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노라면 하나님의 위대하심, 놀라우심, 기적, 신비, 영광스러움을 발견하며
전율하게 됩니다. 장대하고 거침없는 강의 흐름 같습니다. 성경의 어느 한 곳도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권세 권능이 쏟아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도나우 강이 참 아름답지만 그것과는 전혀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파리의 세느강도, 유프라데 강도, 한강도 아니 세상의 모든 강을 합친다 하여도 성경에서
흐르는 하나님의 거침없는 역사하심의 강줄기는 도무지 당해낼 길이 없습니다. 특별히 창세기를 대할 때면 사람의 언어가 ‘참으로 부족하다. 표현할 길이 없다.’ 하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무에서
유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혼돈을 질서로 바꾸어 가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역동성에 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그 영광의 힘, 그 영광의 능력은 무엇을 통하여 펼쳐지는가?
* 창세기 1장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창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라(창 1:6).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창1:9).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창1:11).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창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을 번성케 하라(창1:20).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창1:24)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1:26).
* 그렇습니다. 창세 이래로 오늘까지 거침없이 흐르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의 역사, 온 우주와 모든
인류가운데 내려진 크고 작은 역사, 그리고 과거,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 받았던 사람들, 현재,
하나님의 위대하신 손에 붙들려 있는 사람들, 그리고 미래, 하나님께 쓰임 받을 사람들은 한 결 같이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따라 이루어 졌고 이루어져 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은 곧 성취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것은 곧 영광의 결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시는 그 곳은 이루어짐의 영광이 나타나는 기적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주님의 명령을 받았다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았다면 그는 그 말씀하심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종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순종이 힘들면 복종하여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마당이 하나님의 기적이, 하나님의 영광이
성취되고 쏟아지는 장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인간의 죄 성은 끝없이 타락의 길로 그 자신을 달려가게 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원수 된
자리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게 합니다. 육체의 날뜀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본래의 그 뜻과 섭리대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오직 평화, 오직 기쁨, 오직 영광이 임하는 에덴의 복의 삶을 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살지 않고 육체가 요구하는 대로,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요일2:16) 이끌려 살다보니 평화는
온데간데없고 불안과 근심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기쁨도 온데간데없고 슬픔과 절망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쏟아지는 신비하고 놀랍고 소망 가득한 영광은 온데간데없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허무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허무와 허기가 우리들의 삶에서 소용돌이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불안과 염려와 근심으로 한숨짓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 떠떠반여 집시마을 가까운 곳에 아주 넓고 높은 언덕이 있습니다. 매년 그곳엔 밀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십년 바라보며 집시마을 사역을 다녔습니다. ‘야! 저 언덕에 언제 한번 올라가 보려나? 언제 저 언덕에 올라서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찬양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곳이 참 멋들어진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지난주 목요일 결심을 했습니다. ‘사역 마치고
오면서 저 언덕에 오르리라.’ 사역을 마치고 드디어 그 언덕을 헤매고 또 헤매다가 오르게 되었습니다. 누렇게 익은 밀이 다 추수된 그 넓디넓은 언덕에 오르니 얼마나 아름답고 멋이 있는지요. ‘하늘과
맞닿은 언덕, 갖가지 모양의 구름, 온 언덕에 누렇게 흐트러져 있는 이삭과 볏짚 그리고 저 멀리 곱게 드러누운 산등성이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아직도 한창 피어나는 해바라기’ 그 아름다움과 멋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수억 원의 돈을 주면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일평생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땀 흘려 일하면 그 멋들어짐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에 무조건 순종하는 그곳만이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거부되지 않는 그곳, 그곳만이 하나님의 소유물들인 은혜와 사랑, 자유와 평화, 소망과 기쁨, 형통함과 부요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는 복 받는 곳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산등성이가 ‘왜 날 여기에 두었어?’ 라고 불평하겠습니까? 구름이 ‘왜 날 이곳으로 보내는 거야!’ 하고 원망하겠습니까? 해바라기가 ‘나 지금 꽃 피우기 싫어. 나중에 필거야’ 라고 거역하겠습니까? 그런데 왜
사람은 그렇게도 원망하고 불평하고 거부하며 사는지 말입니다. 그러니 삶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그러니 인생에 하나님의 멋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허무와 허기가 삶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 치는
것입니다.
* 창세기 6장 13-14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육체로 살면 하나님을 근심하게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한탄하게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하신 바를 거역하고 육체하자는 대로 살면 하나님을 화나게 합니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하나님께서
노아의 시대에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겠다.”(창6:7)라고 까지 말씀하셨겠습니까? 불순종은 진노요, 하나님 말씀에 대한 거역은 재난입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 때 하나님 손에 의해 창조된 사람의 사람됨의 가치와 능력과 복을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 노아는 "방주를 지으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려 120년 동안 가족과 함께 순종으로 나아갔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노아와 그 가족의 행동은 미쳐도 보통 미친 짓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에 쓰겠다고 길이가 150m, 넓이가 25m, 높이가 15m나 되는 방주를 짓는단 말입니까?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신 말씀 앞에 묵묵히 그리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철저히 실행에 옮겼습니다.
