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은 시간이 아니라 오심의 그 사건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의 사건은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구원사역의 마침이요 완성이며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영광의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의 이유. 고난 속에서도 인내함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2013년 12월 12일, 지난 목요일 Hatosi 공립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과 전쟁하듯 사역을 마쳤습니다. 늘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치르면서 ‘참으로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역을 마치고 떠떠반여 집시교회로 가기위해 복도로 나왔습니다. 마침 그곳엔 그 학교에서만 25년간 아이들을 가르친 여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2년 후면 은퇴하게 됩니다. 은퇴하게 되면 정확히 40년의 세월을 집시학교에서만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 됩니다. 그분이 저를 보고는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님! 힘들지 않습니까? 어렵지요?”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내가 근 40년 동안 집시학교에서 일을 했습니다. 도무지 다룰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 약 한 시간가량은 그냥 소파에 앉아있습니다. 모든 힘이 소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몸과 마음으로는 집안일을 도무지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도 삭막해졌습니다. 목사님도 이미 경험하셔서 아시겠지만 아이들이 얼마나 거칩니까? 상스럽고 천박한 욕을 입에 늘 달고 살지 않습니까? 행동들은 또한 어떻습니까? 도무지 한 순간 앞을 예측 할 수 없는 아이들입니다. 나는 40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릅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나에겐 바로 이곳이 지옥이었습니다.” 그 선생님의 얼굴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우나 짐작 가는 깊은 회한이 묻어 나왔습니다. 저도 같은 일들을 경험하니까요.
* 그런 그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네. 그렇지요. 참으로 힘드셨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삶이 바로 이곳에서 한 알의 씨앗으로 심겨졌기에 분명 귀한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집시들의 역사가 얼마입니까? 기원전 6세기 정도니까……이미 수천 년 아닙니까?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사명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아! 정말 그렇습니까?” 그러면서 선생님의 얼굴은 상기되었습니다.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셨다는 말에……… 위로를 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역사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추수의 기쁨은 한 순간에 이룰 수 없습니다. 길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영광된 소망을 품고 오늘도 내일도 인내하는 사람! 우리는 그들을 성도라고 부릅니다.
* 저는 그 선생님과 대화하면서 참으로 큰 아쉬움을 가졌습니다. 만일 그 선생님이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성도였다면 어땠을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슴깊이 새겨진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모두들 가능성이 없다고.......이곳은 사막이라고.......이곳은 지옥 같은 곳이라고 소리치는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지옥 같은 40년의 세월이 아닌 여전히 힘들고 어렵고 고단했겠지만 보냄 받은 자로 하나님의 일을 성취해간 소망의 40년 세월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현장은 어떻습니까? 세상이 주는 조건이 그 아무리 훌륭하고 풍성할지라도 하나님 밖에서 살아가는 삶은 눈물과 회한의 인생 80년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세상의 조건이 그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소망의 인생 80년이 되는 것입니다. “눈물과 회한의 인생 80년! 이냐? 소망의 인생 80년! 이냐?” 어떤 삶을 원하십니까?
* 참된 소망은 오늘의 삶을 이겨내는 힘과 능력이 됩니다. 삶의 현장이 그 아무리 거칠어도, 삶의 수고가 그 아무리 고되어도 참 소망을 품었기에 넘고 또 넘어 소망의 성취를 맛보며 누리게 합니다. 그 사람 자신에게 남다른 힘과 능력이 있어서 어려움과 고난을 뚫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이 가진 힘의 크기가 그 삶을 이끌기 때문에 고난을 뚫습니다. 소망이 심어준 능력이 그 인생을 견고케 하기 때문에 넘고 또 넘으며 견디고 또 견디어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소망입니다. 진정 품어야 할 소망을 품고 있습니까? 삶은 순간의 기쁨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삶은 영원한 기쁨을 위하여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들의 유일의 소중한 생명이 투자되어야 할 곳은 이 땅과 이 땅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요. 하나님소망! 하늘 소망! 그것만이 우리의 삶을 승리케 할 힘과 능력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 오늘 본문 7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라고 말씀한 한 것처럼 탐스럽고 풍성한 열매를 결실하려면 뜨거운 한낮의 태양도, 비바람의 거친 풍상도 참아내고 견뎌야 합니다. 뜨거운 한낮의 태양, 비바람의 거친 풍상을 넘어서지 못하면 결코 풍성하고 탐스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또한 산 정상에 올라 온 세상을 드넓게 둘러보며 거침없는 함성을 외치려면 거칠고 험한 언덕길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온 세상을 시원스레 둘러보는 기쁨, 힘껏 소리칠 수 있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참 소망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더욱 깊이 품으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영광! 하나님 나라의 삶! 영생을 품고 또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온 삶을 다해 그 소망을 향해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그 영광의 소망을 결실하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하여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부름 받은 기스의 아들 사울이 하나님을 향한 첫 마음, 첫 사랑을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 품었던 첫 마음, 첫 사랑을 끝까지 간직하고 견고하게 했더라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자리를 끝까지 간직하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고 또 누렸을 텐데 사울은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중간에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비껴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곧은길이 아닌 자신을 위한 어그러진 길을 쫒아 나아갔습니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더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을........... 그 어떤 지위와 명예와 권세를 얻었을지라도 그 마음이 하나님과 마지막까지 일치했었더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을 사울은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아! 삶이 복으로부터 비껴나간 어리석음이여! 아!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으로부터 어그러진 황무한 인생이여! 여러분! 비껴간 마음이 아닌 곧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어그러진 삶이 아니라 정연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승리! 그곳에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 하나님의 마음에 새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이새의 아들 다윗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빗나간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에게 왕권을 옮기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무엘을 통하여 다윗에게 왕의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 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삼상 16:13) 다윗은 참으로 신묘막측한 복과 영광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무엇이 마음에 드셔서 그를 택하시고 왕의 기름을 부어주셨을까? 주목받지도 못했던 이새의 말째아들이었고, 빈들에서 가축을 기르던 그를 하나님은 왜 왕으로 선택하셨을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고, 낮은 자를 들어 높이 세우시며,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일들 말입니다. 우리의 삶은 전능자의 주권아래 놓여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어떻게 들어 사용하실지 모릅니다. 소망 중에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Amen! Lord!
