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기
위 사진은 지난 9월 8일, 미국 조지아주 해상에서 전도된 차량운반선 '골든레이' 의 모습입니다. 새 차 4천 여 대를 싣고 중동지역으로 가다가 전도되었습니다. 선원이24명이 있었는데 일차 20명은 속히 구조되었습니다. 그러나 기관실에 있던 4명의 한국선원들은 배 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배가 전도되자 전기는 당연히 끊어졌습니다. 비상발전기가 잠시 돌기는 했지만 이내 멈추고 말았습니다.
기관실에 갇히게 된 네 사람,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다른 공간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90º가 기울어진 배 안에 갇힌 이 네 사람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큰 배 안은 칠흑 같은 어두움에 덮였습니다. 어두움의 공포도 힘들지만 배 안의 45도를 넘나드는 더위는 그들의 생명을 더욱 위협했습니다. ‘언제 구조될 수 있을까? 과연 내 생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시간은 점점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었습니다.……미국 해안경비대는 구조를 위해 안간힘을 썼고 특별히 민간 구조요원들의 도움으로 네 명의 사람은 40시간의 목마름과 배고픔과 어둠과 더위의 죽음의 터널을 통과하여 극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목숨을 구조 받은 선원들…….그들은 생명에 대하여 뭐라 고백할까요? 그리고 마치 새로 얻는 생명으로 과연 어떻게 살까요? 생명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반드시 새로운 가치의 삶으로 살아낼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십자가의 공로로 부여 받은 오늘 우리의 생명은 무엇을 위한 생명입니까? 사도바울이 권면했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고후5:15절)
1. 우리는 지난 주 주님께 붙들린바 된 성도들이 그 어떠한 핍박과 환난가운데서도 배교하지 않으며 여전히 믿음으로 살아낸 불굴의 신앙을 통해 도전 받았습니다. 오늘은 먼저 본문 35-36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그 어떤 핍박과 환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러나….그럼에도 나는 오직 예수요!!!’ 하는 빗장 지른 담대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또한 그 믿음에 대하여 마지막까지 견디는 인내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담대한 믿음 인내하는 신앙이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본문 34절에 이어 35-36절에서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상,약속 하신 복이 무엇일까요? 잠시 후면 안개처럼 사라질 이 세상나라일까요? 아니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까? 예수부인하고 얻은 자잘한 육체의 영광입니까? 아니면 오직 믿음으로 살아 누리게 될 천년왕국입니까?
2. 우리는 한 부자와 거지나사로의 이야기에(누가복음16장)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부자는 날마다 최고급의 옷을 입고 최고급의 음식을 누리며 살았다. 그는 현세지향적이요 세상추구 주의 자였다. 그러나 그가 죽음 이후 맞이한 운명은 영원한 형벌의 자리였다. / 나사로의 이름은 ‘엘 하자르/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십니다.’ 라는 의미이다. 그는 심히 가난했고 병들었다. 부자의 상에서 버려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이름의 뜻처럼 하루하루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가 죽음 후에 맞이한 곳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였다.) 우리는 사람인지라 때로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는가?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시나? 이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려나?’ 하는 의심의 시간을 지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주님을 구하고 따르며 앞으로 전진하는 담대한 믿음, 인내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담대한 믿음, 인내하는 믿음은 이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된 큰 상을 받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담대함과 인내함으로 빚어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이 되기를 그리하여 이 세상도 이기고 하늘의 큰 상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라. 그 믿음으로 인내하라 큰 상을 얻으리라. 약속하신 바를 거두리라’
3. 본문 37절의 말씀은 우리의 심장에 참으로 놀랍고 큰 위로와 소망을 가져다줍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곧 다시 오시리라 하셨던 약속은 더딘 것 같지만 사실을 바로 우리들의 목전에 있습니다. (서부역에서 이스라엘 사람들과의 만남: 두 명의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한 여성은 유대교를 믿고 한 여성은 ‘나를 크리스천이라’ 했다. 얼마나 반갑던지. 이제 복음은 온 세계를 다 돌고 다시 유대 땅, 잃어버린바 된 예루살렘으로 들어갔고 이미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주님의 재림이 아주 가깝다는 신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참 소망은 주님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주님 재림하시는 그날이 성도들에게는 영광의 날이요 보상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주님 때문에 겪었던 수모와 조롱, 여러분! 그런 일 있었습니까?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위해서 밤을 지새워가며 기도하고 충성했던 일들, 여러분! 그러셨습니까?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성도들과 목회자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섬기고 사랑했던 일들… 여러분! 그러셨습니까? 그날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복음을 위해 내 것을 나누고 찢어 베풀었던 그 모든 것은 그날!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하늘의 영광으로 변화됩니다.
4. 오늘날의 교인들을 일컬어 ‘옷은 기독교인이라는 무늬가 새겨진 것을 입은 것 같은데 그 내면은 여전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탕자와 같다’ 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지나친 말일까요? 오늘날의 성도라 불리는 교인들의 실상이 어떻습니까? 얼마나 이기적입니까? 얼마나 물질적입니까? 얼마나 유행에 민감합니까? 얼마나 탐심으로 가득합니까?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사랑과 섬김, 헌신과 충성, 성장과 성화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자나 깨나 이 세상 것에 대한 탐심으로 근심걱정이 떠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마치 천국 가는 보증수표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영적 유아, 영적 유치원생들로 가득한 것이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날을 기다리는 믿음과 소망의 성도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누가복음6:22-23)……”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리라”…주님의 시간을 위해서 살고 주님 재림의 날을 기다리는 삶을 살다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누리고 마침내 그 찬란한 영광 안으로 모두 들임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이제 본문 38-39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이 말씀 안에는 두 가지의 진리가 나란히 놓여있습니다. 그 첫째 진리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뒤로 물러나면 즉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의 행진을 멈추면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멸망이라는 것은 뒤로 물러남에 대한 결과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영적 전쟁이라고 믿는다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멸망당하지 않으려면 그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믿음으로 맞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본문에서 히브리서기자는 우리성도들을 향해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신실함의 행진 곧 변함없는 복음의 삶을 살아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로다. 사느냐 죽느냐
6. 본문에 놓여있는 두 번째 진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을 가진 자는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르게 말하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는 것이며 최후의 승리자가 되기를 원하거든 오직 믿음으로 삶을 세워가라는 것입니다. 환난과 핍박을 받을 때뿐만 아니라 숨쉬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생각을 하는 것도, 학업을 하는 것도, 자녀를 돌보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모든 일상을 오직 믿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삶을 삶 되게 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세워가는 그 삶이 누릴 복은 영혼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 지난 화요일 찬양을 부르는 가운데 두 명의 아주 젊은 청년이 찬양을 듣고 있었습니다. 한 청년은 키가 크고 한 청년은 아주 아담한 청년이었습니다. 두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곧장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들을 사랑하신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사랑하심은 말에 언어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을 향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행함으로 나타내셨다. 너희들도 아마 알 것이다. 요한복음 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셨으니…..’ 그런데 그 사이 두 아이 중 한 아이의 눈에서는 제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어깨까지 들썩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심을 언어만이 아니라 행하심으로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흔들립니까? 믿음이 희미해졌습니까? 다시금 여러분 가운데 오셨고 여러분을 위해 행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실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욱 담대하고 인내하는 믿음으로 마지막까지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