정금과 같은 보배롭게 빛나는 순종입니다. 아니! 정금이 노아를 부러워할 것입니다.
창세기 6장 21절에서는 노아의 행함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그렇습니다. 열쇠는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언가 말씀하셨다면 하나도 남김없이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신바가 실행에 옮기기 힘들지라도,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비웃음을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고 욕을 먹을지라도 그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요, 구원이요, 승리요, 은혜요,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알고계십니까? 노아와 그 가족이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신 말씀 앞에 다 준행한 보상이
무엇이었는지 말입니다.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의 구원이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구원이 아닌 새
창조의 시작이요, 새 인류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런 은혜, 이런 영광, 이러한 복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120년 동안 묵묵히 순종하며 충성한 것에 비교되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분의 영광을
얻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에서 말씀합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명하신 대로 실행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립니다. 말씀하신대로 준행하면 그 준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복을 얻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제가 노아와 같기를 바랍니다.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는 복 받을 사람 말입니다.
* 요한복음 5장에는 베데스다 못가에 누워있는 38년 된 병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병으로 인하여
38년 동안 고생하고 있다면 그 삶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38년 동안 병석에 누워있지 아니하고 매일 매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복입니까? 사람이 1년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욕창이 납니다. 온 몸의 근육이 힘을 잃고 제 기능들을 상실합니다. 그런데 무려 38년 동안 누운 채로 있었다면 그 신체적 상태가 어떠했겠습니까? 게다가 그의 영혼의 상태는 또한 어떠했겠습니까? 말라비틀어져 가는 풀처럼 그의 삶에서는 결코 소망을 말 할 수 없습니다. 말라비틀어져가는 풀을 밟아 보신 적 있습니까? 사르르 하고 소리가 나지 않습니까? 이처럼 그의 몸과 영혼에서는 ‘내가 죽어간다. 내가 죽어간다.’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생명이신 분, 말씀이신 분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5:6,9) 태초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루하루 죽어가는 그 생명, 38년 된 병자에게 말씀을 쏟아내셨습니다. 쏟아내신 주의 말씀은 38년 된 병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희망이요, 이미 죽은 지 오랜 것 같은 누워있던 생명으로부터 다시 걷고 뛰는
새 생명이요, 38년 된 자리를 걷어차고 일어서는 권세요, 자신의 존재와 같았던 묵은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권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 그 생명, 그 권세, 그 권능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시며 명하신 말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일어나라, 들어라, 걸어가라,” 하신 말씀을 실행해 옮길 때 거둘 수 있고 취할 수 있는 복이었습니다.
* 38년 된 병자는 주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고 그대로 준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야! 내가 누운 지 38년이나 되었는데 어찌 손과 발을 움직인단 말이야. 근육이 다 말라비틀어진 내가 어찌 일어나서 걸어간다는 말이야. 저 사람은 나를 잘 몰라.’ 그렇게 하지 않고 명하신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가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실행하기 전까지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몸으로 실행하였더니 예비 된 그 복이 자신의 몸에 그대로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아! 행함이 복이어라. 아! 순종함이 영광이어라.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할 수 있는 가난함이 있다면. 아! 오늘 우리에게 명하신 그대로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바로 그 복을 누릴 텐데........... 바로 그 영광을 볼 텐데............. 요한복음 14장 2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 현재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감동에 의해 기록된 66권의 성경말씀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말씀의 단에서 설교하는 목사님을 통해서도 말씀을 내려 주시고, 기도할 때에도 성령님의 감동에 의해 말씀을 주시고 혹은 신실한
믿음의 동료들을 통하여 말씀을 주십니다. 때를 따라 각 사람의 심령과 그 영혼과 그 귀에 하늘로부터 말씀을 던져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겐 삶을 고치는 일에 대하여, 어떤 사람에게 행위를 돌이키는 것에 대하여, 또 어떤 사람에겐 선한 삶을 실천하는 것에 대하여, 또 어떤 사람에겐 위로와 소망과 고침에
대하여, 또 어떤 사람에겐 어려움 중에 승리하는 일에 대하여 말씀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듣는 자의 귀요, 순종하는 자의 마음입니다. ‘아! 오늘 우리에게 주님으로부터 쏟아지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면. 아! 오늘 우리에게 들려진 말씀을 그대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 이 시대의 노아들이여! 쏟아진 말씀대로 준행하십시오. 예비 된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아브라함들이여! 들은 대로 행하십시오. 복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이 시대의 야곱이여! 들은 바를 외면하지 말고 즉시 실행하십시오. 그 이름이 바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베드로여! 부어져 내린 말씀을 그대로 의지하여 실천하십시오. 그물이 찢어지는 것 같은 만선의 기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he will be blessed in what he does.”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