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믿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이름처럼 예배도 잘 드리고, 찬송도 잘하고, 기도도 잘하고, 헌금도 잘하고, 교회 일도 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도의 '전' 자만 들어도 딱 질색이었습니다. 그런데 큰 믿음이에게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과 병원에 입원한 교인을 심방하러 갔는데, 목사님의 기도와 위로가 끝나자마자 옆 병실에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문 밖에 서서 듣자니까 "야! 이 돈 꾼아, 꼭 예수 믿어. 예수 믿어야 돼!" 하며 간절히 전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 자만 들어도 질색하던 큰 믿음이가 말입니다. 그러자 골골대던 돈 꾼이가 "야, 예수는 믿어서 뭐하냐? 이제 곧 죽을 텐데." 그러자 큰 믿음이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곧 죽을지도 모르니까 넌 꼭 예수 믿어야 돼! 죽으면 천당 가야 되잖아!" 하며 간절하게 거듭 전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믿겠다’는 대답을 못 듣고 나온 큰 믿음이에게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아니! 어쩜 그렇게 전도를 잘 하세요?" 그러자 큰 믿음이가 한 말이 걸작입니다. "천당 가서 빚 받아야죠!"
* 예수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그림은 미술가의 정체이고 연주는 음악가의 실재입니다. 또한 글은 작가의 본질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정체와 본질은 빛입니다. 그리고 빛은 생명입니다. 따라서 빛과 생명은 그리스도의 명패(名牌)와 같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의 영혼과 삶에서는 빛의 힘과 생명의 능력으로 충만합니다.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은 제한되거나 굴절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빛’이라는 단어가 밝히듯이 제한이 없는 생명이요 선명한 빛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흑암의 한 가운데 살았던 사람일지라도 주님께 나오면 새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그 증인입니다. 세리와 창기들도 그러했습니다.)
빛은 어두움의 반대 용어로 쓰여 질 수 없습니다. 어두움은 빛에 대하여 전혀 항거할 수 없는 무기력이기 때문입니다. 칡흑같은 어두움이 짙게 내린 공간에 아주 미세한 빛만 들어와도 어두움은 더 이상 어두움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사람, 즉 어두움의 영인 사단의 지배 아래 살다가 그리스도의 빛으로 나아와 변화된 사람들의 삶을 보셨습니까?
봄이 오면 긴 겨울동안 죽은 것처럼 보였던 나무들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속에선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생명의 생명 됨의 가치와 능력이 끊임없이 분출합니다. 영혼의 빛이요, 생명의 능력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본질인 빛과 실재이신 생명으로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약하나 그리스도의 사람은 강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나는 누구입니까? 정말 영혼의 빛이요 생명의 능력이신 그리스도께 통치 받는 사람 맞습니까?
* 루비 켄드릭(Kendrik, Ruby Rachel)선교사는 1905년 켄사스 성경학교를 졸업한 후, 1907년 9월 텍사스 남 감리회 엡워쓰(Epworth) 청년부의 후원으로 처음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그녀가 조선에 머무르며 사역한 기간은 1년이 채 못 되었습니다. 황해도 개성에서 여학교 교사로 사역하다 급성맹장염으로 1908년 8월15일 25세의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처녀의 몸으로 그 후미진 조선 땅에 들어와서 오래도록 사역하지도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 말입니다. 양화진에 있는 그녀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는데 그 비문은 그녀가 생존당시 미국 남 감리회 소속 텍사스 엡윗 청년회에 보낸 편지에 쓴 내용입니다.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겠습니다.”'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 켄드릭 선교사의 갑작스런 죽음은 가족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안겨주었지만 그것은 슬픔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빛의 복음을 위해 헌신하게 하는 씨앗이 되었던 것입니다. 텍사스 웹윗 청년 20명이 조선의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힌 생명은 죽어도 결코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살게 되고 그 죽음으로 더 많이 살게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4-25) 루비 레이첼 켄드릭선교사가 자신의 부모님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가 큰 감동을 줍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이곳 조선 땅에 오기 전, 집 뜰에 심었던 꽃들이 활짝 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루 종일 집 생각만 했습니다. 욕심쟁이 수지가 그 씨앗을 받아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니 너무나 대견스럽군요. 아마 내년 봄이 되면 온통 우리 동네는 내가심은 노란 꽃으로 덮여있겠군요. 아버지 어머니, 이 곳 조선 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습니다.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 년이 지나면 이곳은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복음을 듣기 위해 20km를 맨발로 걸어오는 어린 아이들을 보았을 때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오히려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예수님을 영접한지 일주일도 안 되는 서너 명이 끌려가 순교했고, 토마스 선교사와 제임스 선교사도 순교했습니다. 선교본부에서도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그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아직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순교를 할 작정인가 봅니다.
