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본문8절에서 말씀합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로 오늘의 말씀을 증언하려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유황불이 비오듯하는 형벌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입니다. 그 도시에 살던 모든 사람들, 그들이 사용하던 모든 건물, 그들의 자랑이었던 모든 가축, 그들이 아껴두었던 모든 재산이 한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정의, 절대 완전합니다. 그래서 그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의의 사람은 의로움의 은혜와 복을 받고 악의 사람은 그 악에 대한 열매인 고난과 형벌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래 소돔과 고모라는 사람들이 살기에 참 좋은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 땅을 바라보면서 감탄했습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구나.”(창 13:10) 고대 히브리 사람들은 가장 큰 것, 가장 좋은 것,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풍성한 것을 표현할 때 그 앞에 여호와의 이름을 붙여서 사용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이 얼마나 좋은 곳으로 보였으면 “여호와의 동산 같다.”라고 표현 했겠습니까? 온 땅에 물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땅은 비옥하여 아름다운 소산으로 풍성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삶은 풍요했고 여유가 넘쳤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과 저의 삶이 여호와의 동산 같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저의 삶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저 사람은 탐스러운 하나님의 사람이다. 저 사람은 복된 하나님의 사람이다.’ 라고 하며 부러워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풍요로움과 기름짐과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존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그런데 우리들이 심오하게 깨달아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롯의 어두운 면입니다. 롯의 약점입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바라보면서 “여호와의 동산 같구나.” 라는 감탄과 함께 그와는 도무지 함께 어울릴 수 없는 표현을 하였습니다. “애굽 땅 같구나.”(창 13:10) 여호와의 동산과 애굽 땅은 정 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동산은 하나님의 통치와 은혜, 그 분의 사랑과 은총, 평안과 기쁨을 의미하는 표현이지만 애굽 땅이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사람 살기에는 평안한 곳이었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우상의 나라요, 혈육이 판치는 곳이요, 죄악이 넘실대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향하여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 같다.” 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서 피부 적으로 와 닿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롯이 ‘하나님께 온전하지 못했구나. 그의 영성이 세속화 되었구나. 롯은 가변적인 신앙인이었구나. 이럴 때는 하나님, 저럴 때는 세상을 쫓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입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베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6:14-16) 아! 가련한 영성이여! 아 불쌍한 믿음이여! 그대의 운명이 어디로 가는가?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여러분과 저의 삶이 그 어떤 자리에서도 애굽의 느낌, 애굽의 향기가 나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의 영성이 롯과 비슷해서도 안되겠습니다. 선과 악, 하나님의 것과 세상의 것, 진리와 거짓을 분명하게 가름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소돔과 고모라는 오늘날로 보면 뉴욕과 파리와 로마와 프랑크푸르트와 동경과 서울로 비교할 수 있는 곳입니다. 상업이 활발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돈 주머니가 두둑했습니다. 첨단 기술들이 마구 쏟아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각 가정마다 오늘날의 벽걸이 텔레비전, 벽걸이 세탁기, 컴퓨터, I pod 같은 당시로서는 가장 탐내고 자랑할 만한 것들을 골고루 갖추어 재미나게 살았을 것입니다. 또한 소돔과 고모라는 유행이 파도치듯 넘실대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거리마다 오늘날의 공항에서 명품을 사겠다고 넋을 잃은 사람들처럼 유행을 쫓아 움직이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아! 풍요로운 곳이여! 아! 사람들이 살기에 안락한 곳이여! 아! 육체의 즐거움이 넘치는 곳이여! 그대의 운명은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풍요로운 자리에 하나님의 통치가 사라진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것입니다. ‘하나님 필요 없어요. 예배를 꼭 가야합니까? 마음으로 믿으면 되지요.’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 살기에 안락한 그곳, 육체의 즐거움이 넘치는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자리를 옮기신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거부하는 구나. 촛대를 옮겨야겠어.’ 그러니 그곳은 죽음의 도시, 멸망할 수밖에 없는 도시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먹고 살기가 좋은 곳일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이 존재해 계시지 않으면 그곳은 절대 살 만한 곳이 아닙니다. 아무리 비옥하고 풍성한 수확물이 넘치고 상업이 발달한 곳일지라도 그곳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곳이면 그곳은 죽음의 도시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삶의 자리는 어떤 곳입니까? 여러분이 꿈꾸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그곳은 하나님이 임재 하는 곳이요 그 나라는 성령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풍요롭고 기름지고 여유 있는 삶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난하고 실패하고 눈물 흘리는 삶도 문제가 아닙니다. 진정한 문제! 그것은 지금 숨 쉬고 살아가는 그 자리, 지금 존재하고 있는 그 자리, 지금 행하고 있는 그 자리,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신가? 아닌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영의 다스림을 받는 곳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풍요롭고 기름지고 성공하는 삶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면 그 풍요로움, 그 기름짐, 그 성공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모두가 풍요롭고 기름지고 성공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누구보다도 소망하고 있습니다. 꼭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만일 풍요롭고 기름지고 성공하는 삶의 자리인데 그곳이 하나님의 영에 의한 다스림이 없는 곳이라면 그곳은 바로 지옥이 됩니다. 또한 가난하고 병들고 실패한 것 같은 곳에 하나님이 존재해 계시면 그곳은 소망과 인내, 믿음과 용기가 만발한 곳이 됩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가난해도 부자보다 더 멋있게 살잖아요. 실패해도 또 일어서잖아요. 그러나 가난하고 병들고 실패한 곳인데도 하나님을 초청하지 않으면 그곳은 육체의 쓴 뿌리들이 마구 터져나는 지옥이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세상과 함께 살고, 육체의 영의 다스림을 받는 삶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하나님의 영의 다스림을 받는 삶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오늘 본문에서 말씀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3) 진리의 영인 성령,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그 무엇보다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동산과 애굽 땅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눈을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행하여야할 일과 행하지 말아야할 일을 가려 주실 것입니다. 육체의 사람은 들의 꽃이나 풀과 같이 잠시 잠깐을 삽니다. 그가 쥐고 있는 모든 영화도 다 마르고 시들고 사라집니다. 육체의 사람들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 육체가 그들의 영혼을 삼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육체의 사람과는 전혀 다릅니다. 물론 성령의 사람들도 육체의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잠시 잠깐 삽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려집니다. 성령의 사람은 썩을 몸으로 썩지 않는 일을 위해 살고 죽을 몸으로 죽지 않을 일을 위하여 그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살과 피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썩을 것은 썩지 않을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고전 15:50)" 소돔과 고모라가 성령을 거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