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 오순절 복음(Pentecostal Evangel) 이라는 기독교 잡지에 실린 내용입니다. 사무엘 S.스컬이라는 사람이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애리조나 사막의 자신의 농장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평화롭기만 하던 어는 날밤, 갑자가 비와 우박과 강풍을 동반한 엄청난 사막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밤새 계속되었던 공포의 시간이 흘러가고 날이 밝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엘은 사막 폭풍의 피해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알아보려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지에 대한 생각 때문에 극심한 두려움이 몰려 왔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문을 열고 나가보니 농장은 우박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튼튼하던 트럭은 헝겊처럼 찢겨져서 땅에 곤두박질쳐 있었습니다. 집의 지붕은 반이나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제법 튼튼하게 지었던 닭장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죽은 닭들이 여기 저기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망연자실한 채 넋을 놓고 미래를 걱정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다 무너져 내려 틈도 없어 보였던 잔해 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수탉 한 마리가 좁디좁은 틈을 헤치며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수탉은 겨우 밖으로 나오는가 싶더니 계속해서 잔해 더미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더미의 가장 높은 판자위에 올라섰습니다. 그 늙은 수탉의 몸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고 깃털도 대부분 빠져 버리고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쪽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오르자 수탉은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날개를 퍼득거리며 도도하게 목을 세운 채 지난 아침처럼 울기 시작했습니다.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사막의 폭풍 같은 인생의 환란 속에서도 자신의 꿈과 비전을 향해 여전히 일어서며 그리고 사명을 성취하고자하는 열망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견고한 믿음은 인생의 그 어떤 풍랑 앞에서도 자신의 사명이었던 아침을 알리는 소리를 질러댄 그 수탉처럼 꺾이지 않는 소망으로 서게 합니다. 또한 그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소망은 꿈과 비전을 이루는 힘과 능력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이루고 싶은 꿈과 비전, 성취해야할 삶의 사명이 있다면 하나님께 대한 견고한 믿음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제이기 때문입니다.(히11:1) 믿음은 우리들의 꿈과 비전과 사명을 결실하게 하며 삶의 사명을 성취케 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히 11:6) 굳건한 믿음은 의로움을 얻을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꿈과 비전이 있다면 믿음으로 충만!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싶다면 그 역시도 믿음으로 충만, 영광의 그 분께 의로움을 얻고 싶다면 그 역시도 믿음으로 충만하여야 합니다. 믿음은 소망으로 소망은 현실을 이겨내는 힘으로 역사합니다.
*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주시겠다는 꿈과 비전을 받았습니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그토록 원하던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꿈과 비전은 사실상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했습니다. 아들을 얻기에는 자신도 늙었을 뿐만 아니라 사라의 몸도 그럴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화중지병(畵中之餠),그림의 떡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이 결코 약하여 지지 않았습니다. 바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자신에게 펼쳐질 꿈과 비전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 졌습니다. 약속을 주신 분, 꿈과 비전을 보여주신 분은 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진은 무려 25년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25년은 인내와 소망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 믿음의 힘, 그 신뢰의 능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아브라함은 이렇게 생각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셨지? 나와 사라의 나이를 생각하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면? 말씀 한마디로 빛과 어두움을 나누시고 바다와 땅과 식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라면? 단지 말씀 한마디로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라면 그리고 이런 보잘 것 없는 흙으로 아담과 하와를 친히 빚으시고 사람으로 생령이 되게 하신 하나님이시라면........? 그렇지! 불가능할 것이 전혀 없으시지.”
