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까지 우리가 은혜 받은 사도 요한이 본 예수님의 모습은 첫째는 인자 같은 존재 둘째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두른 존재였습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로 “머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은 존재”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야훼 하나님의 모습으로써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신령한 존재…신비스러운 존재……그래서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존재의 모습니다. 다니엘도 환상 중에 이러한 모습을 보았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단7:9) 성경에서의 흰색은 순결함과 정결함 그리고 권위와 영광을 상징합니다. 그러기에 “머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라고 한 것은 예수님 안에서 역사하는 순결함과 거룩함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권위와 영광을 입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을 의미합니다.
❊ 진실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거룩하고 순결하셔서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고 그 신성의 능력으로 약한 자는 강하게 하십니다. 병든 자는 치유하십니다. 가난한 자는 부요 하게 하십니다. 그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영광의 하나님을 믿고 따름으로 의인이 되어(창15:6)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그 권능의 손에 붙들려 애급의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가는 하나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아펜젤러선교사 부부, 언더우드 선교사는 그 주님의 손에 붙들려 미지의 땅 조선에 복음을 전하고 일제의 폭정을 이기게 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는 보배로운 기초석이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무수한 사람들이 “머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은 존재” 이신 그리스도께 사로잡혀 인간을 뛰어넘어 신 같은 존재의 삶을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2-34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 10분 뒤의 일조차 전혀 알 수 없는 운명을 안고 살아가는 흙덩어리 인간이 스스로에게 잡히면 육체가 되고 세상에 붙들리면 탐욕이 되어 허무와 절망과 실패를 낳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흙덩어리인 인간이 하나님께 사로잡히면 전능의 일을 행하는 신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 지금도 거침없이 흐르는 인류역사의 진리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
저는 여러분들의 믿음이 크고 견고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머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은” 거룩함과 순결함 그리고 권위와 영광을 입으신 주님의 손에 붙들려 귀하고 아름다운 일들을 성취할 뿐 아니라 크고 놀라운 일들을 성취하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이제 우리가 넷째로 알아보아야 할 것은 “그 눈은 불꽃같은 존재” 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내재된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아시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 전능자의 지혜와 지식의 눈은 지금도 온 세상만물을 다 둘러보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10장 6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주님은 모든 것을 꽤 뚫어 아시는 그 횃불 같은 눈, 불꽃같은 눈으로 무엇을 하실까? 그 첫째는 하나님의 모든 성도들의 길을 밝혀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으로 사는 사람은 넘어질 일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어두움 속을 지날 때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 횃불 같은 눈, 불꽃같은 눈으로 성도들의 오늘의 삶을 살펴주시고 내일의 문을 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서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우리는 비록 10분 뒤의 일조차 알 수 없는 맹인이지만 모든 가려진 것들을 밝히시는 주님의 횃불과 불꽃같은 눈은 여러분을 그 모든 가려진 것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지키시며 인도해 가십니다. 그 주님을 전심으로 신뢰함으로 어두움이 없는 삶, 가려진 것들을 제치고 승리하는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하나님의 횃불 같은 눈…. 그 두 번째는 심판하시는 눈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이 제일 불쌍할까? 그들은 바로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심판 당하고, 헌신하고 충성한다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생명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 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죽음을 잉태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오늘의 또 다른 본문에서 우리는 참으로 안타깝고 불쌍한 장면을 목도하게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부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초대교회의 성도들 안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입니다. 성령충만을 입은 초대교회성도들은 이 땅에서의 소유에 대한 욕심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습니다. 복음의 삶을 살고자 그 누구도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있는 재산들도 다 팔아서 사도들에게 가져왔습니다. 누구나 복음 안에서 균등을 이루며 살게 된 것입니다.
그들 중 우리가 잘아는 바나바도 자신의 밭을 팔아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래서였을까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판 것의 모든 것이 아니라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전부가 아니어도 진심을 다해 드렸다면 문제없었겠지요. 문제는 일부를 드리면서 전부를 드리는 것처럼 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을 속이려 한 것이었지만 결국은 하나님을 속이려 함이 되었습니다.
❊ 본문1-5절의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눈은 의식했으나 만물을 다 통해 보시는 하나님의 눈, 사람들의 폐부를 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 믿는다 하나 주님의 눈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합니다. 형식적으로 합니다. 그러한 것은 다 인본주의 종교행위입니다.)
❊ 에스겔 1장 18절과 계시록 4장 6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그 둘레는 높고 무서우며 그 네 둘레로 돌아가면서 눈이 가득하며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그 빛난 눈으로 세상의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의 삶을 꿰뚫어 보시고 그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십니다. 또한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십니다. 인류의 역사 그리고 한 개인의 삶의 역사를 둘러보십시오. 주님의 그 횃불 같은 눈을 피한 나라와 민족이 어디 있었으며 개인이 어디 있었습니까?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전능자의 눈을 피할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꽤 뚫어 아시기에 제할 것은 아낌없이 제하시고 세울 것은 기쁨으로 높이 세우셔서 당신의 공의와 사랑과 뜻을 반드시 열매 맺으십니다.
하나님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순결하고 온전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저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전폭적인 충성과 헌신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눈에 가득 찬 존재가 되어 이 시대의 아브라함의 복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