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백성들이 성전의 기초는 놓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무려 16년간이나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에스라서 4장 5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그렇습니다. 사마리아인들과 이웃의 대적들이 바벨론의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을 건축하면 조공과 관세를 바치지 않을 것이다. 통행세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성전을 세우는 것은 악한 것이다.’ 하며 성전공사를 방해한 것입니다.
16년간의 끈질긴 방해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전공사를 포기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어떤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 가야 할까요? 만일 성전건축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포기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생명생수를 포기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 생명생수가 흐르지 않는 삶…… 어떻게 되겠습니까?
❉ 사실 사마리아인들과 이웃의 대적들의 협박은 핑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럼에도 계속해서 성전을 건축해야 했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배부를 일에, 높아지는 일에 발 빠르게 움직일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최우선으로 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뿌리 깊은 나무처럼 되기 때문이며 그것이 물가에 심기운 나무 같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 같지 않으면, 물가에 심기운 나무 같지 않으면 그 삶은 남는 것 같으나 모자라고 모은 것 같으나 흩어지는 삶이 됩니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의 실상 아닙니까?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아무리 가뭄이 와도 시드는 법이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늘 푸르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 복이 됩니다.
❉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 안에 계속해서 주님의 성전을 건축해 가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의 삶이 아직도 하나님께서 거하실 온전한 성전으로 건축되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삶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과 헌신과 충성과 믿음의 삶이 넘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국가와 사회가 여러분의 신앙건축을 방해하기 때문입니까? 이웃과 가족이 여러분이 예수로 사는 것을 방해합니까? ‘당신들 진짜로 예수 믿으면 죽일 거야! 당신들 진짜로 예수성품 나타나면 감옥에 쳐 넣을 거야! 당신 예수에 미치면 헤어질 거야!!!’ 아무도 우리에게 이런 협박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령 협박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넘습니까? 무엇이 두려워서 무엇이 겁나서 삶을 주님의 지성소로 세워가지 못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전으로 부름 받았고 주님의 성전이 되어야만 합니다. 핑계!!!
❉ 이제 본문 7-8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거듭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걸어온 오늘까지의 삶의 걸음을 보아라…. 어떤 일이 먼저였느냐? 이제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지점에서 돌이켜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네 영혼을 황무하게 방치하지 말아라. 네 삶에서 믿음과 진리와 사랑과 생명이 흐르게 하여라. 그러기 위해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여라.’ 하시며 일으켜 세우십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무슨 의미입니까? 솔로몬의 성전처럼 최고급의 재료를 가지고 지으라 하심이 아닙니다. 가까운 산에 올라가 나무들을 베어 그 나무들로 건축하라 하십니다. 즉,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행하라 하심입니다.
❉ 교회에 다닌 지 10년, 예수 믿은 지 20년, 성경말씀을 읽고 들은 지 30년 되었음에도 왜 수많은 성도들의 삶에서 성전의 은혜와 영광과 열매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한해 두 해 십년 이십년 해가 지날수록 그 삶에서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초월하고 관통한 하나님의 성전 됨의 빛, 예수지성소의 능력이 나타나는 멋지고 탐스러운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데 왜 오늘날의 성도들은 그렇게 째째하고 인색하고 옹졸한지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내 삶을 주님의 지성소처럼 세워가고 싶은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지성소 된 삶을 사는 것은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십자가만 지고 사는 손해나는 삶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만일 돌이키지 않고 계속해서 이제까지 살아왔던 방식으로…… 한발은 세상에 한발은 주님께 걸쳐놓고 산다면 그 길 끝에서는 어떤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부지런 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일찍 일어나는 훈련을 해야 하듯이 진실로 자신의 삶이 복음이 되고자 한다면 그렇게 결단하고 스스로 훈련해가야 합니다. 스스로를 성전 된 삶으로 훈련해감으로 날마다 새로운 신앙의 지평을 열고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본문 9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주님을 닮아가는 일보다는 세상의 부귀영화에 대한 욕심이 먼저, 주님의 진리를 따름보다는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먼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일보다 나의 이익과 나의 영광이 먼저였다면……. 진실로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멀고먼 사이입니다. 세상의 집을 짓기 위해 빠름이 아니라 내 안에 주님의 십자가를 세우는 일을 우선으로 하는 저와 여러분이, 육체의 영광과 자랑과 안락함과 평안이 우선이 아닌 주님의 성전을 짓는 것을 우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적은 것을 바랄지라도 풍성케 하시며 적당한 것을 바랄지라도 차고 넘치게 하시며 막혔던 모든 복의 강수가 다시 흐르는 복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이제 본문 14-15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그 때는 다리오 왕 제 이년 여섯째 달 이십 사 일이었더라”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전하신 메시지를 듣고 유다총독뿐 아니라 대제사장과 모든 백성들이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stirred up the spirit”
이 말씀을 다른 번역본에서는 “마음을 흥분시키매”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마음이란 히브리어로 ‘루아흐’ 인데 그것은 ‘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감동시키매, 마음을 흥분시키매” 라는 뜻은 백성들이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으로 깨우침을 받아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유 그리고 들어야 하는 이유는 듣고 깨우치기 위함입니다. 듣고 고침 받기 위함입니다. 듣고 행하기 위합니다.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목회를 하면서 가장 슬플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주님의 말씀으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입니다. 말씀을 듣고 자신의 삶을 고쳐야 하는데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남의 삶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삶의 변화를 체크해야 하는데 오히려 목회자의 삶만 체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의 요즘 설교가 힘이 없어. 목사님은 목회를 하면서도 왜 그런지 몰라.’ 왜 그리도 옛사람의 뿌리가 강한지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늘 마음이 흥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감동된 대로 충성으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늘 하나님과 통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땅에서 하늘로 관통…하늘에서 땅으로 관통! 땅에서 풀림으로 하늘이 열리는 삶!!!
❉ 이제 본문 14절과 학개 2장 19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학]2: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그렇습니다. 16년간 내팽개쳤던 성전건축을 감동받아 깨우쳐 다시 시작하고 3개월이 지났더니 복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포도나무에도 무화과나무에도 석류나무에도 감람나무에도…. 가정에도 자녀에게도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직장에도 꿈꾸던 일에도 포기했던 일에도… 건강에도…. 하나님께서 다시 복이 흘러넘치도록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막혀있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반드시 해결 받아야 할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루고 싶은 소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삶을 주님의 지성소로 세워가고 새 성전의 터를 주님의 구원의 성소로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 약속된 하나님의 이 놀라운 복으로 충만을 이루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