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39-40절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예수님의 생애는 기도하시는 생애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늦은 밤뿐 아니라 이른 새벽에도 늘 성부하나님과 기도를 통하여 행하셔야 할 일, 곧 사명을 성취해 가셨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 계셨던 성자하나님으로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아셨다. 그럼에도 기도로서 매일 새롭게 성부하나님을 만나 자신을 견고하게 하셨다. 여러분도 충분히 경험했겠지만 기도는 우리를 견고하고 힘있게 하며 신실하도록 하는 능력이 되지 않는가?
감람산은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4Km 떨어져있는 산등성이에 위치해있다. 예루살렘성전과 도시가 다 내려다보이는 감람산에서 주님은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셨을까? 하나님의 도성과 그 백성들을 향한 탄식과 아픔과 눈물의 기도가 아니었을까?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눅19:41-42,45-46)
2.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로서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함에 대한 탄식의 기도이셨다. 또한 머지않아 멸망당할 예루살렘 성이 영원할 줄 알고 이방백성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맹인 된 이스라엘백성을 향한 탄식의 기도이셨다. 또한주님의 눈물의 기도는 성전을 장사꾼의 터로 전락시킨 채 탐욕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종교주의 자들을 향한 것이었다.
오늘도 주님의 기도는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으로 초청받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도는 과연 어떨까? 이제는 감람산에서가 아니라 더 높은 곳,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내려다보시며 드리시는 기도!!!
저와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기도가 안타까움과 슬픔의 기도가 아니라 사랑과 소망과 기쁨을 가득 안고서 중보 하시는 기도가 되기를 바란다. 눈이 크게 열려서 볼 것을 제대로 보며 충성하는 성도이기에, 주님의 성전 된 삶으로 날마다 예배하듯이 살기에 그리고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하나님께 영광 돌림이 되기 위하여 살기에 말이다. ‘그래, 잘하고 있어. 대견해. 박수 쳐주고 싶구나. 멋져!!!’
3.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신 주님의 힘찬 말씀은 유혹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신 절대적 명령이다.(대마초 피우는 집시들:사단의 유혹이 광풍이다)우리의 신앙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던 바리새인들과 같지 않으려면, 우리의 믿음이 머리만 무거웠던 서기관들처럼 되지 않으려면,우리의 삶이 육체의 탐욕에 지배당한 채 살아가는 세상사람들과 같지 않으려면 그리고 주님께서 남기신 일을 감당하려면 기도의 삶은 너무나 당연한 사명이다. ‘시간이 없다. 너무 일이 많아 기도할 틈도 없어!.’ 핑계하지 말아야 한다.
기도할 시간도 없이 살아간다면 그 인생은 어디로 가겠는가? 유혹의 폭풍에 휘말려 살아가게 됨은 자명하다. /주님의 나를 향한 기도와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기도가 일치되는 그 지점! 그곳에 하늘의 문은 열린다. (기도의 불병거/(Edward McKendree Bounds, 1835-1913)
‘기도에 우선권이 주어져야 한다. 사도들이 다른 어떤 일보다 기도를 가장 앞세웠을 때 비로서 그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진정으로 행하는 자들이 될 수 있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일하실 수 있었다.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사도들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따라 충실하게 일할 수 있었다.’
4. 본문 41-42절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유대인의 기도는 대체적으로 서서 눈을 하늘로 향하고 손을 들어 하는 기도였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는 무릎을 꿇고 다른 번역으로는 땅에 엎드려서 드리시는 기도였다.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서 드리는 기도! 여러분! 무엇이 느껴지는가? 얼마나 간절함인지, 얼마나 애통함인지 그리고 얼마나 처절함으로 드리는 기도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주님의 그 처절한 기도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같지 않았다.
이 땅에서 지금보다 좀더 잘살고, 남들보다 좀더 높아지고, 가능하면 좀더 누리며 살기 위해 엎드린 기도가 아니었다. 오늘 이 시대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기도의 대부분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더 채우기 위함, 더 높아지기 위함, 더 부유해지기 위함 아닌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 보다는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기도가 아닌가?
5. 그러나 주님의 그 처절한 기도는 철저히 아버지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함이셨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신적인 능력으로 충만했으나 육체의 몸을 입으신 주님이셨기에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앞에 두려움이 몰려온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고난을 멀리하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인성 아닌가? 고난 앞에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극한 고통 앞에 절망하지 않을 마음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저주스러운 죽음을 피하고 싶지 않을 사람이 그 어디에 있을까?
6.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로 육체를 입은 자신을 하나님 앞으로 관통시키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뜻에 순복 합니다. 받아들일 수 없지만 받아들입니다. 피하고 싶지만 기도가운데 그 자신을 꺾습니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육체를 입은 자신을 꺾어 하나님아버지의 거룩하신 대속의 제물로 기꺼이 드리겠다는 주님의 선언이다.
수천수만 마리의 어린양으로 속죄제물을 삼는다 할지라도 그것으로는 언제나 일회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주님만이 그 모든 것을 속량하실 수 있는 유일의 길이기에 그 길로 나아가신 것이다.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나를 구속의 제물 삼으시고 이 백성들을 구속하소서.
나를 어린양처럼 찢으시고 피 흘려 영원한 구속의 값을 치르소서……’ 아버지를 신뢰하기에….아버지의 뜻이 완전함을 믿기에….아버지의 일하심은 영광의 일임을 신뢰하기에 기꺼이 복종의 길로 나아가신 것이다. 기도가 육체의 모든 욕구를 이기는 능력이 되어!!!
7. 형제자매 여러분!
참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헌신합니다. 참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목숨을 겁니다. 하물며 하늘의 아버지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들을 버리시겠습니까? 엎드려 아버지를 부르는 기도의 골방 그곳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더욱 깊이 발견하는 자리이며 아버지의 아버지 되심을 온전히 신뢰하며 자신을 기꺼이 드림이 되게 하는 능력이 임하는 자리입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그래서 기도가 능력이다!!! 육체를 이기게 하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아버지 앞에 엎드리는 기도의 사람! 세상 그 어떤 것이 감히 도전할 수 있겠는가? 저는 저와 여러분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엎드리기에!!!
8.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그 영원한 속죄제사의 피가 지금도 흐르고 있다. 그래서 죄인인 우리가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다. 또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과연 나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발견했는가? 과연 우리는 아버지의 뜻에 나를 꺾어 순종을 지나 복종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혹시 나를 향하신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를 향한 부르심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거부하고 있지는 않는가? 불순종의 결과를 알고 있는가? 그러나 순종은 생명의 길이다. 순종은 은혜의 길이다. 복종은 영광에 이르는 길이다.
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우리 주님처럼 기도로서 우리의 아버지 이신 하나님께 자신을 꺾어 드림이 되기를 바란다. 기도의 골방으로 나아가 자신을 하나님 앞으로 관통시킴으로 육체의 모든 것으로 부터 해방을 입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며 하늘로부터 임하는 생명과 은혜와 영광을 거침없이 열매 맺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