 오늘 우리들의 삶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들의 삶에 그리스도의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되었고, 오늘 우리들의 영혼 안에 죽음으로 생명이 되며, 땅이 하늘이 되는 하나님의 신의 은혜가 흐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듯이 그 과정은 순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목마르고, 헐벗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채찍에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히는 것뿐만 아니라 창에 찔려 죽고, 돌에 맞아 죽고, 껍질이 벗겨 죽고,....... 사자의 밥이 되어 죽고, 화형을 당하고 참수를 당하는 순교를 통하여 관통되어진 역사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강을 자신들의 삶으로 여전히 흐르도록 한 그들은 오늘 본문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하신 말씀대로 몸과 영혼 사이에서 몸에 마음 두지 않고 영혼에 마음 두며 불러주신 사명 곧, 복음의 증인으로 헌신한 것입니다.
*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나는 진리와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까?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가정에서, 이 시대와 역사 앞에서 생명의 강이 되어 흐르고 있습니까? 만일 내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것이 싫어서, 조롱당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고난과 핍박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복음의 증인으로 생명이 되어 흐르지 않는다면 십자가의 죽음까지 마다하지 않으셨던 주님의 헌신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만일 내가 주님을 먹고 마시고 배부를 줄만 알았지 주님을 먹고 마심에 대한 증인이 되지 못한다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방황하는 나의 이웃의 미래는 어찌 되겠습니까? 무엇이 두려워서 벙어리처럼 지낸다는 말입니까? 무엇이 겁이 나서 그리스도를 증언하지 못하며 나의 교회를 자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부다페스트에서의 한인선교는 어찌해야겠는가?)
* 오늘 본문 24-25절에서 말씀합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무슨 의미입니까? “선생님이신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다면 하물며 그의 제자 된 우리는 어떤 고난과 죽음을 당해야겠는가? 우리의 상전이신 주님께서 귀신의 두목 바알세불이라는 모욕을 당하셨다면 하물며 그 분의 종 된 우리는 어떤 모욕을 당해야 하겠는가?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그 참혹한 십자가의 죽음까지 당하셨다면 하물며 피조물인 나는 어떤 죽음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미입니다.
* 예수님께서 생명의 강이 되어 흐르신 것처럼, 사도 바울과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주님을 먹고 마시고서 생명의 강이 되어 흐른 것처럼,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앞선 신앙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오늘의 시대와 역사와 사람들 사이를 관통하는 생명의 강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의 강이여! 흘러라! 흘러라! 거침없이 흘러라! 내가 그 통로가 되리라!!!
* 오늘 본문 32-33절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완벽하게 대비되는 문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조금 더 진보된 문구로 바꾸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증인이 되면, 누구든지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증인이 되지 아니하면” 입니다. 엄청난 갈림입니다.
* 우리가 잘 알듯이 우리들의 존재의 종결은 최후의 심판의 자리에서 결정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이 한 번의 결정은 돌이킬 수 없는 절대 불변의 영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 최후의 심판의 자리에서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알곡인가? 쭉정이인가? 영원한 영광의 나라인가? 영원한 형벌의 자리인가? 결정하시는 심판자로 존재해 계십니다.
요한복음 5장 22절에서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Moreover, the Father judges no one, but has entrusted all judgment to the Son” 그러니까 이 땅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언하며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강이 되어 흐르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 그분의 진리와 생명의 나팔수로 살아가는가? 벙어리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가? 버림받는가? 영원한 영광과 의의 나라에 들어가는가? 거부되는가? 하는 것이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 사도바울이 고백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부름 받은 성도인 우리는 두려움 없이 진리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관통시키는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목숨을 다하여 구원의 생수를 거침없이 흐르도록 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오늘의 복음은 이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