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내가 누구에게 그리고 무엇에 속해있는가 하는 것은 그 자신의 삶의 태도와 삶의 과정 그리고 삶의 결과가 결정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삶의 태도와 과정 그리고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세상에 속한 사람의 삶의 태도와 과정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과 어떤 차이를 낳겠습니까?
* 기스의 아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권제도는 하나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택함 받은 선민으로써 하나님에 의한 통치 아래서 살아야했지만 그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보다 세상나라들처럼 보이는 왕이 더 현실적이며 실제적이라고 여겨서 왕을 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요구는 표면적으로는 하나님께 속해 있었으나 내면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 밖, 즉 세상에 속한 세상백성과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 왕으로 부름을 받은 사울에게서의 가장 큰 사명은 수시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블레셋을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으로 즉위한지 2년 만에 삼천여명의 정예부대를 모집하였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군대로 발 돋음 한 것입니다. 사울은 그 중, 이천 명은 자신과 함께 당시 가장 전략적 요충지였던 믹마스와 베델에 진 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천명은 그 아들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지파의 땅, 기브아에 주둔시켜 블레셋에게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너희는 우리들의 땅에서 물러가라. 더 이상 우리를 괴롭게 말라. 우리에게도 이런 군대의 힘이 있다” 하며 블레셋의 수비대를 공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맞선 블레셋은 병거가 무려 삼만, 마병이 육천, 그리고 모인 군사의 수가 해변의 모래와 같았습니다.(삼상13:5)
* 칼과 창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삼천여명의 군사와 최고의 전력을 갖춘 바다의 모래와 같은 군대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이스라엘 군대는 두려워 떨며 굴과 수풀과 바위틈에 숨으며 뿔뿔이 흩어져 겨우 육백여명이 남았습니다. 자신들이 요구하여 세운 왕과 함께 블레셋과 맞서서 멋지게 이기겠다고 했지만 드러난 것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하게 된 무능함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께 속해 있었으나 실제적으로는 세상의 방식을 따르던 자들의 실패가 이스라엘에게 임한 것입니다. 왕 중의 왕 하나님께 속해있었다면 병거가 삼만이 아니라 삼십만 그 이상이라도 제압했을 텐데.......세상적인 왕! 사울을 신봉했던 결과는 참혹한 패배였습니다. “아! 사울의 패배여! 아! 이스라엘의 실패여!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었더라면........ 참으로 그랬더라면.......!!! 오직 주님의 얼굴을 구했더라면......... 참으로 그랬더라면........!!!”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아래서 살 때에 승리를 거머쥐게 됩니다. 시편27편 2절에서 증언합니다. “악한 사람들이 나를 잡아 죽이려고 무섭게 달려들고, 원수들과 적들이 나를 공격하지만 휘청거리다 모두 쓰러질 것입니다.” 하늘의 상속자인 우리가 처해진 현실이 어렵다하여 하나님의 뜻으로 사는 것을 꺾어 버리고 세상의 방법과 식으로 살면 더 어려워지고 꼬이게 되는 일들 앞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상황, 그리고 그 어떤 문제 앞에서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힘써 추구해야할 것은 끝까지 하나님께 견고히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그분의 통치와 뜻을 삶을 다하여 온전히 따르는 것입니다.
*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람 앞에 촛불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이스라엘, 망령된 일로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멀어진 사울의 모습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와는 달리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블레셋을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이방인들에 대한 멸시와 천대의 언어였던 “할례 없는 자” 라 부르면서 자신의 신복 한명을 데리고 블레셋의 부대로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모두들 두려워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단 한 명의 신복만 데리고 어찌 모래의 수와 같이 모여 있는 막강군대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자실 특공대도 아니고 말입니다. 무수한 적진을 향해 나아가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요나단은 그 마음에 무엇을 품었기에 이리도 용감하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결코 행할 수 없는 불굴의 용기와 배짱이 요나단에게 충만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증명서인 것입니다. 빛나는 용기! 선명한 발걸음!!! 오늘 이 시대에는 그런 사람이 없을까요?
* 그러나 블레셋의 막강군대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험한 바위산과 깎아지는 뾰족한 바위산이 둘러쳐진 곳을 넘어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요나단에겐 나아가는 길도 고난이었고 그곳에 진치고 있는 블레셋의 군사들도 넘을 수없는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다”(삼상14:6) 하며 블레셋 진영으로 나아갔고 순식간에 이십 여명을 물리치며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며 두려워 떨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 성경은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느니라.”(삼상14:12) “여호와께서 그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으로 전쟁이 벧아웬을지나니라.”(삼상 14:23)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 속에서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자신을 증명하여 주십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며, 완전한 실패를 완전한 승리로 바꾸십니다. 넘어설 수없는 것을 넘어서게 하시며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누구이며 누구에게 속해 있습니까? 여러분의 소속증명서에는 뭐라 적혀있습니까? 분명 “하나님께 속해 있노라.”고 적혀있습니까? 우리의 힘과 능력, 자랑과 기쁨은 우리들의 손으로 뽑은 보이는 왕이 아니라 보이시지는 않지만 언제나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입니다.