* 그러나 다윗은 기름부음과 동시에 왕으로 등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이끄시는 왕의 길, 왕의 지위는 멀고도 험했습니다. 왕의 기름 부음을 받고 여호와의 신에 의해 통치 받는 다윗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왕,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묘막측한 영광의 성취를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그 길은 쓰디쓴 고난과 인내의 길이었습니다.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백성들 사이에서는 “사울의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18:7) 하는 칭송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칭송은 곧 다윗에게 치명적인 위기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던 것입니다.(삼상19:9-10)
* 사울을 피해 도망 다녀야하는 다윗의 신세는 그야말로 눈물과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자신의 방에서 창문을 통해 급박하게 도망친 다윗의 달음질은 놉 땅을 거쳐 가드 땅까지 지나야 했습니다. 두려움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 길은 가드 땅을 지나 아둘람 굴과 그일라 땅과 황무지 산골까지 굽이굽이 도망 다녀야 하는 비참함이 드러누운 길이었습니다. (삼상23:14) 잠시도 생명을 담보할 수 없는 도망자 신세가 된 것입니다. 왕의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신에 의해 감동을 받는 사람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야 하는 한 숨이 넘쳐나는 길이 그의 차지였습니다. 안락한 침대에서의 잠이 아니라 돌베개를 베고서 하늘을 지붕 삼고, 나무를 이불 삼고 살아야하는 고난의 현장이 그의 차지였습니다. 게다가 도망 중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는 미친체하며 수염에 침을 흘리는 수치와 굴욕이 그의 몫이었습니다. 왕의 기름부음을 받았으면 곧장 왕의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신에 의해 감동받았다면 왕의 자리에 올라 멋지게 통치하며 그 영광을 누려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을까요? 다윗은 왜? 유리방황하듯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을까요? 아니 하나님께서는 왜 다윗을 그토록 험난한 길로 몰아내셨을까요?
* 만일 다윗이 그 고난의 세월을 통과하지 않았다면 그가 “하나님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영광을 과연 얻을 수 있었을까? 또한 만일 다윗이 그 쓰디쓴 인내의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더라면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왕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탄생의 통로로 쓰임 받는 영광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을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정금의 순결함은 불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순결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왕다운 왕이 되고, 장차 임할 그리스도의 왕권의 통로로 쓰임 받는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고난의 길은 필수였습니다. 인내의 세월은 숙명이었습니다. 보배로운 것! 영원한 것은 쉽게 얻을 수도 얻어지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인내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비밀입니다. 보배중의 보배를 소망으로 품었기에.........
* 하나님의 거룩하신 부르심의 은혜 안에서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이유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성해 가는 것에 있습니다.(갈4:19)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성해 간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 그 영원한 소망을 성취해 가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영원한 소망을 성취해가는 삶이란 순간의 기쁨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은 육체의 기쁨을 얻는 길도 아닙니다. 그 길은 끝없는 사랑의 수고와 불굴의 고난의 인내와 더할 수 없는 순종의 눈물과 빛나는 충성의 땀 흘림이 별처럼 수놓아진 길입니다. 영원한 소망을 성취하는 길, 천국으로 나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얻게 될 영광과 기쁨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집, 자동차, 보석....... 비교할 수 없는 최고, 그 이상의 최고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선언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의 강림을 함께 기다립시다. 그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끝까지 견디고 이기며 주님의 강림 앞에 서야합니다. 주님의 재림! 그때 그 시간은 불완전했던 모든 것이 완성되는 시간이요, 인간의 모든 육체는 소멸되고 하나님의 것으로 세워지고 충만해지는 절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 주님다시오시는 그때 그 시간은 주님 때문에 흘렸던 눈물은 하나님의 끝 모르는 기쁨과 환희로 뒤 바뀌는 시간입니다. 주님 때문에 고난당했던 몸과 마음은 천사들도 부러워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 영생의 영광을 누리는 보배가 됩니다. 또한 주님다시오시는 그때 그 시간은 주님을 위하여 애타게 충성하고 헌신하며 섬기고 살아간 그 모든 수고가 정금 면류관이 되어 그 자신의 머리에 씌워지게 되는 영광이 됩니다. 영원한 것을 향한 기다림의 시간은 길고 힘듭니다.
보배중의 보배를 얻기 위한 인내의 수고는 고단하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는 세상 전부와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 잠간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해 살아가는 눈물과 회한의 인생 80년! 의 삶을 살겠습니까? 아니면 힘들고 어려워도 십자가로 살아가는 소망의 인생 80년! 이 되겠습니까? 80년을 허비하겠습니까? 80년을 준비하겠습니까?
* 오늘 본문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You too,
be patient and stand firm, because the Lord's coming is near.” 너희도 길이 참고.........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