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주 전 동부역 근처에 있는 fiumei ut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엄청나게 넓더군요. 현지인 교회에 나오시던 할머니의 언니 되는 분이 돌아가셨는데 이분이 우리 현지인 교회에 여러 번 나오셨고 참 겸손한 삶을 사셨기에 소망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갔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미 깨달으셨겠지만 평소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며 충성하던 분의 장례식장을 갈 때면 마음이 그렇게 평안하고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제 마음이 그랬습니다. 장례식장을 가려면 그 넓은 묘지를 지나야만 갈 수 있습니다.
지나가다가 보니1800년경에 태어난 분들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태어난 날짜와 돌아간 날짜들이 비석마다에 다 새겨져 있었습니다. 가족묘가 대부분이었는데 비석들이 참으로 화려했습니다. 생각을 했습니다. 1800년에 태어나서 십년, 이십년, 오십년, 육십년, 칠십년, 이 땅에 집을 짓고 살다가 돌아간 곳은 어딜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마10:28) 영혼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썩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데.... 육체는 여기에 묻혀있는데 영혼들은 어디로 갔을까?
* 여러분! 이 땅의 삶을 살다가 돌아간 분들의 영혼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삶을 통하여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사람들입니다. 이 연약한 몸을 팔아 부활의 영광을 맞이할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부활의 아침을 여셨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가려져있는 비밀입니다.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열어놓으신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리고 판단합니다. “죽으면 그만이지. 부활이 어디 있어? 부활 뒤에 영생이 있다고? 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야.” 하나님은 볼 수 없고 그 분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의 무지한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십니다. 그분은 안 되는 것도 되게 하시고, 이길 수 없는 것도 이기게 하십니다.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사망을 부활로 바꾸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세계요, 이것이 성도들에게 허락하여 주신 믿음의 세계입니다.
* 한국의 지성이라 불리던 이 어령교수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성을 내세우며 하나님을 몰라라 하던 그가 영성 앞에 지성을 꺾고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령교수가 이렇게 하나님께 두 손 들고 나온 계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기적의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 지금은 하늘나라를 소유한 그분의 딸 이민아 목사님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이분에게 수많은 삶의 고난이 밀려왔습니다. 책을 읽다보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그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번엔 자신의 망막이 찢어져서 눈이 보이지 않는 고난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위에 고난이 또 밀려온 것입니다. 게다가 수술을 하려고 해도 망막이 너무 얇아서 수술을 하다가는 더 많이 찢어 질 상태였습니다. 눈이 안보이니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던 중 이 어령교수가 미국에 살던 딸의 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딸이 앞을 볼 수 없어서 더듬으며 걷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가난해지게 되었습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있구나. 이제는 기적이 필요해. 나에게 하나님이 필요하구나.” 그런 마음이 아버지에게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민아 목사님이 ‘이 땅위에 천국’ 이라는 사역을 하시는 조그마한 교회의 목사님의 통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그 교회로 초청을 했습니다. 교회는 조그맣고 초라했습니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도 이십 여명 밖에는 안 되었습니다. 이 어령교수가 그 작은 교회에 일생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리고 엉거주춤 교회 뒤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한숨이 나왔겠지요. 자신의 딸의 처지를 생각하니 저절로 기도가 나왔을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 “하나님! 이곳에 계시다는데 제 음성이 들리나요? 저는 믿겠다는 약속은 못합니다.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우리 딸이 정말 다시 볼 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살아 계시다면 당신은 하나님이시니까 이제부터는 당신에게 복종하겠습니다. 당신이 하라는 일을 하겠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지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의 영광을 보면 믿음의 자리에까지 나아가겠다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딸의 망막치료는 불가능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만져주심이 아니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약 한 달 뒤 이민아 목사님이 어떤 치유집회에 끌려가다시피 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회에 강사로 오신 목사님이 이렇게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망막이 찢어져 눈이 보이지 않는 중년의 어떤 여자 분을 고치실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의 마음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예요” 하고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러자 강사 목사님이 “그 말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완전히 믿어질 때까지 예배당을 도세요.”라고 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왜 보이지도 않는데 돌라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순종하면서 예배실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 약 천 명 정도가 모였는데 그 모든 사람의 눈이 이 광경을 향하여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창피한 마음도 들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믿음으로 한 바퀴 돌고 눈을 떠 보고, 두 바퀴 돌고 눈을 떠 보고, 세 바퀴 돌며 눈을 떠 보았는데 여전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믿음에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계속 돌았습니다. 네 바퀴 돌고 눈을 떠보고, 다섯 바퀴 돌고 눈을 떠보고, 여섯 바퀴를 돌고 눈을 떠 보았습니다. 여전히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습니다. 그랬더니 그제까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강한 빛이 그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강사 목사님의 얼굴이 보이는 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매일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과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제 앞을 보게 된 이민아 목사님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 “응, 지금 몇 신데 전화를 걸었냐? 왜 무슨 일 있냐?” “아빠! 나 눈 나았어요. 눈이 보여요. 그래 어떻게 나았냐? 기도 받고 나았어요.” “그래? 아! 축하한다. 정말 잘 되었다. 너무 기쁘구나. 한데 어떻게 하냐? 큰일 났다.” “아버지 왜요?”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하나님하고 약속을 했거든.” “뭐라고 약속하셨는데요?” “네 눈이 나으면 내가 하나님 일 하겠다고 약속했거든.” “아버지 진짜 그렇게 약속하셨어요?” “고쳐주면 한다고 그랬지.” “ 그런데 너 진짜 나았냐?”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부활의 아침까지 열어 놓으셨습니다. 부활의 아침으로 나아가는 길은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믿음으로 오늘의 삶을 채우면 부활의 영광을 이 땅에서도 체험하게 됩니다.
