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바논의 백향목은 해발20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혹한의 추위를 견디며 성장해가는 강한 나무이고 더디게 자라다 보니 내구성이 아주 견고합니다. 진한 향기와 진액으로 인하여 벌레도 덤비지 못합니다. 높이는 40m이상 자라고 폭도 3m나 됩니다. 또한 나무의 수명은 2000년 이상 되어 수목의 왕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두로왕 히람이 전해준 백향목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빼어난 나무! 모든 수목중의 왕인 백향목이 다음과 이야기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백향목이 아니야. 나는 강하거나 높지도 않아. 나에게는 향기도 없어. 나는 가시나무야’…….. 백향목이 자기존재의 가치를 모른다면 그것보다 불행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백향목이면 백향목답게 존재해야 자신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영광을 빛내게 됩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의 성도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알고 있을까?
2. 하나님께서는 시편기자를 통하여 성도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시92:12-14절)
그렇습니다. 성도의 존재가치는 백향목 그 이상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존재가치를 발견했습니까? 하나님의 집에서 백향목처럼 자라나는 존재. 그 높이와 크기를 감히 잴 수 없는 장대함 존재, 그 빛과 향기는 세상을 통치하는 영광존재!!! 여러분이 바로 그 존재인데 제대로 발견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혹시 자신을 가시나무처럼 비하하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 자신을 무능하고 연약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성도로서의 자기존재가치의 발견!! 이것이 그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이끕니다.
인류역사 첫걸음부터 21세기 오늘날까지 그 누가 하나님 없이 승리한 사람이 있으며 또한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으며 승리하지 못한 사람이 그 어디에 있습니까? ‘너 자신을 알라’ 한 소크라테스의 외침을 긍정의 외침으로 받아들여서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각자를 발견한 다면 오늘 우리들의 삶을 얼마나 아름다워지며 얼마나 보배로워지며 얼마나 담대하며 얼마나 용기 있으며 얼마나 기름지며 얼마나 위대해지겠습니까? 우리의 주님이 바로 그러하시기 때문입니다.
3. 오늘 본문 5-6절에서는 성도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한 가지 질문해 볼까요? 보이는 세상이 클까요? 보이지 않는 세상이 클까요? 눈에 보이는 세상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가 더욱 광활하듯이 보이지 않은 세계가 보이는 세계보다 더욱 크고 영광스럽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증언하는 바입니다.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마르고 시들고 사라져버립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힘이 보이는 세상을 통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성도가 차지해야 할 세계는 어디입니까? 보이는 이 세상입니까? 아니면 장차 임할 세상입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바로 그 나라 그 세상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입은 것입니까? 그런데 과연 우리의 삶은 그 나라 그 세상을 차지하기에 합당한 백향목 이상의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본문에서 바로 그 점을 저와 여러분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의 구원의 상속자인 성도들인 당신들은 과연 깨닫고 있는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저 하나님의 나라는 천사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바로 그대들을 위한 나라인 것을 알고 있는가? 시편에 기록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당신들을 귀히 여기시며 높이시는가?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돌보시는 그 은혜와 사랑의 깊이를 과연 알고 있는가? 예수 안에 있는 당신들의 가치를 발견하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하심, 은혜주심에 합당한 삶으로 응답하시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렇습니다. 우리 사람이, 우리성도가 천사보다 존귀함을 입게 된 은혜 그리고 장차 다가올 세계까지 차지하게 되는 영광을 입음은 우리로 말미암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를 위해 육체로 오셨고 우리를 위해 죽임 당하셨으며 그리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안에 심겨진 여러분의 존재가치, 그리스도의 교회와 신부로 부르신 여러분의 삶의 가치! 그것 보다 앞서거나 높은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인자가 무엇이기에”
5. 이제 본문 9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마주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스스로를 낮추고 낮추시어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셨을까? 또한 하나님 안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왜 저주의 나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을까?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허리가 예리한 창에 찔리심은 바로 우리의 거듭되는 허물 때문입니다. 주님의 온 몸에 맞으신 채찍은 바로 우리의 잔인한 죄악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창에 찔리심으로 우리는 고침 받았고 주님께서 고난당하심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6. 새 생명! 새 삶! 새 영광 영생!!!하나님의 자기 죽이심 그 거룩한 사랑의 열매가 바로 이곳에 모인 저와 여러분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열매!!! 그것이 바로 성도인 나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의 삶은 어때해야 하는가? 주님의 사랑을 통째로 받아 다가올 세상까지 차지할 존재가 살아내야 할 삶이 무엇이겠는가?
로마서 6:11-13절의 말씀보시겠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성도가 교만할까? 자신의 배만 불릴까? 불순종할까? 사기 칠까? 거짓말할까?
7. 하나님의 성도 여러분!
고통의 신비를 아십니까? 고통을 통과 할 때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어머니들의 산고가 그렇습니다. 고난의 신비를 아십니까? 고난을 통과 할 때 풍요로운 결실을 낳습니다. 뙤약볕아래에서의 농부들의 땀방울이 그렇습니다. 죽음의 신비를 아십니까? 죽을 때 부활의 영광을 맞이합니다. 주님께서 증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육체는 죽고 오직 그리스도로 매일 새롭게 살아 생명을 결실하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육체로 사는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면 가정과 사회와 교회는 죽음의 일들로 난무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가족이 살고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살아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또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 나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께 살리라 영원토록 주 위해 살리라 주 위해 살리라♬
8. ‘국가는 국민에게 안심하고 의식을 잃을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
20년 넘게 국내 응급의료계를 이끌어오다가 유명을 달리한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말이다. 그의 마지막 과업은 응급의료 체계가 사람이 아닌 시스템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작업이었다. 응급의료계에 말이 안 될 정도로 기여해온 영웅이자 버팀목! 출세에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던 사람: 교회와 성도들이 살아내야 할 삶이 아닌가? 왜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겨우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잘 먹고 많이 모으고 힘자랑하며 살라 하심인가?
하나님을 증언해야 할 시대의 사명자이며 다가올 세상까지 차지하게 될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함께 이미 죽은 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그리스도의 죽음이 계속되어야 할 육체 안에 머물러있습니까? 약속하신 그 나라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데 나는 과연 그 나라를 무엇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