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34-36절: [마]22: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마]22: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마]22: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님을 향한 종교주의 자들의 올무 걸기는 끝이 없다. 권위의 문제로, 세금문제로, 부활의 문제로....... 그렇게 된통 당했으면 그만 둘 법도 한데 그들이 그렇게도 끈질기게 예수님을 넘어뜨리려했던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 기득권유지, 세상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들만 모르고 다 아는 사실이었다. - 이 땅에 것에 욕심 부리면 진리가 보이지도 않는다. 설령 진리를 본다할지라도 그 진리대로 살수 없음을 우리는 그 옛적의 종교주의 자들을 통해서 분명하게 보게 된다. - 우리가 세상에 속하면 세상은 우리를 삼켜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에 속하면 하나님의 신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이 되어 세상을 통치하는 사람이 된다. 나는 여러분 모두에게서 하나님의 신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축복한다. 그리하여 세상을 통치하는 영광으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본문 34절: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 이 말씀의 의미는 지난번 말씀에서 배운 것처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부활의 문제를 가지고 왔다가 된통 당한 것을 의미한다. - ‘예수선생이여! 당신의 가르침대로 만일 부활이 있다면 일곱 형제의 모두의 아내가 되었던 여인은 부활 때에 과연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 그때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가르치셨는가? ❋ [마]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마]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22: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마]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성경도 알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박사라고 하는 너희들이 참으로 어리석구나. 생각한다는 것이 오직 육신에 대한 생각뿐이로구나. 하나님의 나라가 겨우 ’이 땅에서의 생활의 연장‘ 이라는 말이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은 자가 아니듯이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아브라함처럼 부활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너희의 죽은 믿음이 산 믿음 되어 아브라함처럼 되길 바란다.‘ 라는 가르침이었다. -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의 생활의 연장일까? 온 우주가 신비이듯
❋ 이렇게 된통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바리새인들이 다시 새로운 올무를 들고 도발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리새인 중에서도 그 누구보다 성경에 능통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한 율법사가 나섰다. “35절: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당시 율법사는 말의 의미 그대로 법률전문가였는데.( an expert in the law) 넓게는 서기관으로 불렸다. 그들의 역할은 모세오경에 기록된 모든 율법과 입으로 전해진 구전법(탈무드) 에 관계된 실제적인 질문에 답을 주어 일상에서 잘 작용하도록 하는 일을 하였다. 그런 그가 오늘은 예수님을 파괴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본문의 “시험하여”에 해당하는 원문은 “페이라제” 인데 그 의미가 바로 ‘파괴를 목적으로 시험하다.’ 라는 것이다. - 사단의 시험에 깨어 있어라!
❋ 여러분! 하나님의 법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답고 지혜로운가?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 박사라고 불리던 사람이 어찌 모든 말씀과 율법의 성취이신 예수님을 몰라보고 덤벼들 수 있다는 말인가? 그가 진실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지혜와 지식이 있었다면 주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섰을 텐데. 그는 껍데기였다. - 지식과 앎이란 입술의 언어가 아니다. 지식이지식이 되고, 앎이 앎이 되는 능력은 언어를 넘어 삶에서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이 율법사는 어떤가? 말씀의 열매가 없는 껍데기가 말씀자체이신 예수님을 감히 파괴하고 나선 꼴이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 목사의 목사 됨이 어디에 있는가? 강단에서 말씀을 전함에 있는가? 가르친 만큼 행함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강단의 실상이 어떤가? 또한 성도의 성도됨은 어디에 있는가? 말씀을 들음에 있는가? 아니다. 그것은 가르침 받은 대로 행함에 있다. - 나는 여러분 모두가 말씀을 삶으로 꽃피우고 열매 맺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기쁨과 자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말씀이 열매 맺어가는 사람 그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열매 가득한 나무를 보라!)
❋ 본문 37-38절 :[마]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다. 이 말씀은 신명기 6장5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가정에서나 성전에서 매일 두 번씩 소리 내어 암송하도록 하였다. 자녀교육의 처음시작을 바로 쉐마의(너희는 들으라: 쉐마 이스라엘) 한 부분인 이 말씀에서 시작한다. 이 말씀에서 네 마음의 원어는 (카르디아) 인데 그 뜻은 ‘진정한 의지를 담아서’ 라는 뜻이다. 두 번째 목숨이란 원어로 ‘푸쉬케’ 인데 ‘육체적 생명을 다 걸고 하라’ 는 뜻이다. 세 번째 뜻을 다하여는 ‘지적인 능력을 다해서’ 라는 의미이다. 곧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이해와 통찰력을 가지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라는 것은 ‘전 존재를 다하여 사랑하라’ 는 명령이다. 그런데 과연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이 말씀을 통해 꾸짖는 것이다. ‘하나님을 팔아 자신의 배만 불리는 이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더냐? 이제 그만 돌이켜 진실로 전존재를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과연 우리 인간이 전 존재를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받아 본적도 없고, 누려본 적도 없는 사랑을 어찌 드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과연 이스라엘백성을 넘어 우리 인간은 온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한 사랑을 받아본 일이 없을까? 그래서 사도요한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악이 차고 넘치는 온 세상을 보자. 만일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십자가가 세워지지 않았다면? 지금도 끔찍한데......) 그래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깨달은 사도들을 비롯한 우리의 앞선 수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교회를 위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그 자신을 제물처럼 드린 것이다.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받은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주님의 지상명령을 받들고, 주님의 교회에 충성을 다하자. 그래서 이 죽음의 세상에서 하나님이 나라가 확장 되도록 하자. !! (❋현지인교회성장과 교회건축. 충성한자들은 그 복을 누리리라)
❋ 본문 39-40절 [마]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서기관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라고 질문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가 요구하지 않은 답까지 제시해주셨다.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은 동전의 양면, 뿌리와 열매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을 할 수 있는가? 간음을 할 수 있는가? 도둑질을 할 수 있는가? 이웃에게 거짓증언을 하며 이웃의 것을 탐낼 수 있겠는가?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의 굶주림에 손 놓고 있을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의 헐벗음과 고난과 고통을 외면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십자가의 구원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예수 증인되자!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다면 어찌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있는가?)
❋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다.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 ‘바리새인들아! 너희는 너희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도 관대하고 풍부하게 사랑하면서 과연 너희들의 이웃에 대한 사랑은 어떤가? 만일 너희가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에 대하여 입도 뻥끗하지 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이웃도 사랑하게 되어있다. 너희가 이웃을 사랑하는 증거를 내놓아 보아라........너희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코 없다.’ -❋ [롬]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롬]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 성도여러분! 과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선민으로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고서도 그 사랑에 응답하지 못했던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대제사장들처럼 살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의 신앙을 삶에서 열매 맺자.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삶이다. 위로는 하나님 사랑! 옆으로는 이웃사랑이다. 그것이 십계명을 완성하는 하나님의 최고의 법, 선지자의 강령이다.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실행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과 자랑과 복이 되는 나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