오늘 본문 21절에서 말씀합니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확신하였다.’하는 것은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질까? 안 될까? 의심하며 잰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줄로 여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제부터 믿어볼까?’ 하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지 만물의 근원을 통찰한 지식에 근거한 믿음이었고 인간의 한계 밖에서 역사하시는 전능자에 대한 자기 부정에서부터 이루어진 믿음이었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믿음은 맹목적이거나 단순무지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조화, 우주 만물의 정연한 질서와 운행의 능력의 근거들을 통찰한데서부터 전능자에 대한 믿음이 터져 나옵니다. 또한 견고한 믿음은 자기 부정, 즉 자신의 한계성을 깨달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삼라만상을 둘러보십시오. 자연의 조화를 밝히 깨달아 보십시오. 전능자를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무능함과 무지와 연약함을 헤아려보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행진이 시작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충만하지 못한 것은 무지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없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소유물들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 혹시 땅콩을 이용하여 어떤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혹 생각해보셨습니까? 땅콩 잼, 땅콩스프, 인조 닭고기, 샐러드, 아이스크림, 과자, 마아가린, 비누, 기름, 버터, 인조 밀가루, 잉크, 물감, 구두약, 샴푸, 화장품, 의약품, 전기 절연 판, 인조 대리석.......... 셀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땅콩을 이용하여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연구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조지워싱턴 카버 박사의 별명은 땅콩 박사입니다. 그는 1860년 경, 태어날 때는 자신의 생년월일조차 모르는 미천한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흑인 노예는 사람 취급을 받기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게다가 태어 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부모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그의 어머니의 주인 부부가 그를 거두어 길러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고난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1943년 삶을 마칠 때는 흑인과 백인을 총망라하여 전 미국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미국 최초의 위대한 흑인, 미국 제1의 농학자, 과학자, 계몽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성경에 나와 있지요.'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3:6)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가 충만했던 사람이었습니다.
* 미국 남부 지방은 한때 면화 재배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면화는 땅의 질소를 빼앗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면화 재배가 성하는 만큼 비옥했던 땅은 황폐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미국 남부 지역의 모든 땅이 질소를 잃은 못 쓰는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곧 미국 경제 자체의 큰 위기였습니다. 바로 그때,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가 질소를 잃은 황폐한 땅에 땅콩을 심으면 땅콩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땅콩이 땅의 질소를 공급해주어 황폐해진 땅이 다시 비옥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제안에 따라 미국 남부는 거대한 땅콩 농장이 되었습니다.
땅콩수확도 풍년이었고 땅도 비옥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농장마다 거둬들인 거대한 양의 땅콩을 소화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농장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땅콩은 근심과 시름덩어리였습니다. 땅콩 심기를 권유했던 조지워싱턴 카버로서는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원망이 그에게 쏟아졌으니까요. 그러나 카버 박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행진을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전기에는 당시의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마음이 괴로워서 10월 어느 날 새벽, 해뜨기 전에 산속으로 들어가서 거닐다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창조주시여! 당신은 무엇을 하시려고 이 우주를 창조하셨나이까?’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에게 ‘너는 너의 작은 소견으로 너무 큰 것을 알려하지 말고 네게 알맞은 것을 물어 보아라.’ 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그렇다면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시려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라고 다시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너는 아직도 네가 감당치 못할 큰 것을 묻고 있구나. 그런 쓸데없는 것은 묻지 말고 네 마음속으로 진정 원하고 있는 바로 그것을 말하여 보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엄숙해 졌습니다. 한참 만에 나는 마지막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무엇을 하시려고 땅콩을 심게 하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옳지! 이제 됐다. 너는 땅콩을 한줌 들고 실험실로 들어가서 연구를 계속하여라.’ 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의 선포를 받은 카버 박사는 그 길로 연구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밤낮 가리지 않고 땅콩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땅콩은 하나님께서 카버박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하시는 하나님의 꿈이요, 비전이었고, 뜻이었습니다. 피 눈물 나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 힘든 과정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너는 땅콩을 한줌 들고 실험실로 들어가 연구를 계속하여라.’ 하신 응답의 약속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카버 박사는 땅콩을 이용하여 150가지의 음식과 300여 가지의 실용품을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그의 승리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향한 믿음과 신뢰의 결실이었습니다.
* 오늘본문23-24절에서 말씀합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에게도 놀라운 은혜의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예수그리스도요 그 증표는 십자가입니다. 믿음과 그에 따른 하나님의 복은 아브라함에게 허락된 것이 아닌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에게도 보장된 약속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꿈과 비전 그리고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신뢰하십시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주신 꿈과 비전의 성취를 향하여 여전히 나아가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죽지 않는 한, 그 분의 십자가가 무너지지 않는 한, 반드시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