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 속에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듣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나를 위한 말씀으로, 강단에서 선포되는 케리그마의 모든 말씀이 내게 향하신 주님의 말씀으로 들려져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나를 위한 말씀으로 받을 때 그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세계로 나를 인도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말씀을 말씀으로 들어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붙들려 보배롭고 존귀한 삶으로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요한은 자신의 신분과 처지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의 주인공도 바로 여러분 자신임을 발견해야 합니다.
❊ 사도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companion”
여기에서 ‘나 요한은’ 이 아니라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나 요한은……..여러분과 같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형제요, 자매입니다. 나는 여러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환난을 당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렇게 사는 것처럼 세상의 그 어떤 유혹에도 휩쓸리지 않고 삶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나는 여러분들처럼 하루하루 견고한 인내로써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사도 요한이 여러분과 저를 형제와 동료로 부른 의미를 발견하셨습니까? 그가 여러분과 저를 형제라 부르며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 로 동일시한 것은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가 죽어도 예수! 살아도 예수! 고난 당해도 예수! 평안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참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기쁨과 자랑이신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진정 땀 흘리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당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까? 진정 그 어떤 시험과 환난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으며 담대하시겠습니까? 세상 그 어떤 것으로 부터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사단의 세력과 사단이 통치하는 세상의 모든 세력은 아무리 거세어도 결코 하나님을 넘어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근원이시요 오늘의 능력이시며 내일의 영광이 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태복음10:28)...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 하라’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꾸로 한다. 가난해질까봐…높아지지 못할까봐….밀려날까봐…..실패할까봐 두려워하고…..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불의와 연합한다.)
❊ 하나님의 성도가 이래서 되겠습니까?
❊ 다니엘서 1장 11-15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생명의 문, 복의 문, 승리의 문이 열립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왕이 주는 양식을 먹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은 강건함과 아름다움과 윤택함의 복을 누립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그에게는 홍해 같은 불가능도 갈라져 버리게 하는 형통의 문이 열립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유혹과 위협으로부터도 하나님을 향한 절대 믿음, 절대 신앙의 뜻이 세워져있습니까?
다니엘 1장 8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는 여러분이 결코 세상과 섞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앙의 삶을 살아가심으로 생명의 문, 복의 문, 승리의 문, 형통의 문이 열린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이제 우리는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한 말씀가운데서 “나라에 동참하는 자!” 에 대하여 조명해 보아야겠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나라” 란 하나님의 나라, 예수의 나라를 말씀합니다. 또한 “나라에 동참하는 자” 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즉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삶으로 성취해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사도요한이 어떤 환난가운데 있었는지 들어보셨습니까?
사도 요한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증언함 때문에 끓는 기름 솥 안에 던져질 위기 앞에서 극적으로 풀려났지만 당시 흉악한 정치범들이 수용되는 밧모섬까지 유배되는 환난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밧모섬에 유배되었다는 것 역시도 도무지 살아나올 가능성이 없는 생지옥의 자리로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일을 전혀 기약할 수 없는 절대절망만이 도사리는 곳이 바로 밧모섬이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꼼짝없이 죽기만을 기다릴까요? 사는 날 까지 탄식하고 불평하며 살까요? 그러나 사도 요한은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절대절망의 환난가운데서도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하며 그 나라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 우리가 이미 잘 알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장차 임할 그리고 우리가 가게 될 영생의 나라 천국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곳, 이 자리 오늘의 시간 속에서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안에 임하였느니라.” (마12:28)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 삶으로 일치할 때 임하는 실제입니다. 눈물 흘릴 일에 오히려 기뻐하는 믿음, 실패함 가운데서도 오히려 감사하는 믿음, 적음가운데서도 더 충성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와 성도가 사랑으로 관통할 때 누리는 은혜입니다. 내 옆의 성도가 눈물 흘릴 때 함께 눈물 흘리는 그 자리….. 내 옆의 성도가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는 그 곳, 목사가 기도하는 그곳에 한 마음 되어 더불어 기도하는 그 자리, 목사가 충성하는 그 자리 그곳에 성령으로 일치하여 함께 충성하는 그 삶이 예수의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성도여러분!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나라의 살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진실로 그리스도의 나라에 동참한 성도들입니까? 사도요한이 우리를 다시 주님의 나라로 초대합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