* 아담 한 사람이 범죄 함으로 인류 전체가 그 죄 값에 따른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 생명이 저주의 죽음으로, 영원한 평화가 아귀다툼과 분열과 탐욕의 전쟁으로, 순결한 사랑이 미움과 살인으로 뒤바뀐 고난입니다. 만일 아담이 피조물 됨의 자기 자신의 위치를 분명하게 인식하여 하나님의 말씀하심과 뜻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담이후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르는 삶, 그리고 계속될 인류의 역사에는 하나님의 생명의 강, 평화의 은혜, 사랑의 복으로 풍요로웠을 것입니다. 그 한 사람, 자기 분수를 모르고 죄악에 넘어진 그 한사람의 영향력은 실로 엄청납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음으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만일 우리가 오늘 에덴동산의 삶을 살던 아담의 자리에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도 아담처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그 무언가에 유혹을 받는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을 할까요? 우리는 이 사실을 밝히 깨달아야 합니다. 나 하나가 넘어지면 인류 전체가......... 나 하나가 넘어지면 한 나라가.......... 나 하나가 넘어지면 한 가정이 힘들어 진다는 사실입니다.
* 최초의 사람 아담이 넘어짐으로 인류 전체가 당해야하는 죄악의 현장, 죽음을 향해 가야만 하는 삶의 자리는 쓰고 아프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해산하는 고통으로부터 시작해서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땀 흘려 일해야만 살 수 있는 고달픈 수고와, 미움과 시기와 분쟁과 살인이 난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셔서 사람들의 자리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치유와 회복, 자유와 구원을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믿음 안에서 그 은혜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셨지만 동시에 우리들과 똑같은 성정을 지닌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모든 연약함에 그대로 노출되셨습니다. 아픔, 슬픔, 절망, 고난, 배고픔,........ 전능하신 그리스도께서 왜 이토록 연약한 모습을 지닌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는가? 그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당신의 몸에 친히 채우시고 완전한 죽음으로 그 모든 것들을 소멸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그것은 둘째 아담예수의 영향력의 실제입니다. 무너진 곳을 보수한 사람! 죽음을 생명으로 바꾼 사람! 모든 미움과 살인을 사랑으로 바꾼 그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실패가 다른 한 사람 예수에 의하여 완전한 승리로 바뀐 것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5:17) 그렇습니다. 나 한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과 계획과 사랑을 향하여 온전하게 세워지면 인류가 바뀝니다. 한 나라가 변화됩니다. 한 교회와 가정이 새로워집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그 한 개인에게 머물지 않습니다.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한 사람입니까? 실패한 첫째 아담이 아니라 십자가의 고난과 고통과 죽음까지 감당하시고 승리하신 예수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위대한 한 사람, 보배로운 한 사람, 아름다운 한 사람, 너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서 자신뿐만 아니라 시대를 짊어지고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는 영광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승리의 아침, 부활의 영광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하신 고민의 터널을 지나야 합니다. 부활의 영광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고통의 밤과 십자가 죽음의 암흑을 통과해야만 빛난 영광,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예배당을 돌고 또 돌고 또 돌아야 선포된 말씀, 광명이 자신에게 성취되는 것입니다.
* 부활절은 매년 맞이하는 연례행사가 아닙니다. 부활절은 그리스도의 부활 속으로 우리의 삶을 투영하는 시간입니다. 내 삶을 그리스도의 부활 속으로 던져 넣는 것입니다. “나는 진정 부활의 아침을 준비하고 있나? 나는 지금 부활의 빛난 영광을 맞이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고민의 터널을 지나야 부활의 영광을 누릴 텐데........ 과연 오늘 나의 고민은 무엇인가? 잠시 잠깐후면 마르고 시들어 버릴 이 땅과 육체를 위한 고민에 빠져서는 안 될 텐데.........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의 손과 발이 되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그리스도를 성취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으로 충만해야 부활의 그 자리 하나님과 함께 하는 나라의 삶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 주님으로 우리 앞에 부활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향하여 고난과 죽음으로 자신을 장사지낸 사람들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