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넓이”
내가 나의 방에서 책을 보며 묵상을 하며 설교를 쓸 때면 가끔씩
창밖을 내어다 봅니다. 그 창문을 통해 밖을 이렇게 보노라면
높푸른 하늘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닮고 싶은 마음으로 소원 가득해 집니다. 모든 것을 다 덮고 포용하고
사랑하고 축복하고픈 그 푸르고 높은 마음을 말입니다. 하늘처럼 끝이 없는
다함없는 마음을 소유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넓지 않은 창문을 통해서 밖을 내어다 보는 데는 한계가 정해져 있습니다.
저 멀리 까지, 저 높이까지, 끝까지 다 놓고 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내 방에 있는 동안은
양팔의 넓이만큼 밖에 보지 못합니다. 다른 것을 보고 싶어도, 360도 회전하며 보고
싶어도, 세상 전체를 다 놓고 보고 싶어도 그 방안에 있는 창문을 통해서 밖을 보며,
세상을 보는 동안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조금밖에, 부분밖에 볼 수 없습니다.
더 넓게 더 높이 더 깊이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 자리에선, 한계가 정해진 이 좁은 자리에서는 되지 않습니다.
손바닥만한 창문을 통하여 온 세상을 보려하는 것은 불가능한 꿈입니다.
하늘 전체를 다 보려면 창문을 떼고 벽을 헐고 지붕을 뜯어내고 보아야합니다.
360도 돌아가면서 하늘을 보고 만물을 보려면 빌딩 숲이 아닌 넓고 푸른 들녘으로
나가야합니다. 아무 거칠 것이 없는 들녘에 서야합니다.
그곳에서 하늘을 보고, 세상만물을 보면 시원스럽게 다 볼 수 있습니다. 거침없이
속속들이 보고픈 것을 세밀하게 볼 수 있습니다. 가려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구라고 하는 좁은 공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넓다고 말들을 하지만 지구촌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지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이 지구공간은 마치 하나의 방과 같이 좁습니다.
이 좁디좁은 공간에 살고 있으니, 이 좁은 지구라는 창문을 통해서 지구 밖의 공간,
우주를 아니 그 너머의 세계를 보려니 보이지도 않고, 볼래야 볼 수도 없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천문 관측기로 우주를 본다 해도 일부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볼 수 있는 공간 보다 보지 못하는 세계가 훨씬 크고 광대합니다.
우리의 상상으로도 그 세계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구 밖의 광활한 그 세계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그 세계에서 살 수도 있습니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과 거리 먼 욕심의 벽을 허물고, 이기심과 교만의
지붕을 걷어내고 위선의 창문을 떼어 낸다면 우리는 분명 신비한 그 세계를
그 높고 깊은 세계를 볼 수 있고 그 가치의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충만하다면, 때 묻지 않은 청결한 믿음의 세계가
그 심령 안에 존재한 다면 하늘보다 더 높푸른 마음을 소유 할 수 있으며
하늘의 하늘, 모든 하늘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얼굴을 매 순간 보게 될 것입니다.
참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환한 대낮에도 한 밤처럼
더듬거리며 넘어져 신음하는 우리 인간들에게 오셔서 선포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5장8절의 말씀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종이십자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