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우리들의 삶에서 예수님은 과연 누구입니까? 남편, 아내, 자녀보다도 가깝습니까? 직장이나 재산이나 혹은 그 밖의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절대존재하시도록 우리의 신앙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들의 인생에 이보다 앞서고, 이보다 소중한 일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 죽겠고.........” 이 말씀은 당시 하나님에 관한한 전문가라는 바리새인 서기관 그리고 제사장들을 향한 주님의 질책의 말씀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하게 여겼던 백성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깨달았습니다.
대 반전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결코 수월하지 않은 제사를 드리는 형식에는 참으로 밝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사의 형식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을 밝히 볼 수 있고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영성에는 무지했습니다. 영성 없는 제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제사장들에게 시므온과 같은(눅2:25-36)빼어난 영성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더라면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던 시므온처럼 그들에게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은총이 임하였을 텐데 말입니다. 현란한 형식은 있었으나 빛나는 영성이 없었기에 제사장들은 그 거룩한 예복을 입고서도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보지 못하는 암흑으로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운데 새로운 예수의 모습으로 오신다면 지금의 영성으로 과연 그 분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아! 예수님께서 그 어떠한 모습으로 오시든지 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영성이 있어야 할 텐데!
* 바리새인들의 하나님을 향한 외적으로 드러난 열심은 과연 칭찬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십일조를 드리고, 금식을 행하고, 정기적으로 드린 기도 생활은 결코 순결하지 못했습니다. 외적인 열심은 있었지만 내적인 열심인 의와 인과 신 즉, 의로움과 정의와 믿음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의와 인과 신을 저버린 하나님사랑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바리새인들에게 안나와 같은 순결한 열심히(눅2:37)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참으로 그랬더라면 안나 처럼 바리새인들 역시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메시아로 온 삶을 다하여 증언했을 것입니다. 아! 의로움과 정의와 믿음을 저버린 껍데기 열심이여!
* 서기관들의 성경연구와 가르침은 탁월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식과 교훈에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능력이 없었습니다.(마7:29)하나님의 감동과 계시가 그들의 지식과 교훈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감동과 계시가 없는 성경에 대한 뛰어난 지식과 교훈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기자랑, 말장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서기관들에게 세례요한과 같은 그리스도를 밝히 알아볼 수 있는 하나님의 감동의 힘과 계시의 능력이 충만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주님의 행하심과 가르침의 권세에 대적하지 않고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눅20:2절) 세례요한처럼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었을 텐데 말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요1:27) 하나님의 감동과 계시의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지식과 교훈이 되었더니 오히려 그것이 그들의 영혼을 삼킨 것입니다. 진실로 성경을 알았다면, 진실로 하나님을 연구했다면 예수님을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깨달아야 했습니다. 아! 하나님의 감동과 계시의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영혼이여!
*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진실로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이 형식에는 밝은데 영성에는 무지하고, 행위는 있는데 의로움과 정의와 믿음은 온데간데없고, 성경에 대한 지식은 있는데 하나님의 감동과 계시의 기름부음을 받지 못하였다면 우리 역시도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제사장들처럼 되고야 말 것입니다. 들려진 줄 알았는데 떨어질 사람, 복을 받을 사람인줄 알았는데 저주를 받을 사람, 승리할 사람인줄 알았는데 실패할 사람, 구원받을 줄 알았는데 멸망당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목전에 두고 보면서도 그리스도로 깨닫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완전히 고백하지 못하는 어두운 영혼 말이지요. ‘헛된 믿음’ 그것을 말함입니다.
* 얼마 전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서 3.200억 원을 들여 지은 교량이 개통 된지 불과 9개월 만에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다리 위에 있던 대형 화물차 4대가 추락해 3명이 죽고 5명이 다쳤습니다.
사진을 보니까 3,200억 원을 들여서 세웠다는 다리가 엿가락처럼 휘어있었습니다. 이것이 말이나 됩니까? 다리를 건설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안전하게, 편리하게, 신속하게 이동하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다리의 모양은 갖추었는데 다리가 지니고 있어야할 견고함과 안전성이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무용지물이 아니라 재난과 사고만 가져다주는 해로운 것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내용이 없는 형식으로만 살면, 알맹이 없는 껍질로만 살면, 삶이 그리스도로 고백되지 않은 신앙으로 살면 그 마지막은 심판인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23:27-28)
* 오늘 우리들에게도 신앙의 모든 형식들이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교회도 있고 성경도 있습니다. 예배도 있고 열심도 있습니다. 충성도 있고 헌신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형식이 빼어날지라도 그것이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쉽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복을 받기 위함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근심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어떤 사람은 자식이 잘 되는 것을 바라서, 또 어떤 사람은 사업이 형통하기를 바라서,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싶어서 교회에 나옵니다. 이러한 소원들이 나쁘다거나 악하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소망입니다. 복 있고, 형통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것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그러한 은혜와 복을 풍성히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인간적인 복락의 추구에 앞서 먼저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온전히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요,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신앙생활에 경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앎과 깨달음의 바탕이 없이 세상의 복락만 추구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그는 그리스도 없는 복만을 추구하다가 그 죄에서 구속함을 얻지 못하는 멸망에 빠지게 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제사장들의 실수가 무엇이었습니까? 형식은 있었지만 그 형식의 진짜 핵심인 그리스도를 놓쳤다는 것에 있습니다. 빛나는 행위는 있었지만 그 행위의 목적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고 자신 곧 세상을 향한 영광 추구에 있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과 우리들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 이란에 있는 테헤란 왕궁에 가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자이크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모자이크는 벽에서는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반사되어 나옵니다. 황홀한 빛이 이 모자이크 작품에서 마구 비춰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왕궁을 처음 디자인할 때 건축가는 벽에 큰 거울을 붙이려고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파리에서 주문해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상자가 도착하여 열어 보았더니 거울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던 것입니다. 파리에서 테헤란까지 수송을 담당한 책임자는 왕궁의 건축가에게 정중히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화를 낼 줄 알았던 건축가는 뜻밖에도 깨진 거울 조각을 아주 작게 부수어 일일이 벽에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내어다 버릴 수밖에 없었던 산산 조각났던 거울은 찬란한 은빛을 반짝이는 모자이크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통 거울과는 전혀 비교할 수없는 새 작품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자이크 작품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본성은 죄악으로 산산조각 난 존재들입니다. 사망의 암흑에 거하여 살 수 밖에 없었던 존재들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그런데 이렇게 산산 조각나버린 진노 받은 인생위에 그리스도로 제련되지 않은 세상의 복락을 올려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허랑방탕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천금을 쥐어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격이 갖추어 지지 않은 사람에게 명예를 쥐어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욱 악으로 치닫게 될 뿐이며, 더욱 썩은 인생의 악취만 풍기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러분! 오늘 우리에게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구원과 영생을 이루어놓으신 그리스도 예수입니까? 아니면 삶의 행복과 부요함을 가져다주는 도구화된 그리스도입니까?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아니면 그분을 이용합니까? 우리의 신앙에서, 삶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면 우리역시도 주님께 책망 받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제사장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그 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구원과 영생을 이루신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구원과 영생이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없는 최고의 것입니다. 이것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믿음위에 테헤란왕궁의 모자이크보다도 더 빛난 작품을 여러분의 삶에서 세우려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