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독교라 불리는 우리의 예수교는 핍박 받는 공동체였습니다. 왜 예수교는 핍박을 받는 공동체가 되었을까? 그것은 기존세계의 질서와 가치에 대한 도전, 기득권세력에 대한 도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형식과 위선의 삶에 대하여 진실과 정의 가 되어라, 탐욕과 이기심에 대하여 사랑과 나눔이 되어라, 높은 자는 겸손 하라, 부한 자는 가난하여 지라, 땅의 것을 보지 말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죽은 자요 돌이켜 삶을 고치지 않으면 너희들의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을 것이다. 라고 말이 아니라 삶으로서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말이 아니라 행함으로 그 심령에 품고 있는 바를 나타내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당시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던 성도들은 불법과 이단의 단체로 규정되었고 걸리면 온갖 핍박과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열두 사도가 당했던 고난과 순교의 피가 그들의 뒤를 이어 초대교회 성도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초대교회성도들이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당했던 그 엄청난 고난과 핍박의 실상을 알고 있습니까?
2. 히브리서 11장 35-38절의 말씀에서 그 일면을 알 수 있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말씀 앞에서 과연 숙연해 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신의 남편이 예수 때문에 무참히 죽어요. 자신의 친구들이 예수 때문에 고문을 당해요……. 그럼에도 배도하지 않았습니다. 고난도 죽음도, 고문도 채찍질도, 돌에 맞음도 칼에 찔림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거룩한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예수행진을 멈추지 않았던 우리 선배신앙인들……그들의 신앙과 오늘의 나의 신앙을 비교한다면 어떨까요?
♬ 1.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2.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 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
3. 오늘 본문 32-34절의 말씀은 바로 이에 대한 증언의 시작이었습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을 기록하면서 당시의 성도들을 향하여 그들이 살아낸 신앙의 삶에 대하여 위로하고 더욱 새 소망으로 살 것을 힘 있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가운데서도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다른 믿음의 형제들을 돌보았던 것, 예수를 믿는 다는 이유로 일터에서 쫓겨나도,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겨도, 사람들로부터 온갖 조롱과 핍박을 당하며 벌거벗겨진 채 구경거리가 될지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꺼이 그 모든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였던 성도들을 위로하고 축복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과연 무엇이 당시의 성도들로 하여금 그 모든 고난과 핍박과 환난과 조롱가운데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였을까요? 그 성도됨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4. 단지 이 한마디 ‘나 이젠 예수 믿지 않아요.’ 라고 외치기만 하면 이제까지 누렸던 그 모든 일상의 삶을 그대로 누릴 수 있었습니다. ……따스한 커피와 홍차도 수시로 마실 수 있었고, 언제든 편안한 침대에서 마음껏 쉴 수도 있었으며,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근사한 음식점에 가서 맛난 것도 먹을 수 있었고, 오는 길에 쇼핑몰에 들러 멋진 옷과 가방도 살수 있는 삶을 그대로 누릴 수 있었는데 왜 그들은 스스로 능욕 받고 환난 받는 삶을 택하였을까요?
진실로 그렇습니다. 옛적 우리성도들이 고난을 기쁨으로, 환난을 감사로 받으며 좁은 길로 나아갈 수 있었던 그 비결은 다름아니라 주님께서 약속하신 더 낫고 영구한 소유라 불리는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영생의 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충만했기 때문이었다고 오늘 본문은 증언합니다.
5.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더 낫고 영구한 소유인 하나님의 나라, 구원받은 자의 선물인 영생의 가치는 이 세상에서 당할 수 있는 그 어떤 고난과 핍박 심지어 죽음도 넘는 것임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게 됩니다. 보배의 진주를 발견한 사람도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파는 것뿐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하여 그 진주를 손에 넣고야 맙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발견한 사람들, 예수 안에서 영생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 자신 전부와 목숨마저도 드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야 맙니다. 예수님 보다 귀한 것, 예수님보다 높은 것, 예수님보다 영광스러운 것, 예수님보다 영원한 것은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13:44)
여러분! 예수님 안에 이생과 내생의 모든 것이 다 있음을 발견했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주님 안에 있는 모든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되기를 그리하여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그런데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진실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초대교회의 후예 아니 예수사람들이라 불리는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은 과연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커피와 홍차도 못 마시게 된다면? 예수 믿는다고 조롱당하면? 예수 믿는다고 욕을 듣는다면? 여기까지는 감당할 수 있을까요?..... 예수 믿는다고 직장에서 쫓겨난다면? 예수 믿는다고 모든 재산을 몰수당한다면? 예수 믿는 다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면? 예수 믿는다고 숯불위로 굴려진다면? 예수 믿는다고 화형에 처해진다면……..과연 오늘날의 성도들 중, 우리 중에 과연 몇 명이나 ‘그럼에도 나는 예수요!!! 그럴지라도 나는 복음이요!!!’ 라고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땅에 재물을 쌓지 말고 하늘창고에 쌓으라, 한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예물로 드린 것처럼 마음중심을 다해 충성하라, 율법의 십일조뿐 아니라 사랑의 십일조까지 하는 헌신의 사람이 되어라, 네 이웃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해라 하셨음에도 여전히 세상 것 움켜쥐고 있는 오늘날의 성도들을 보면서 과연 주님은 뭐라고 하실까요?...... 나는 여기 모인 여러분 모두가 살아있는 믿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예수요!!! 그럴지라도 나는 복음이요!!!’
7. 히브리서기자의 메시지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말씀합니까? 아니면 다시 복음으로 돌이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저는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내일 주님께서 오실 것을 믿으며 준비하고 살아가는 종말론적인 신앙이기를 바랍니다.
재림예수를 기다리는 신앙이라면 결코 세상 앞에 무릎 꿇지 않을 것입니다. 재림예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소유를 소망하는 신앙이라면 결코 세상과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다시 오실 그날을 바라는 신앙의 힘으로 오늘의 삶을 산다면…… 직장을 다니고, 학업을 하고, 자녀를 기르고, 사업을 하며, 교회를 섬기고,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 삶에서는 어떤 힘과 능력과 지혜와 용기와 사랑과 소망과 기쁨이 나타나겠습니까?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손은 친히 일하십니다. 저는 여러분에게서 이 찬란한 신앙의 열매들이 나타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