* 지난번 간증하였던 이야기입니다. 세 명의 청년들이 찬양을 듣고 있었습니다. 다들 가장 젊은 시절을 지나는 청년들이었습니다. 두 명은 헝가리인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미국인으로 플로리다 주에 살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자 “우리는 카톨릭인입니다. 우린 프로테스탄트와는 다릅니다. 우리는 당신의 신앙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며 복음을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나와는 상관이 없다 하는 것입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복음을 복음으로 가르치고 배우지 못한 오류의 결과 입니다. “아닙니다. 한 하나님입니다. 한 믿음이며 한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성경입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대화는 진지하고 분명하게 저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들의 심령이 진리에 끌리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신 것입니다. 아주 집중하여 듣는 그들에게 “믿음은 카톨릭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카톨릭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서 꽃이 피도록 힘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서 열매 맺도록 수고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목하시는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라고 권면해 주었습니다. 또 지난주에는 개혁교회 교인이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예배는 드리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합니다.......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는 누구에게 속해있으며 무엇의 통치아래 있습니까? 오늘 우리들이 소속된 곳은 어디입니까? 정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면 그 증명서를 열어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2차전도 여행 중 1년 6개월 정도 머물면서 복음을 전함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바울이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마음에 어려움을 겪을 때에는 주님께서 밤에 환상가운데 나타나셔서 “두려워하거나 겁먹지 말라. 잠잠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니 담대히 증언하라”(행18:9) 하시며 힘을 돋우어 주셔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많이 가고, 더욱 기대가 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은사도 많고, 열정도 넘치고, 사랑도 풍성한 것 등 선한 것으로 계속차고 넘치기를 바랐는데 교회 내에 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 그 분쟁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위에 세워진 교회가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나는 바울에게 속해있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해있다. 나는 베드로의 사람이다. 나는 메시아 그룹에 속해있다” 하면서 파벌이 생기고 분열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고 오직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영광되게 기쁘시게 해야 할 교회와 성도가 사람에 의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사람들을 위한 교회로 분열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사랑의 복음, 영광의 복음, 그 핵심가치는 온데간데없고 “내가 옳아! 우리가 높아! 우리가 더 나아! 바울이 더 유능해. 아니야! 아볼로가 더 나아. 그의 언변을 들어봤어? 이런!!! 무슨 소리하고 있는 거야. 베드로는 주님의 수제자였잖아. 그래서 난 베드로파야.” 하는 육체의 냄새만 가득 풍기게 된 것입니다. “아! 하나님의 사람 되심의 본질을 잊어버린 흙이여! 아!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저버린 육체들이여!”.......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13절)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성도의 자랑은 누구이며 무엇입니까? 누가 무엇이 우리를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절망의 늪에서 영생으로 나아가는 절대 희망의 복을 주셨습니까? 누가 무엇이 우리를 죄 가운데 나서 죄로 인해 멸망당해야하는 처지에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광명의 길로 나아가는 복을 주신 것입니까? 또한 누가 우리에게 실패에서 승리로 일어서는 칠전팔기의 힘을 공급해 주며, 불확실의 시대 속에서도 소망으로 견고케 하고, 불가능의 현실 속에서 ‘전적 가능’이라는 믿음을 품도록 돕는 것입니까? 누구입니까?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그리스도! 오직 성령님! 아닙니까? 그런데 과연 누가 무엇이 하나님의 자리를, 그리스도의 자리를, 성령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과연 그 자리를 누구에게 넘겨 준 것입니까?
* 여러분!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와 성도는 어떨까요? 고린도교회처럼 바울 파, 아볼로 파, 베드로 파. 메시아주의 파로 나뉘어있지 않습니까? 왜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대형교회로 모이고, 왜 많은 성도들이 이름났다는 사역자들을 그토록 높이 받드는 것입니까? 과연 성도들이 얻게 된 구원의 영광이 사랑의 교회, 광림교회, 명성교회, 금란 교회, 온 누리 교회, 여의도교회 등, 대형교회로부터 나온 것입니까? 또한 과연 오늘 성도들의 믿음의 능력과 삶의 힘이 무슨 목사, 무슨 목사등 사역자들로부터 나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을 추락시키는 일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 대형교회가 그 어느 때보다도 많고.........이름난 사역자들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시대가 오늘입니다. 그런데 왜 교회는 제 역할, 성도는 제 사명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왜 교회와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이렇게 작아지고 초라해졌습니까? 오늘날의 성도들의 소속증명서에는 무엇이라 적혀있을까요? 어느 교회에 속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속해야 합니다. 어느 목사 편에 붙들려야 할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 붙들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깎아지는 절벽 같은 장애물을 넘어서며, 삼만의 병거와 바다의 모래와 같은 적진을 파쇄 하는 힘과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그래야만 세상 사람들을 복음의 빛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 고린도 전서 3장 5-7절에서 말씀합니다. “도대체 아볼로가 무엇이고 바울이 무엇입니까? 나나 아볼로나 여러분을 믿도록 하고,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할 일을 맡기셔서 일하는 일꾼에 불과합니다. 나는 씨앗을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인 하나님은 중요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교회자체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으면 안 됩니다. 또한 사역자들을 주님의 자리에 세우면 안 됩니다. 교회건물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사역자들이 주님을 대신하고 있다면 그것은 곧 심각한 우상이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신앙해야 합니다. 오직 십자가의 주님께만 소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오늘 우리는 누구에게 소속되어있습니까?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힘과 능력은 무엇입니까?
* 본문 18절에서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