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호여사에 대하여: 대한민국 면허 제4호 의사의 딸이었다. 이화여고, 이화여전, 서울대 그리고 감리교 크로 목사님의 주선으로 미국유학을하여 석사까지 마친 후 귀국하여 YWCA 총무를 하며 한국의 여성운동을 주도하는 삶을 살았다. 시대를 앞서며 시대를 깨운 사회운동가라고 평가한다.
김대중을 김대중 되게 한 인물이 바로 이희호여사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 있을 때,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세계각국의 유력한 인사들에게 편지를 써서 호소하고 구명운동을 벌였고 미국의 망명생활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김대중이란 인물이 사형수에서 대통령이 되게 한 그 기적 같은 길엔 이희호여사의 주님께 부르짖는 깊고 깊은 기도와 말씀의 지혜가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어느 날은 냉방에서 꿇어 엎드려 기도하다가 혼절한 일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희호여사의 삶과 그 삶을 삶이 되게 하여 준 능력은 무엇이었나? 그는 그 수많은 참담한 고난 속에서도, 그리 바쁜 일정 속에서도 무엇을 위해 거의 20년 동안 주일학교 교사로 헌신하였나? 그의 의지는 누구였나? 그리고 오늘 나와 여러분의 의지는 누구입니까? 예수! 그는 나에게 누구인가?
1.오늘 우리는 본문 1- 4절에서 대제사장은 어떤 사람이고 그가 하는 일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알게 됩니다. 첫째로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라고 기록한 것처럼 레위지파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아론과 그의 자손들로부터 세움을 입었습니다. 목적은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의 영적인 아론의 자손은 누구이며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은 누구이겠습니까? 둘째로 대제사장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서며 예물을 드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을까? 또한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무엇으로 죄를 속량 받을 수 있겠습니까? 셋째로 대제사장은 그 어떤 죄인도 다 용납하며 자신과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속죄제사를 드리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백성들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왜요? 대제사장 역시도 연약함을 가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2-3절)
그렇다면 과연 흠 없는 제사장 완전한 제사장은 없을까? 과연 누가 완전한 제사장일까요?
2.넷째로, 이 대제사장에게 입혀진 보배와 존귀는 스스로에게 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존귀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 입혀진 은혜였습니다.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그렇다면 성도의 성도됨은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일까요? 자신으로 부터 일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일방적인 은혜의 선물일까요? 그리고 만일 나의 나 됨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면 나는 그에 합당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고전15:10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신앙은 어떤 것일까요? 사도바울과 같은 신앙!!! 아닐까요.
3. 그런데 여기에서 궁금한 것은 히브리서 기자는 왜? 이토록 세밀하게 대제사장에 대하여 기록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놓칠 수 없는 절대 진리를 발견해야만 합니다. 그 절대 진리란 하나님의 은혜는 크고 무궁하다는 사실이며 하나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모든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를 짊어지고 죽음으로 들어갑니다. 단 하루라도 죄를 범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마음으로 눈으로 손으로 발로 언어로…….. 과연 인간은 무엇으로 그 죄로부터 해방을 받으며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제사하는 법을 마련하셨고 그 제사를 드림으로 그 어떤 죄로부터도 용서받은 은혜를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4. 레위기 4장 27-30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는데 그가 범한 죄를 누가 그에게 깨우쳐 주면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제물을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제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물의 기름을 떼어낸 것 같이 떼어내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왜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울까? 하나님께서는 왜 이토록 죄를 속함 받는 과정을 복잡한 형식과 절차를 거치도록 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고 죄는 그만큼 사람에게 고난과 고통을 줄뿐만 아니라 죽음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절) 만일 죄로부터 구원받고 해방되는 길이 쉽고 간단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을 우습게 여길 뿐 아니라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하루하루 목도하는 이 세상의 죄악의 정도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습니까?(요즘 한 여성의 전 남편에 대한 사건이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일이어서 더욱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과연 이 여인이 자신에게 힘이라고 붙들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자신의 허물이 자신에게 부여된 복과 은혜를 삼켜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가 그 자신의 삶을 멸망으로 내동댕이쳐 버립니다.
5.그러나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사람 그는 회복의 은혜를 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는 은혜를 입는 사람 그는 새 창조의 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8)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과 매일 예배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죄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누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인들에게 약속하신 은혜와 복으로 둘러 진친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그가 동서남북으로 복 있는 자입니다.
6.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더욱 강조하고자 하는 본질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히브리서 10장 11-14절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사람들 가운데 구별된 제사장은 설령 그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거룩한 직무를 수행할 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기에 완전 할 수 없습니다. 완전할 수 없는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 그것은 언제나 일회적입니다. 그래서 매일 같이 반복해서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완전하며 누가 한 번의 제사로 완전한 구속을 성취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하나님만이 완전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그리스도만이 완전한 희생제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
7.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잉태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영원히 구속하실 대제사장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와 넓이,높이와 깊이를 이해할 수 없음이 바로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죄인이 죄 가운데 살다가 그대로 죽게 버려두지 않으시고 매일 같이 반복되는 제사가 아닌 단 한 번의 제사, 십자가에서의 죽으심!!! 으로 모든 인생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는 은혜를 입게 해 주셨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과 그 어린양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주를 찬양하라!!!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계5:13)
그런데 여기에서 제기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 받는 자의 반응입니다.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께 대한 은혜 입은 자의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다움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입은 자다움의 삶입니까?
사랑을 입었다면 사랑이 되어야 하고 은혜를 입었다면 은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죽음의 사랑!!! 우리가 바로 그 은혜와 사랑에 삶으로 응답하는 하나님의 증인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