오늘 밤은 유난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외국인을 죽이고 기독교를 증오한다는 소문 때문에 부두에서 저를 끝까지 말리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제 눈앞에 어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 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뒤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으로 이제 내년이면 온 동네가 꽃으로 가득하겠지요.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 내겠지요. 저는 이곳에서 작은 씨앗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씨앗이 되어 이 땅에 묻히게 되었을 때 아마 하나님의 시간이 되면, 조선 땅에는 많은 꽃들이 피고, 그들도 여러 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조선을 향하는 저의 열정이 아니라,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복음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는 빛이기에 복음을 받은 사람은 절대 숨어있거나 은둔해 있을 수 없습니다. 빛의 능력인 어두움을 몰아내고 빛의 역할인 생명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으로 헌신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입니까? 빛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사람! 맞습니까?
* 인간의 힘과 능력은 언제나 상대적이요, 제한적입니다. 육체와 환경, 그리고 상황에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힘과 능력은 모든 것에 초월하여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충만한 성도의 삶은 보통 사람 속에서 살아가지만 비범한 일들을 열매 맺습니다. ‘저 사람의 삶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어떻게 저렇게 행할 수 있을까? 사람의 힘으로는 못하지!’ 그리스도의 초월케 하는 힘과 능력이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보통을 특별함으로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답은 명쾌합니다. 자신 안에 갇혀 육체와 환경 그리고 상황에 늘 지배당하는 승리를 이룰 수 없는 사람, 흑암의 사람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포기하고 비범함과 특별함의 삶으로 가꾸시는 빛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 그 아무것도 행할 수 없는 자신을 내어 드릴 것인가? ‘주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나를 받으소서.’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참으로 놀랍고 신비한 은혜와 복이 가득담긴 성도를 향한 그리스도의 보장입니다.
생명의 빛이 임하는 곳은 깨어납니다. 움직입니다. 성장합니다. 생명의 빛이 비취는 곳은 번성하며 놀랍게 결실합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는 주님의 약속은 바로 그 생명의 빛의 가치와 능력을 성도의 삶에서 일으키시겠다는 보장입니다.
*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그 꿈을 통해 깨달은 비전으로 인하여 형제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을 성취하기 위한 길로 나아가는 삶은 대체적으로 미움과 시기, 질투와 제거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그 뒤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역사하십니다. 요셉의 삶도 결코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물 없는 깊은 웅덩이에 던져지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노예상의 손에 팔리고,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참을 수 없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까지 떨어졌습니다.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암흑의 도전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암흑의 주인인 사단에게 끌려 사는 세상 사람들은 포기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결코 그 암흑의 끈질기고 거대한 도전에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어두움 가운데 있었던 자신의 조상들을 믿음의 빛으로 이끄신 하나님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낙심과 절망의 파도가 삼킬 듯이 넘실대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30세 이립의 나이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삶의 꿈, 인생의 비전은 결코 쉽게 이룰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꿈과 비전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꿈은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인생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단 한번뿐인 인생살이에서 성취하고 싶은 소원은 무엇입니까? 꿈을 막아서려는 장애물, 비전을 꺾으려는 암흑, 소원을 뭉개려는 사단의 세력을 과연 무슨 힘과 능력으로 이기고 마침내 승리하시겠습니까? 그 어떤 상항에서도 굴절되지 않는 빛이신 그리스도! 생명으로 생명 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고난을 믿음으로 집어 삼키도록 힘을 주시며, 실패를 소망의 빛으로 소멸시켜 버리도록 능력을 주시며, 눈물을 인내로 승화시켜가는 존재가 되도록 도와주셔서 마침내 삶의 꿈과 인생의 비전을 성취하게 하십니다.
* 시편 46편 1-3절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 놀던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절망가운데 빠졌을지라도 그것에 침잠되지 않고 또다시 일어서는 힘은 절대희망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와 함께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사람은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유일의 희망이십니다. 희망은 빛 속에 있으며 빛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