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십인의 제자파송과 그들이 거둔 놀라운 기쁨: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절대적 운명: 내 이름이 하늘에 기록됨
❋ 본문 11-12절: 하나님의 권능을 누가 감히 측량할 수 있을까? 크고 흰 보좌라 불리는 하나님의 권능 앞에 땅과 하늘조차도 자신들의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그러하기에 우리 사람들은 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두려워함 없이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크고 높은 영광도 들의 꽃과 같습니다. - 흙 존재인 자신을 알아 하나님의 말씀 길을 따라 살면 그 삶이 얼마나 복스럽겠는가? ❋[시]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주님과 밀착해서 살아가며 시절을 따라 은혜주시는 하나님아버지를 풍성히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의 설명할 수 없는 그 권능의 흰 보좌 앞에 책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책도 펼쳐져 있습니다. 그 책은 구원받을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입니다. - 하나님의 심판의 흰 보좌 앞에 놓인 책들에 관하여 다니엘도 세밀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 [단]7:9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단]7: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그 책들이란 생명책 외에 오늘 본문에서 기록하는 것처럼 행위를 기록한 책 혹은 기념 책입니다. (말 3:16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의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 하셨느니라") - 생명책과 기념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빛나게 새겨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12절: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사람은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둡니다. 감자를 심으면 감자를 거둡니다. 감자를 심었는데 콩을 거두는 법은 없습니다. 악한 것을 심고 어찌 선한 것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어찌 복스럽기를 바라며, 예수 없이 살면서 어찌 영생 영광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한 치의 오류도 허용할 수 없는 공의이며 감히 누구도 반기를 들 수없는 거룩함입니다. 그래서 흰 보좌의 심판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 분 앞에 서서 각각 그 몸으로 행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 그래서 우리의 몸을 우리가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내 몸을 주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께서 눈을 감아 버리십니다. 오늘 우리는 내가 나를 주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께서 나를 주장하시도록 내어드렸습니까?
❋ 사도바울이 에베소교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고별설교-[행]20: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행]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복음에 붙들리면 자기 생명조차도 기꺼이 드린다. 그런데 오늘날의 성도들은 어떠한가? 목숨 걸고 믿음의 삶을 사는 성도들이 몇이나 있을까? 옛적 교회의 성도들과 오늘날 성도들의 차이점은? - ❋교회의 사명은 무엇인지, 성도는 어떤 존재 여야 하는지, 성경은 뭔지도 모른 채 교회만 왔다 갔다 한다- 주님은 뭐라 하실까?)
❋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하나님의 흰 보좌의 심판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큰 자나 작은 자나- 성도나 불신자나, 가난한 자나 부자나, 여자나 남자나, 왕이나 하인이나 다 그 앞에 서게 됩니다. 그날 그 앞에 서게 될 때 얼마나 두렵고 떨리겠습니까? (❋ 임사체험: 'Near Death Experience' 한 사람들의 증언) 그러니까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예수복음 때문에 핍박받고 고난당했던 사람들에게는 잔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거부하고 세상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던 사람들은 이를 갈며 슬피 울며 통곡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 [마]22: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마]22: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마]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 인생살이의 하루하루가 모두 숙제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것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어느 것보다 절대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까?’ 하는 것입니다. - 이 문제를 품고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 본문 13-15절: 사람들은 그가 어디에서 죽었든지- 바다에서나 산에서나 병원에서나 교통사고로나- 또한 어떤 무덤에 묻히게 되었는지- 돌무덤이든, 평토장한 무덤이든, 납골당에 묻혔든 그들 모두는 부활하게 됩니다. 심지어 음부라 불리는 하데스의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도 부활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예외 없는 운명입니다. [계]20: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세상 모든 사람은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삶은 선택의 기회입니다. 아담과 하와 앞에 놓여있던 선악과처럼. - 내 삶이 아닌 주님의 삶을 살아낼 기회,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갈 선택의 기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이요 그 삶의 결국은 영생영광이다. -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이 영광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 본문 14-15절: [계]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망이라는 인간의 가장 큰 원수도, 하데스라는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불 못은 둘째 사망 곧 영원한 형벌이 있는 곳입니다. 둘째 사망을 받을 자 곧 영원한 불 못의 형벌에 던져질 자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없는 자들입니다. 불 못에 던져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사도요한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 끔직한 형벌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 ❋(1541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단테의 신곡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391명이 그려져 있음)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 이미 어린양의 혼인잔치 안에 들어오신 성도여러분! 이젠 그 잔치의 영광을 영원히 누릴 택함을 받을 자의 삶을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누구나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주님의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증거물을 삶으로 드러내시다가 들림 받는 복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