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신학자가 성경을 연구하면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에게 은혜와 복으로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멈추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멈추실 때 그때는 언제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이 원망을 쏟아낼 때 그리고 불평할 때, 그리고 교만할 때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심령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한 사람의 마음은 그 자신의 영적인 삶과 육체의 삶의 중심이 됩니다. 또한 한 사람의 마음은 그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 전체를 의미합니다. 마음중심이 곧 삶의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지난주에 새겨 넣은 것처럼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한 말씀을 심장 깊이 다시 아로새겨야 할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완고함 곧 미혹된 마음으로는 본문 10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Their hearts are always going astray, and they have not known my ways.'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길을 모르고 어찌 복의 사람이 되며 어찌 인생승리, 인생성취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는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님의 말씀으로 충만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길로 걸으며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복에 복을 은혜 위에 은혜를 누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이제 본문 12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완고한 마음”이 “믿지 아니 하는 악심”이라는 의미로 재해석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완고한 마음은 미혹된 마음이요, 미혹된 마음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12절의 말씀 속에서 진실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너희 믿음이 점점 흐려지는 것은 아닌가? 믿음이 점점 소멸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치 활활 타오르던 불이 점점 사그러지는 것과 같음을 의미합니다.
사실, 배교라는 뜻을 가진 영어 ‘apostasy’는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라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믿음이 견고하고 충성되며 충만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세상의 이익을 따라 하나님을 내동댕이쳐 버릴 수 있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배도하는 죽음의 신앙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언제나 충만하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을 위해 교회공동체는 힘써 서로 권면해야 합니다.
3. 성도 여러분!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너도 예수의 일당이지? 예수를 모른다고 해라. 그러면 목숨도 살려주고 한 몫 챙겨 줄게. 예수가 밥 먹여주고 성공 시켜 주냐? 이번 한번만 눈감아봐 엄청난 이익이 생길 거야’ 라는 것에 ‘맞아! 나 예수의 일당이야. 아니 나는 예수와 함께 이미 죽음 몸이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의 실수가 영원을 결정지어!!!’ 라고 맞서는 신앙이 되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이 땅에서의 안일과 영광을 위하여 내가 하나님을 배신한다. 내가 십자가로부터 돌아선다. 내가 주의 길을 던져버리고 나 살겠다고 줄행랑친다면 그 얼마나 참혹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도 성령가운데 살아서 여러분과 저에게 힘주어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하라.”
이 세상에서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대한 염려가 아닌 오늘 나의 믿음의 상태에 대해 늘 점검하고 충만한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충만한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요, 견고한 믿음은 모든 적진을 파쇄하는 힘이며 신실한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영역의 일들까지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충만, 견고, 신실할 수 있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그런데 우리는 이 배교라는 apostasy에 대해 좀 더 살펴봐야겠습니다. 마가복음 13장 22절과 사도행전 20장 29-30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렇습니다. 말세에는 진리로 가장한 거짓 사람들이 성도들을 미혹하여 그 믿음으로부터 떨어지도록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말세 즉, 주님의 시간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양의 탈을 쓴 이리떼가 들어와서 선한 양들을 집어 삼킬 시간이 이르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오늘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신천지나 여호와의 증인이나 통일교나 안상홍 증인회 등 이단에 짓밟혀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몇 십 만 명이 다 주님의 교회로부터 삼킴을 당한 것입니다.
5. 그러니까 오늘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견고해야 할지 반석 같은 믿음! 얼마나 신실해야 할지 죽기까지 따름! 얼마나 충만해야 할지 오직 십자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믿음이 광야에서 므리바와 맛사가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하며 하나님 앞에서 교만히 행하면 우리 역시도 배교자, 즉 하나님에게서 떨어져나간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 그들의 영혼은 과연 어찌 되겠습니까? 본문 17절에서 증언합니다.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
6. 주님의 성도 여러분!
다시 주님의 십자가로 우리를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이기는 절대승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우리의 눈을 주님의 얼굴에 고정시켜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이 세상과 다가올 세상을 차지하는 능력과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에서 증언합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믿음을 끝까지 지키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육체의 영광은 얻었으나 영혼의 구원을 얻지 못했다면 그 육체의 영광이 무슨 소용입니까? 이 세상의 영광? 육체의 자랑요?...... 영혼의 구원 앞에는 아무것도 못됩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오늘의 이 세상에서도 보배롭고 존귀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뿐 아니라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안식의 나라에 들임 받고 승리자들이 누리게 될 하나님의 식탁에 참예할 수 있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